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5일 일요일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 애굽 공주의 아들이 모세

: [ 2:5-10]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에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7)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아이를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 2: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에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바로의 - 여기 공주는 애굽 18 왕조의 창설자인 아모세의 아들 아멘호텝 1( B. C. 1560-1539) 딸과 투트모세 1(B. C. 1539- 1514) 사이에서 태어난 무남독녀 '핫셉슈트'(Hatchepsut) 가리킨다.

하수(예오르) - 애굽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시내', '수로' 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나일 강을 가리킨다. 애굽의 유일한 젖줄이라 할만한 나일 강은 고대 애굽인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풍요와 건강을 제공하는 성역(聖域)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유역에는 여인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설치해 두고 일종의 종교 의식으로서, 또는 다산(多産)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목욕하도록 했다고 한다(Wilkinson, Strabo, Seetzen). 그러므로 나일강 유역에 애굽 왕실을 위한 목욕장이 특별히 마련되어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울러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모든 사실을 익히 알고 계획을 세워 신중히 행동하였을 것이다.

시녀들 - 여기서 복수로 쓰인 '시녀들' 공주의 집안 일을 돌아보는 하녀들을, 그리그 뒤이어 단수로 쓰인 '시녀' 공주의 측근에서 특별 시중을 드는 젊은 여자를 각각 가리킨다. 기록에 의하면 애굽의 고관 자녀들이 목욕하러 때에는 최소한 서너 명의 하녀들을 대동하였다한다(Wlikinson).

거닐 - '이리 저리 배회하다' 뜻이다.

(삼하 11:2 저녁 때에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시녀들은 공주가 목욕하는 동안 주위를 감시하고 경관을 즐길 겸하여 느긋한 마음으로 강변을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보고 - '주시하다' 뜻이다. 모세를 담은 상자는 매우 정성스럽게 소중히 만들어졌으므로 공주의 특별한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 2:6] 열고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불쌍히 여겨 - '아끼다', '긍휼히 여기다' 뜻이다.

실로 긍휼지심(矜恤之心) 이야말로 다른 모든 의식 준수에 선행해야 하는( 9:13) 참된 사랑의 원천이라 있다.

(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 공주가 아이를 보는 순간 바로 히브리 유아라고 단정할 있었던 것은

(1) 아이의 용모가 셈족 계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며
(2) 당시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히브리 민족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1)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당신께서 쓰실 일꾼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 45:2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

벧전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2) 바로 왕의 엄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어린 생명에게 인정을 베푸는 공주의 휴머니즘이 돋보인다.



[ 2:7]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아이를 먹이게 하리이까

히브리 여인 중에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아이를 먹이게 하리이까 - 미리암 용의주도함과 용기 기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1) 그녀는 바로 공주의 마음씨와 평상시 관례를 미리 알고 아기를 버릴 곳과 시간을 맞추었고
(2) 단순히 아기를 띄워 보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적당한 순간에 공주 앞에 대담하게 나서서 유모 간택을 건의했던 것이다.

유모 - 갓난 아기에게 젖을 빨리거나 아기의 생육을 보살피는 일을 맡은 일을 가리킨다. 히브리 사회에서는 유모가 아기 성장 후에도 가족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유지했다.

( 24:59 그들이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종자들을 보내며;

35: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당신을 위하여 - 미리암은 공주의 의혹을 조금이라도 유발시키지 않으려고 말을 의도적으로 첨가하였다. 따라서 9절의 '나를 위하여' 공주의 말로 미루어 미리암의 이러한 용의주도함이 들어맞았음을 있다.

먹이게 - 원래 '젖빨다' 뜻인데 사역형으로 쓰이면 '양육하다' 의미도 지닌다.

인간은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고 자라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행로가 결정된다. 특히 교육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였던 당시 상황에서 가정교육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 11:19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하고).

후일 모세가 애굽의 우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정의를 따르며 동족의 아픔에 동참할 있었던 것은 바로 경건한 그의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가라 - '그렇게 하라', 혹은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 되겠구나' 뜻이다. 영역본(Living Bible) '좋다, 그리하라'(Yes, do) 옮겼다.



[ 2: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데려가다 - ( 곳으로) '데리고 나가다' 의미를 함축한다(KJV, RSV:take away). 당시에는 바로의 서슬 푸른 엄명이 내려져 있었으므로 궁중에서는 주워온 히브리 아이를 기를 없었을 것이다.

삯을 주리라 - '고용하다', '급료를 주다' 뜻이다. 여기서 요게벳이 자기 아들을 기르는 댓가로 삯을 받았음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제노역에 시달린 나머지 자녀를 양육할 시간조차 얻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요게벳은 어엿이 양육비까지 받아가면서 모세를 기를 있게 되었으니, 여기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가 두드러진다.



[ 2:10]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 히브리인들은 특별한 경우 7살까지 젖을 먹이는 경우가 있다고 하나 대부분은 3 정도에서 젖을 끊는다.

(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삼상 1:22-24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23)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 하여 그를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여자가 아들을 양육하며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 젖을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에바와 포도주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대하 31:16 이상으로 족보에 기록된 남자 외에 날마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반차대로 직임에 수종드는 자들에게 나눠 주며).

따라서 아이(모세) 바로 공주에게 되돌려진 때는 3, 4 가량 되었던 때로 있다.

그의 아들이 되니라 - 자식처럼 여김을 받았음을 가리킨다. 이로 보건대 당시 애굽에는 입양의 풍습이 있었던 같다.

스데반에 의하면 이후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궁중의 모든 학술을 배웠다.

(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여기서 학술이란 철자법, 문법, 역사, 산술, 의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통칭한다.

모세 - '끌어내다', '건져내다' 뜻을 가진 동사 '마솨'에서 유래한 말이다. 본래 애굽어로 ''(Mo) ''이란 뜻이고, '우세스'(Uses) '건져냄을 받다' 뜻이다(Delitzsch).

따라서 모세의 원래 이름이자 애굽식 이름인 '모두세스' '물에서 건져냄을 받은 ' 뜻으로 애굽 공주가 아이를 (나일강)에서 건져낸 것을 기념하여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러나 애굽식 이름은 히브리인들의 발음을 따라 히브리식 이름인 '모세' 고쳐졌는데(Calvin),

뜻은 '건져내는 ' 뜻이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우리는 이름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달을 있다. 이름 속에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서 부과하신 민족적 대사명이 한마디로 함축되어 있다.

죽음의 (나일강)에서 '건지움을 받은' 그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굴종과 예속의 애굽에서 구출하여 역시 죽음의 (홍해)으로부터 '건져내야' 사명을 부여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적으로 모든 죄악으로부터 건져냄을 받은 중생한 자만이 다른 죄인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있다는 진리를 암시한다.

( 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구덩이에 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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