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지파의 성읍
성 경: [수 15:20-63]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21)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으로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 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
32)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이십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모두 십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니 모두 십육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5) 에그론과 그 향리와 촌락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향리와 촌락과 가사와 그 향리와 촌락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 가에 이르기까지였으며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니 모두 십일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모두 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8) 할훌과 벧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라빠니 모두 두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염성과 엔 게디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더라
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수 15:20]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러하니라
▶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 -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의 영토는 그 지리적 특성상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1) 에돔 경계에 근접해 있는 남방(네게브) 지대 - (21-32절),
(2) 애굽 시내와 지중해로 뻗어 나가는 평지(세펠라) 지대 - (33-47절)
(3) 산악 지대 - (48-60절),
(4) 광야 지대 - (61-62절) 등이다.
그리고 그 위치상 동쪽은 사해(염해)와 유대 광야가 놓여 있고, 서쪽은 중앙고원 지대와 연결되어진 많은 구릉과 계곡들이 있으며, 남쪽은 메마르고 건조한 네게브(Negeb) 사막 지대이고, 북쪽은 고원 지대이자 트여진 군사적 취약 지구이다.
아무튼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영토는 후일 유다 왕국의 중심지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수 15:21-62]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으로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22)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23)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24)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25)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26) 아맘과 세마와 몰라다와
27) 하살 갓다와 헤스몬과 벧 벨렛과
28) 하살 수알과 브엘세바와 비스요댜와
29) 바알라와 이임과 에셈과
30) 엘돌랏과 그실과 홀마와
31) 시글락과 맛만나와 산산나와 르바옷과
32) 실힘과 아인과 림몬이니 모두 이십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3) 평지에는 에스다올과 소라와 아스나와
34) 사노아와 엔간님과 답부아와 에남과
35) 야르뭇과 아둘람과 소고와 아세가와
36) 사아라임과 아디다임과 그데라와 그데로다임이니 모두 십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37) 스난과 하다사와 믹달갓과
38) 딜르안과 미스베와 욕드엘과
39) 라기스와 보스갓과 에글론과
40) 갑본과 라맘과 기들리스와
41) 그데롯과 벧다곤과 나아마와 막게다니 모두 십육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2) 립나와 에델과 아산과
43) 입다와 아스나와 느십과
44)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45) 에그론과 그 향리와 촌락과
46) 에그론에서부터 바다까지 아스돗 곁에 있는 모든 성읍과 그 촌락이었으며
47) 아스돗과 그 향리와 촌락과 가사와 그 향리와 촌락이니 애굽 시내와 대해 가에 이르기까지였으며
48) 산지는 사밀과 얏딜과 소고와
49) 단나와 기럇 산나 곧 드빌과
50) 아납과 에스드모와 아님과
51) 고센과 홀론과 길로니 모두 십일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2) 아랍과 두마와 에산과
53) 야님과 벧 답부아와 아베가와
54) 훔다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시올이니 모두 아홉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5) 마온과 갈멜과 십과 윳다와
56) 이스르엘과 욕드암과 사노아와
57) 가인과 기브아와 딤나니 모두 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58) 할훌과 벧술과 그돌과
59) 마아랏과 벧 아놋과 엘드곤이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60)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과 라빠니 모두 두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으며
61) 광야에는 벧 아라바와 밋딘과 스가가와
62) 닙산과 염성과 엔 게디니 모두 여섯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었더라
1-12절에서는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의 경계선이 설명되었었는데, 여기에는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즉 본문에는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120개의 주요 성읍들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다 지파의 영토는 그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12구역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1) 브엘세바(Beersheba) 중심으로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구역(21-32절),
(2) 남쪽의 아둘람(Adulam)에서 북쪽의 그데라(Gederah)에 이르는 평지로 현재 '예루살렘-얍바'간의 철도를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구역(33-36절),
(3) 제 1,2구역 중간 지점의 남부 평지(37-41절),
(4) 마레사(Mareshah)를 중심으로 하여 제 2,3구역 사이에 위치한 구역(42-44절),
(5) '애굽 시내'와 연접한 남부 해변 평야 지대(이 구역의 중심지인 에그론(Ekron)은
블레셋의 5대 도시들 중 하나였으며, 얼마 후 단 지파의 소유가 되었다.(45-46절;19:43)
(6) 애굽과 가나안의 관문 지대에 위치한 구역(그 중심지였던 아스돗(Ashdod)은 오랫동안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다가 웃시야 왕에 의해 공략되었다.(47절; 대하 26:6).
(7) 북쪽으로 제1구역과 접한 구역(그 중심지는드빌(Debir)이었다.(48-51절),
(8) 제 7구역의 북쪽과 제 3, 4구역의 동부에 위치한 남부 산지(그 중심지는 헤브론(Hebron)이었다.(52-54절),
(9) 헤브론 남부 유대 산지의동쪽에 위치한 구역(55-57절),
(10) 헤브론 북쪽에 인접해 있는 산맥 지대(58-59절),
(11) 유다 지파의 북부 경계선 주변에 위치한 구역(60절),
(12) 베냐민 지파와의 접경지대(18:21-24)인 동시에 동부 경사지에 해당하는 구역(61-62절) 등이다.
이와 같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들은 그들이 살기에 너무 넓은 땅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시므온 지파의 기업은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배당되었다.
(19:1-9 둘째로 시므온 곧 시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
2) 그 얻은 기업은 브엘세바 곧 세바와 몰라다와
3) 하살 수알과 발라와 에셈과
4) 엘돌랏과 브둘과 호르마와
5) 시글락과 벧 말가봇과 하살수사와
6) 벧 르바옷과 사루헨이니 십삼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며
7) 또 아인과 림몬과 에델과 아산이니 네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며
8) 또 남방 라마 곧 바알랏 브엘까지 이 성들을 둘러 있는 모든 촌락이니 이는 시므온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라
9)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얻음이었더라).
따라서 이는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7)라는
시므온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다.
[수 15: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the Jebusites)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가나안 족속과는 언약도 맺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모두 진멸시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였다.
(신 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이와같이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자 최선을 다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나태한 마음가짐에서 연유한 것으로(Calvin, Matthew Henry), 가나안 정복 전쟁 때의 그들의 신앙적이며 순종적인 모습과는 뚜렷이 대조되는 현상이었다.
과거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다른 네 왕들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에게 대적하였으나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었다.
(10:22-27 때에 여호수아가 가로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장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가까이 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대로 두었다가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하지만 그때 예루살렘이 정복당했다는 언급은 없으며, 그 이후 유다 지파도 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다만 삿 1:8에서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성읍을 불태웠다고 하였는데,
(삿 1: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
이는 예루살렘을 부분적으로 점령한 것을 뜻할 뿐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은 B.C.1000년 경 다윗의 치세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점령당하게 되는데,
(삼하 5:1-6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2)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4)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6)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때까지 이들은 유다 자손들 곁에서 계속 거주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것과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삿 1:21에서는 이들을 베냐민 지파가 쫓아내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이러한 사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 성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모두 이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아무런 모순이 없는 것이다.
▶ 여부스 사람 - '가나안의 일곱 족속'중 하나이다.
(9:1-2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 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
▶ 오늘날까지 - 이는 여호수아서 저자가 본 기록을 쓸 당시까지 예루살렘 거민인 여부스 족속(the Jebusites)이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었다는 뜻인데, 따라서 이 말은 여호수아서가 적어도 예루살렘이 완전 정복된 때인 다윗 왕 시대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Pulpit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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