열 므나의 비유
성 경: [눅 19:11-1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눅 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 여기서 '그들'이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전후 문맥상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던 예수의 일행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되며
장소도 역시 삭개오의 집 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삭개오에 대한 파격적 구원 선언과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시키고자 하는 의지 천명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는 새로운 비유를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시작되는 열 므나의 비유는
달란트의 비유(마 25:14-46)와 비슷한 내용이나,
주제에 있어 차이가 있다.
즉 달란트의 비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재능들을 최대한 선용해야 한다는데 강조점이 있는 반면,
본 비유의 강조점은
당시 무리들의 그릇된 천국관과 그릇된 메시야관을 지적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 비유를 말하게 된 이유로 누가는
청중들의 임박한 하나님 나라 도래에 대한 관심과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목전(目前)에 다가온 사실을 들고 있다.
따라서 비유의 초점은 종말적 사건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된 예수의 선언,
즉 '오늘 이 집에 구원일 이르렀다'는 말을
열 므나의 비유에 나타난 심판의 엄격성과 대조시켜
구원에 이르기 위한 실천적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또 이 비유를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베풀었다는 점에서
장차 당할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부활과 재림과 연결지어 말함으로써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인내할 수 있도록 믿음을 지키라는 의미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역시 비유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는 종말적 관심에 대한 언급이다.
누가의 언급처럼 예수께서 비유를 베푸시게 된 배경이
곧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금방 도래하는 것인 줄 생각했기 때문이라면,
예수는 종말적 심판의 때가 당장 일어나지 않음을 말하면서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려 하신 것이다.
즉 비유의 내용상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로부터 예수의 재림까지는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예시하고 있는데
따라서 예루살렘 입성은 종말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에의 길로 접어드는 것임을 암시한다.
[눅 19: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 어떤 귀인이 - 여기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달란트 비유(마 25:14-46)에 나오는
'어떤 사람'과는 달리 '귀인'이라고 언급되는데,
'귀인'(유게네스)은
'가문이 좋은 사람' 또는 '마음이 고상하고 귀한 사람'을 뜻하며
비유적으로 예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 이와같은 배경 설정은
당시에 널리 알려진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Archelaus)가
아버지의 왕권을 물려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던 이야기와 비슷하다(Josephus).
즉 헤롯 대왕은 죽기에 앞서 자신의 왕국을 세 아들인
안티파스, 빌립, 아켈라오에게 분할해 주었는데
이러한 일은 로마 정부의 공식적 승인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유대 지방을 분할받은 아켈라오는
로마 황제의 인준(認准)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다.
한편 유대인들은 아켈라오를 매우 혐오했던 터라 사절단을 구성하여
로마로 보내었으나 아켈라오의 왕위 취득을 저지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같은 사건이 예수 탄생 직후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예수 자신 뿐만 아니라 누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들어
이 비유가 그 정치 야사(野史)에서 따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열 므나의 비유가 어디까지나 비유인 만큼,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였든 간에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본 비유의 강조점,
곧 당시 예수를 따랐던 무리들의 잘못된 기대에 대한 예수의 교정의지를 엿볼 수 있다.
첫째,
귀인을 예수로 비유했을 때 왕위를 받으러 간다는 말은
재림할 때 세상의 심판주로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예수는 종말적 심판자나 통치자가 아님을 암시하며
이는 11절에서 언급된 사람들의 생각,
즉 당장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리라는 기대에 대해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이 된다.
둘째는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갔다고 했는데 이 말은
왕위를 받고 돌아오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所要)됨을 암시한다.
이는 곧 예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경과가 있음을 가리킨다.
[눅 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 그 종 열을 불러 - 마태는 달란트 비유에서 세 명의 종을 언급한 반면,
누가는 그 세 배가 넘는 열 명으로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귀인'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많은 종을 언급함으로써 귀인을 상당한 재력을 갖춘
권위있는 인물로 묘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 은 열 므나를 주며 - 여기서도 달란트 비유와는 달리
열 명의 종에게 열 므나를 균등하게 나누어 준다.
그리고 화폐의 단위도 차이가 있는데
'므나'는 헬라의 동전으로서 한 달란트의 1/60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달란트의 비유에 대해 여기서 언급되는 화폐 단위는
엄청나게 적은 액수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본 비유에서는
적은 액수에 대한 충성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I.H.Marshall).
