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앞에 선 모세와 아론
성 경:
[출 5:1-5]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3)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5)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출 5:1]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 그 후에
- 모세와 아론이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여호와의 메시지와 이적을 제시하자,
백성들이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그 두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이요.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한 후에 라는 뜻이다.
▶ 바로에게 이르되
- 당시 애굽 행정제도는 중대한 사안일 경우,
왕이 백성의 소청을 공개적으로 듣고 응답을 내리던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의 바로 알현(謁見)도 그러한 맥락에서 쉽게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다.
▶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 민족 해방의 소청이 단순한 항거나 시위가 아니라 장자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자 선포임을 보여 준다.
더욱이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 표현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묘사한 동시에 일개 이방 왕인 바로가 이스라엘을 압제할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명백히 시사한다.
▶ 절기를 지킬
- 본래 의미는 '원 안에서 돌다'인데 이는 종교행사의 한 부분으로 둥그런 원형을 이루어 춤을 추고 즐거이 노는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절기 중 대부분을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절기 중 무도회를 열거나
(삿 21: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인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자지
아니하여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주 앞에서 즐거운 찬송을 발하거나
(시 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혹은 성전을 향해 행진하는 등 갖가지 행사가 있었다.
(시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출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 바로 - 출애굽 문제를 놓고 당시 모세와 아론이 대결해야 했던 애굽의 바로(Pharaoh)는 부왕(父王)
투트모세3세의 뒤를 이어 애굽 권좌에 오른 아멘호텝2세(Amenhotep
2, B.C 1448-1424)였다.
그는 18세라는 약관의 나이로 권좌에 앉아 부왕못지 않게 강력한 통치를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 궁술과 마술(馬術)
및 항해술에 자신있다고 자랑했다 한다(J.
Breasted, J. Wood, J. Finegan).
▶ 여호와가 누구관대
- 타락한 인생이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완고함과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또한 이는 민족이나 지역마다 각기 주관하는 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 고대 범신론(汎神論)사상을 반영한 말로서
'노예 민족에게
무슨 신이
있겠으며 설령
있다 한들
애굽의 강력한
신들 앞에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라는 비소(誹笑)
섞인 독설이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 이를 의역하면
'나는 여호와란
신을 섬긴
적이 없으며
인정할 수도
없다. 혹 그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가 된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전제 군주의 교만을 잘 반영한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그의 손아귀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그는 훗날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출 5:3]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 히브리인의 하나님
- 지역 신 개념이 익숙해 있던 바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된 명칭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스라엘의 뿌리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기인하고 있는 역사 깊은 민족이라는 사실과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처음부터 주장하고 계셨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성경 최초로 히브리인이라는 민족 이름으로 불려 졌었다.
(창 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셔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으며,
따라서 반드시 그 계시된 바를 성취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으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 사흘길 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 모세의 이러한 요구는 그 당시 애굽인들의 타부(taboo)를 배경으로 한다.
즉 애굽인들은 몇몇 짐승을 형상화시켜 자신들의 신으로 삼고 신성시 여겼던 관계로.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 제물로 그러한 짐승을 죽여 각을 뜬다면 필시 애굽내에서 피를 부르는 분쟁이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도보로 3일길 쯤 떨어진 광야에서 제사 드리겠다는 것이 모세의 요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요구가 모세가 의도한 전부는 아니었다.
실제 모세의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부터 영원히 이끌어내 가나안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여기서 모세가 바로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구태여 모세가 강퍅한 바로에게 애굽의 성격과 목적 및 의미 등을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모세는 우선 1차적으로 간단한 요구를 바로에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의인이 악인과 접촉하는 지혜이다.
(7: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 온역- '파괴하다', '정복하다'의 뜻인 동사 '다바르'에서 유래한 말로 흑사병과 같은 악성 전염병을 가리킨다(KJV,
RSV-pestilence).
▶ 치실까 - (적개심을 가지고)
'때리다',
'공격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격렬한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그 심판의 대상이 '우리'라고 표현되었는데,
이는 상호간 적대 의식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시도적인 표현이다.
[출 5:4]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 쉬게 - 이 말의 원래 의미는 '고삐를 풀다'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삐 꿴 짐승처럼 취급당했음을 암시한다.
▶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문자적으로 '일하러 가라'이다.
한편 '역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발라'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뜻한다.
바로는 모세의 요청에 대한 직접적 답변대신 도리어 그들이 배가 불러 잔꾀를 피우며 게으르다는 투로 몰아붙였다.
이미 이스라엘은 출산 억제를 위한 고역에 시달린 바 있거니와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이제 바로는 그들의 고역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즉 바로는 엄청난 노역을 부과함으로써 그들에게 민족의식이 싹틀 틈을 아예 근절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실로 말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포악한 폭군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출 5:5]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 공동 번역에는
'저들이 이
땅의 백성보다도
더 불어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저들에게 노동을
시키지 말라는거냐'라고 번역되어 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유용한 노동력이자 생산 도구로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