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8일 토요일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애굽으로 돌아오는 모세

: [ 4:18-23]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생명을 찾던 자가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손에 이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아들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아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 4:18]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형제들 - 좁은 의미로는 부모, 형제, 친척들을, 넓은 의미로는 이스라엘 백성전체를 통칭한다.

지난 40 동안 애굽의 노예로서 험한 일을 도맡아 감당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많은 사람이 사고사(事故死) 당했으리라는 예감과 모세의 신분이 노출되고 살인 사건이 드러남으로써 자신의 일가족이 몰살당했을 있다는 예감 등으로 인해 모세는 안타까운 심경에 빠졌을 것이다.

돌아가서 - '남아있다', '견디다'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이는 민족의 고난 가운데 함께 남아 견디겠다는 의지를 함축한 말이다.

생존하였는지 - '살아있는' 뜻이다. 여기서 모세 친지들의 안부(安否) 여부보다는 생존 여부 자체를 염려하고 있었다.

평안히 가라 - 말속에는 '내가 너를 막지는 않겠다. 그러나 부디 몸조심하라'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자초지종을 몰랐던 이드로로서는 단지 모세가 골육지친에 대한 () 잊지 못하여 목숨을 모험을 감행하고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모세가 자신의 여행 목적을 솔직히 밝히지 않는 것은 장인에게는 하나님의 계시를 확연히 이해할 있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한편 '평안히' 해당하는 히브리어 '샬롬' 안녕, 건강, 번창 등을 묻는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히브리 전통적 인사말이다.

( 43:27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가로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노인이 안녕하시냐 지금까지 생존하셨느냐).



[ 4: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생명을 찾던 자가 죽었느니라.

돌아가라 - 하나님은 모세의 (18) 언급하심으로써 그의 결심을 굳히고자 하셨다.

(18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과 계시에 힘입어 미디안을 떠날 의사를 장인에게 밝히긴 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 생명을 찾던 자가 죽었느니라" 말로서 그를 안심시키면서 애굽 귀환을 독려하셨다.

생명을 찾던 - 여호와를 간절히 사모하여 얼굴(이름) '찾는다' 뜻으로 사용된다.

(대하 15:15 유다가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27;8 너희는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샅샅이 수색함을 가리킨다.

오늘날도 사단은 우는 사자와도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한편 모세의 '생명을 찾던 ' 절대권좌(權座)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모세를 기어이 제거하고자 했던 투트모세 3세와 수하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2:11-15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 4:20] 모세가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나귀 - 당시 교통, 운반을 위한 보편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붉은 숫나귀를 가리킨다.

(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사환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2: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곳을 떠났더니).

한편 모세가 처자식(십보라, 게르솜, 엘리에셀)까지 여행에 대동시킨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대히 순종하고자 하는 그의 신앙적 의지를 반영한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 여기서 지팡이는 본래 모세가 양떼를 치던 지팡이(2)이다. 그런데 지팡이가 하나님의 이적(3, 4) 의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따라서 대국(大國) 바로와 대결하기 위해 애굽으로 향하는 모세는 비록 외관상으로는 처자식들을 나귀에 태우고, 손에는 단지 양치던 지팡이만을 잡았을 뿐이지만,

지팡이가 바로 하나님의 지팡이이기에 함께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바로의 모든 세력은 지팡이 앞에 굴복되어질 것이었다"(Keil).



[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손에 이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내가 손에 이적 - 3:20 예언에서처럼 애굽에서 행해질 각종 이적을 가리킨다.

(3:20 내가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나라를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물론 여기에는 4:3-9에서의 이적도 포함한다.

(4:3-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같이 흰지라
7) 가라사대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
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한편 애굽에서 행해질 이적에 대한 묘사로 원문에는 가지 형태의 단어를 취하고 있다.

(1) 표정(sign)으로서의 이적과

(4: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17 너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2) 전조(前兆, portent)로서의 이적,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손에 이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3) 놀랄만한 경이(marvel)로서의 이적 등이다.

(3:20 내가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나라를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적의 다양한 성격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적의 목적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적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강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주려는데 있는 것이다.

강팍케 - 본서에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자가 바로 자신으로, 혹은 하나님으로 각각 차례씩 기록되어 있다.

(7:13-14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22 애굽 술객들도 자기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8: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통할 있음을 때에 마음을 완강케 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19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32 그러나 바로가 때에도 마음을 완강케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9:7 바로가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뇌성의 그친 것을 때에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니 그와 신하가 일반이라;

13:15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대속하나니;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손에 이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7:3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9: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10: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고;

11:10 모세와 아론이 모든 기사를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14:4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8 여호와께서 애굽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것인즉 그들이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모든 군대와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되,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무시해 버리시지는 않는다는 사상을 드러낸다(Hengstenberg, Keil).



[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아들 장자라.

말씀에 -

'말하다 - (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생각하다', '마음에 이르다 - ( 8:17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능과 손의 힘으로 내가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약속하다 - (대하 21:7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다윗과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명령하다' - ( 15: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귀의 술에 더하라)

등의 뜻으로



이는 하나님 말씀의 성격을 여러모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아들 장자라 -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관계를 부자(父子) 관계로 명시한 최초의 구절이다.

특별히 출애굽직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로 명명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천하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민(選民)으로 부름받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특별한 민족으로서 종교적 특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2) 집안에 있어서 장자가 귀하듯, 하나님에게 있어서 장자처럼 귀한 이스라엘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말이다.

(3) 특히 이스라엘을 독자(獨子, Only Son) 부르지 않고, 장자(長子, First born Son) 부른 것은 차자(次子) 있을 것임을 전제로 것이기 때문에 후일 이방인에 대한 소명도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한편, 당시 애굽의 바로(Pharaoh)들은 스스로를 '태양신의 아들' 자처하는 신자(神子)라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본절과 같은 모세의 선포가 결코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 출애굽 과정에 있어서 남은 것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바로가 섬기는 애굽의 각종 신들과의 숙명적인 대결뿐이었다.

이것은 실로 살아계신 참신 여호와와 헛된 이방 신과의 이미 승부가 싸움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23절에서 ' 아들' ' 아들' 비교된 점에 유의하라.



[ 4: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아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섬기게 - '일하다'( 20:9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봉사하다'( 21: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칠년에는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요)

보다 강한 의미로 '노예가 되다', '종살이 하다' 뜻을 지닌다.

성도가 하나님의 종이 때에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누리거니와, 반대로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할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에게 종살이하듯 죄악과 죽음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장자를 죽이리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이기에 하나님 이외에 누구의 굴레에도 머물 없었다. 그럼에도 바로가 이스라엘을 자신의 노예로 삼고 계속 압제하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의 칼이 바로의 장자를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고는 실제로 12:29에서 성취되었다.

(12: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것을 치시매)

실로 하나님의 뜻을 계속 거부하는 자는 이처럼 참혹한 결과를 맞게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