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0일 목요일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그리스도의 수난 예언 2

 

(18:31-34)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고난 당하심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과 당신이 친히 완전히 통찰하고

이 사실을 미리 제자들에게 알려 줌이 좋겠다 생각하셨다.

그래야만 제자들이 실제로 그 광경을 당했을 때에

덜 놀래고, 덜 두려워할 것이라 생각하신 것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두 가지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1.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서의 응함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제자들과 일치시키고 또한 제자들을 일치시키셨다.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특히 주님께서 당하시게 될 고난이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영은 구약의 예언서에서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셨다").

 

이 사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정확히

또한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심을 증거하는데

그것은 메시야에 대하여 미리 말씀된 것이 주안에서 입증된 때문이며,

주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바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무엇이나 달게 받으셔서 성경에 기록된 한 구절이나 제목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증거한다.

이 사실은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치게 하며," 십자가에 영광이 있게 하였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있어서 주님이 당하신

치욕과 불명예가 여기서 가장 강조되어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주님이 "능욕을 당하실" 것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침 뱉음을 받겠으며"라는 말이 더 있다.

 

모욕적인 언동과 창피 등 갖은 치욕거리를 다 받으시게 될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주님의 영광을 더럽힌 손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게 하신 주님의 영적인 고난의 일부였었다.

 

여기에 주님께 치욕을 드린 한 가지 특별한 사실이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침 뱉음을 받으심"이다.

이것은 이사야 16절에 특히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다른 데서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친히 말씀하실 때에는

당신의 고난과 공포와 치욕을 제거해버린 부활을 예언하셨다.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 이때에 제자들이 혼란을 일으켰다.

주님의 예언하시는 바는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던 메시야와 주님의 나라와는 정 반대 되는 것이었다.

자기들의 주님께 대한 기대에 대하여 너무도 좌절감을 주었고,

자기들의 모든 계획이 깨지는 것이어서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다"(34).

 

그들의 선입관은 너무도 강했기 때문에

주님의 하시는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 달리도 이해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전혀 무슨 말씀인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로서는 불가사의한 일이었고 수수께끼와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메시야의 영광과 존귀함에 일치될 수 없는 일이었고

또 주의 왕국의 건설 계획에도 부당한 일이었다.

 

주님의 말씀은 "감취었으며",

그들에 대해서는 출처가 의심스러운 말씀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자들로서는 구약 성경을 여러 번이나 읽었지만

메시야의 치욕과 죽음이 일어나리라는 기록은 도무지 본 일이 없었다.

 

이들은 메시야의 영광에 대한 예언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주님의 고난에 관한 예언은 그냥 지나쳐 버렸었다.

이 고난에 관한 예언도 율법의 서기관들과 박사들이

주의해 읽도록 지시를 받았어야 할 것이고,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구의와 교리 문답을 배우며 장성했으련만

그들의 교육계획에 적당히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한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성경을 반만 읽고,

율법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예언서도 일부분만 읽었기 때문에

실책을 범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부드러운 말만" 하였다.

 

(30: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도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

곧 우리들의 기대하는 바가 후일의 교회에서

영광스러운 상태로 이루어질 예언을 읽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황량한 비탄에 잠긴 상태의 예언을 우리는 빠뜨려 보고,

또 그런 상태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려고 하며,

고난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평화스러운 날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시련과 핍박이 닥쳐 올 때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들도

쉬운 말로 들어왔건마는 장차 될 일을 제자들은 알지 못했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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