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시체)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들리라
누가복음 17장 32-37절 : 롯의 처를 기억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하시니라
3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무릇 그 목숨을 건지려고 하는 자는 이것을 잃고, 만약 그 목숨을 잃는 자는 이를 보전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밤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간바 되고 한 사람은 남겨지리라.
두 여인이 같이 맷돌질을 하는데, 한 사람은 데려간바 되고, 한 사람은 남겨지리라.
그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여, 이 일이 어디 있으리이까?
그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여, 이 일이 어디 있으리이까?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주검(시체)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들리라'(누가복음 17:32-37)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때는 급격하다.
의외(불의 unexpectedness)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때가 이르기에 앞서,
세상에 대한 욕구를 모두 버리고,
곧 하늘에 휴거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그녀는 소돔의 멸망의 날에 도피하는데
망설이고, 뒤를 돌아다보다가,
곧 '소금기둥'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 어찌하여 뒤를 돌아다보았을까?
생각건대 보석일까, 혹은 의류일까,
무엇일까, 그녀 자신의 생명보다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것을 건지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건지려는 자는 이것을 잃으리라'이다.
뒤에 자기 욕심이 남아있을 때,
나는 돌아다보지 않으려 해도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의 흔적조차 없기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회고의 필요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우리들의 준비는,
이 세상에 관한 욕심의 절멸에 있다.
'그 밤…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지리라'
데려감을 입는 자는 복 있을진저.
데려간다는 것은 휴거 되는 것을 말함이다.
이는, 이 세상에 아무 집착도 구하는 일없이,
뒤를 돌아다보지 않고 곧 떠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자가 입을 수 있는 은혜이다.
가령
'같은 침상에 있는 동포라 해도 함께 맷돌을 돌리고 있는
동업자(전도 같은 정신적 사업도 포함)라 해도,
그 준비의 유무에 의해 전혀 위와 아래로 서로 나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최후의 순간적인 구원에 빠지지 않기 위해,
누구나 이제부터 부단의 준비를 한 필요가 있다.
'주검(시체)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이는 성서 중 대 난관의 하나이다.
보통으로 해석되는 바에 의하면,
이 구는 본래 예루살렘 멸망의 예언 중에 속해야 할 것을
여기에 부합시킨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어느 종류의 해석은 가능하다.
즉 주검(시체)은 부패물이다.
독수리, 또는 흰머리 독수리는 부패물을 먹는 심판의 동물이다.
그리고 로마인의 기표는 독수리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있어서,
주검은 부패한 유대인이고,
독수리는 이것을 멸하려는 로마인이라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상의 해석은 가설에 기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및 마태의 두 사람 모두,
이 구절을 다른 부분에서
박탈(deprivation)해다가 여기에 접합(joining)시켰다든가,
그리스도께서 독수리라는 말로서 로마의 군세를 의미했다고 하는 것은,
모두 성서중의 아무 근거도 없는 상상이다.
성서의 말씀은
이것을 전후의 관계와 성서 중의 다른 부분에 비추어(대조하여) 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주여, 어디에'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원문에 '이 일' '있을 것입니까'라는 말없다).
'그 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지리라'(34).
'주여 어디에?' 데려감을 입는 자는 어디로 데려감을 입는 것입니까?
이르기를 '주검이 있는 곳에'.
옳다. 거기에 독수리는 모이는 것이다.
주검이란 무엇일까?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힌바 된 예수의 몸은 아닐까?
주검 반드시 부패물은 아니다.
특히 유대인처럼 날마다 몇 백 마리의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린 백성에게 있어서,
주검이라는 말에 도리어 깨끗한 연상이 있다.
예수 자신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여생 있다'고 가르치셨다.
그는 실로 '세상의 처음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시다.
주검은 우리들의 죄 위해 희생(제물)되신 예수의 몸이시다.
다음으로 '독수리'는 어떻게?
성서에 있어서 공중의 새는
언제나 나쁜 것을 나타내는데도 불구하고,
'독수리'라는 말에는 좋은 뜻이 있다.
마치 사자라고 하여 이것을 맹수의 뜻으로 해석하지 않고,
힘 있는 왕의 지위를 대표한 것같이
(계시록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독수리도 그 강한 날개와 예리한 눈과 예민한 감각 등으로서
종종 크리스천을 대표하는데 쓰인다.
저 '여호와를 대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을 것이다. 또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다.
달음박질하여도 피곤치 않고 걸어가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서 40:31일역)라는 것 등은,
곧 취하여서 본 절의 주해(註解)로 할 수가 있다.
이는 즉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 재림 날에 있어서 받을 바 은혜의 예언이다.
그 날 그들은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
그리고 우리들의 죄의 희생(제물)으로서 하늘의 제단에 바쳐진
귀한 주검(시체)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아래 모이는 것이다.
'주여, 어디에'
'주검이 있는 그 곳에 모일 것이다'
크리스천의 희망을 간결하게 나타내는 말로서
이것보다 아름다운 것을 알지 못한다.
(등정무필기)
부언(附言) - 주검(시체)과 독수리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서 이 해석을 주장한 이들 중에,
크리소스톰, 오리겐, 제롬,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의 웅장(雄壯)이 있다.
*내촌감삼의 (1919년 9월 '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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