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2
성 경: [눅 18:12-14]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 본 구절은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문장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역시 앞 구절의 '당신에게 감사 하나이다'라는 문구에 종속되어 있다.
그의 모든 기도문에 나오는 동사는 '일인칭 단수형'으로,
그의 기도가 자기 의(義)를 내세우는 독선적 아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넌지시 시사한다.
한편 십일조에 관한 성경 최초의 언급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자기의 전리품 중 1/10을 준 데서 발견된다.
(창 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그 후 야곱도 소득의 1/10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은 이렇듯 유래가 깊은 십일조 제도를 출애굽 당시에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모세의 율법 가운데 십일조에 관한 세부적인 기록은
레 27:30-33;신 12:5-18등에 나온다.
이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두어 들이는 모든 산물
즉, 곡물, 과일, 가축 등에서 1/10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분하도록 명했다.
(레 27:30-33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31)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32)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33)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신 12:5-1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8)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유대교의 랍비들은 율법의 문자적 적용에
더욱 철저하기 위해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이르기까지
십일조를 바치는 규정을 만들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본 구절의 바리새인은 십일조를 철저히 지킨 것을 내세우며
하나님께 보답을 요구하는 듯한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십일조가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요.
자기는 청지기에 불과함을 고백하는 행위임을 알지 못한 태도이다.
(마 25:14-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요컨대, 십일조는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조건부적 뇌물이 아니라
택함 받은 자가 마땅히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드려야 하는 신앙의 표시이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멀리 서서 - 바리새파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세리는 멀리 아마도 성전 밖 이방인의 뜰에 서서 기도하였을 것이다.
▶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은 정상적인 여러 자세 중 하나였다.
(시 123: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막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 세리는 기도의 정상 자세조차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죄인 중에 죄인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가슴을 치며 - 이 표현은 정확히 말하자면 죄의 근원지로서의 마음을 치는
깊은 참회와 애통을 나타내는 말이다.
(23: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마 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또한 헬라어 동사 '에튀프테'는 '때리다', '치다'의 뜻인
'튀프토'의 미완료형으로 계속해서 치는, 반복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은 그가 세리라는 자기 직업을 통하여 범해온 죄 많은 생활들을
청산할 뿐 아니라 그동안 그가 사람들로부터 착복한
금액에다 율법에 명시된 배상액까지 부가하여 갚고자 하는 굳은 결의가
이 표현 속에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출 22:1-15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2)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3)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4)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5)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짐승을 먹이다가 자기의 짐승을 놓아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6) 불이 나서 가시나무에 댕겨 낟가리나 거두지 못한 곡식이나 밭을 태우면 불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할지니라
7)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 집에서 도둑을 맞았는데 그 도둑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8) 도둑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9) 어떤 잃은 물건 즉 소나 나귀나 양이나 의복이나 또는 다른 잃은 물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양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10)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11)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께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12) 만일 자기에게서 도둑 맞았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13)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언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아니할지니라
14) 만일 이웃에게 빌려온 것이 그 임자가 함께 있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15) 그 임자가 그것과 함께 있었으면 배상하지 아니할지니라 만일 세 낸 것이면 세로 족하니라).
▶ 불쌍히 여기옵소서 - 이는 '진정하옵소서', '분노하지 마옵소서'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동시에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세리의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를 가리켜 '많은 죄인들 중의 한 명'이라고 칭하지 않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관대한 처분만을 기다리는 그의 겸손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선 바리새인과 세리 중
세리가 더 의롭다는 절대적인 판결을 내리셨는데
(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인의 참된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준다.
(요일 1:8-9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편 세리의 기도는 바로 시 51편의 서두의 인용이기도 하다.
세리의 기도의 호소의 근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둔 것이고
이것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받게 된다.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의롭다 하심을 받고 - '의롭게 하다'는 뜻의 이 단어는 여기서
완료 수동태 형으로 사용되어 하나님께서 이 세리를
주권적으로 의롭다고 선포하고 확정하셨음을 암시한다.
▶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인간의
높아지고 낮아짐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 유무에 의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따라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이웃을 존귀히 여기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높이는 길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에 따라 역사하신다고 생각했다.
한편 본문의 세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믿었으며 또한 하나님은 자기와 같은 죄인에게라도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자비로운 분이라는 소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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