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성소(聖召)에 대해서
출애굽기 2장 23-25절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 참조 :
3-4장
모세는,
그 죽은 때가 120세
(신명기 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그가 바로와 대언(對言)
한 때는 80세였다.
(출애굽기 7: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이었고 아론은
팔십삼 세이었더라).
그러므로 모세는 수양 위해 전 생애의 삼분의 이를 드린 것이다.
애굽에 있어서의 사람의 학교에 있어서 40년,
실로 오랜 동안의 수양이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원리(법칙)에 어긋남 없이,
위인 모세도,
또한 만성의 사람이었다.
실로 그는 한때는 이 세상에 있어서의 활동을 단념 했었으리라.
그는 황야에 있어서,
양을 치면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생애에 익숙해져,
이것 이상의 행복을 구하지 않게끔 되었던 것이리라.
세상에서 일을 이룩하려 하는 자가,
일을 이룩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사업을 단념한 사람,
그 사람이 큰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시세(時勢)는,
드디어 모세의 출동을 재촉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2:23-25)’
이상의 세 절 가운데 하나님이라는 글자가 다섯 있다(한글 역에는 두 번 있다).
때는 이미 성숙되어,
하나님께서 인사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리라.
가정(苛政)은 그 극에 달하고,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
하나님께 달하였으므로,
팔꿈치의 능력을 보여,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리라.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로,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으로써 시작하여,
하나님으로써 끝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지시고 하신 것이다.
이 출애굽기도,
또한 하나님의 역사이다.
특히 하나님의 역사이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3:1-3)’
모세는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장소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소(聖召)에 접했다.
몸은 지금은 그의 장인의 목자로 되고,
양과 함께 호렙 산 속에 들어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다.
예복을 갖추고,
회당에 나선 때는 아니다.
노동의 조복으로 천연과 사귀던 때이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3:5-)’
여기에 사람으로서의 증인은 한 사람도 없고 다만 산과 양이,
그리 증인으로 서 있을 뿐으로,
그는 그의 성직에 임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소(聖召)는 언제나 그렇게 하여 행해진다.
혹은 잔잔한(고요한)
강변에 있어서,
혹은 무인의 산 속에 있어서,
혹은 삽(호미)를 잡는 때,
혹은 도끼질을 하는 때,
하나님의 음성은 그의 종에게 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겸손한 모세는 곧 하나님의 성소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는 전과는 달리,
자기의 약함을 잘 알았다.
전에는 자진해 나가서 백성을 구원하려고 한 그는,
이제는 그 일이 도저히 그의 힘에 미치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3:11-)’
바로는 대왕이요,
나는 하찮은 목자,
내 어찌 이 대임을 담당할 수 있으리이까 고.
이는 비겁한 소리는 아니다.
겸손한 말이다.
그렇듯 겸비해짐으로서만이,
구민(救民)의 대업은 성취되는 것이다.
모세는 그리고 또 한 가지의 결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더듬거리는 말이었다.
그는 능변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능변의 술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주어진 직을 사퇴하려 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4:10-)’
능력 없고,
또 변설(辨說)
없으니,
그러므로 나를 용서해 주소서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힘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를 가지시고 행하시는 것이다.
눌변은 굳이 근심할 만한 것이 못된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4:12-)’고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그래도 사퇴해 마지않으므로,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언자로 임명하셨다.
모세는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그의 성직에 임했다.
자기가 이에 견딜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쉽게 성직에 임하는 자는,
쉽게 넘어진다.
사퇴에 사퇴를 거듭하고,
하는 수 없이,
하나님께 끌려 나서는 자,
그가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잘 행하는 것이다.(내촌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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