그런 의미에서는 작은 일에 충성을 촉구하는 달란트 비유의 주제와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 이와 같은 당부 내지는 지시의 말이
달란트 비유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화폐 단위 '므나'를 각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 또는 재능이라고 한다면
'장사하라'는 말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과 재능, 또는 일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수행(遂行)하라는 지시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예수의 명령과 연관될 때 예수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창조적으로 수행하는 명령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장사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그마튜오마이'는
이윤 추구와 관계되는 상업적 용어이다.
따라서 이 말은 상업적 이윤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대다수 무리들의 귀를 집중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비유였으리라 짐작된다.
[눅 19: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 이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고
핍박한 사실을 비유한 것이다.
특히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외식 행위를 비난하고
그 기득권을 위협하는 예수를 눈의 가시와도 같은 존재로 여겼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추종했던 유대 군중들도
유대 민족을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리라 기대했던 소망이 사라지게 되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예수를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던 것이다.
(마 27:20-2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눅 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 귀인이 왕위를 받고 돌아와서
맨 먼저 한 일은 떠날 때 종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돈으로
어떻게 장사를 했는지 종들을 불러서 확인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장사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사한 내용 전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유에 담긴 종말론적 의미는,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사람들이 일평생 행한 바
선악간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날에는 은밀히 지은 모든 죄악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전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반면 오른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베푼 자비로운 행위들이 크게 보상받게 될 것이다.
(마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특히 받은 바 은사를 잘 활용하여 맡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자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수여될 것이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눅 19: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 여기서 우선 주목할 것은
'당신의 한 므나'라는 점이다.
즉 주인이 떠날 때 주었던 그 돈은 자기의 돈이 아니라
주인의 돈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점이다.
이와 같은 고백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응당 취해야 할 자세를 함축한
'청지기'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경제적 도구들은 물론이고
주어진 시간과 재능, 건강 그리고 심지어는 생명마저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남겼다'는 말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최대의 노력으로 창조적이며 생산적으로 살아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윤을 남긴 양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장사 내용, 즉 삶의 질과 그 과정(過程)이다.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 달란트 비유에서의 마태의 묘사와 비슷하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즉 마태와 누가가 소개하는 '달란트'와 '므나'의 비유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 대한 칭찬과 보상을 공통되게 강조하고 있다.
누가는 '작은 것'이라는 말을 강조하여
'미크로스'의 최상급인 '엘라키스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종에게 맡겨진 한 므나가 '지극히 작은 것'(very small, smallest)임을 강조한다.
▶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 달란트 비유에서는 더 많은 것을
맡긴다고만 했기 때문에 무엇을 많이 맡기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누가는 구체적으로 밝힌다.
본 구절에 내포된 교훈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하나님나라에서 누리는 축복은 성도들이 기울인 모든 노력을 합한 것보다
월등하게 많다.
열 므나와 열 고을을 비교해보면 이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또한 이 종이 한 일은 주인의 지시를 받은 한 '종'으로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충성에 따른 축복은 열 고을을 '다스리는' 당당한 '권세가'의 신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온갖 수고와 충성을 다한 성도는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는 위대한 권세를 소유케 될 것이다.
(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 심은대로 거둔다는 법칙이다.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열 므나 남긴 자에게는
아홉 고을이나 열한 고을도 아닌 꼭 열 고을이 주어진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없는 큰 축복임에 분명하지만,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 중에는
본문의 종처럼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예로운 자가 있는가 하면,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것처럼 부끄러운 처지의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고전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눅 19:18-19]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
이는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주는 칭찬과 보상인데,
역시 남긴 만큼 즉 다섯 므나를 남겼기 때문에 다섯 고을을 맡기게 된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돈을 맡길 때 능력별로 맡기고
보상은 일괄 적으로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한 반면,
여기서는 일괄적으로 한 므나씩 맡기고
보상할 때에는 능력급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보상과 실천적 과정에서 쏟은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이 비유의 독특한 점은 '장사하다'는 말과 남긴 업적에 비례(比例)하여
보상을 베푸는 방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상업적 성격이 짙은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는 일반적 상업 관계를 사용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고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배려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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