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에게 거부당하는 모세
[모세의 출생과 미디안 도피 생활]
성 경:
[출 2:11-15]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 장성한 - 행 7:23에 의하면 그때의 모세 나이는 40세였다.
(행 7: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그 나이 정도면 애굽의 왕자로서 제반 국정(國政)에 참여할 위엄과 지략을 충분히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높아진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향후 40년 간 미디안 망명 생활을 통해 그 무엇보다도 겸손과 순종의 훈련을 쌓지 않으면 안되었다.
▶ 한번은 - 모세는 장성한 이후 늘 동족의 고통스러운 노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라 이 '한번'의 경우는 평소의 생각을 행동화한 때로 볼 수 있다.
▶ 나가서 - 이는 모세의 외출이 고통 당하는 동족의 근황을 살피기 위함이었음을 암시한다.
(행 7: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가 애굽의 모든 영예와 보화를 마다하고 동족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인도하심만을 믿고 본토와 친척을 떠났던 결단과 그 맥을 같이하는 바
(창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는 결코 도피나 실패가 아니라 용기와 동족애는 일찍이 유아기 때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전해들은 여호와 신앙과 히브리 역사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되어진 것이 분명하다.
(7절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 고역 - '무거운 짐을 지다',
'고통스럽게 짐을 나르다'란 의미의 동사 '사발'에서 유래했다.
이는 일반적 의미로 혹독한 노역을 의미한다.
▶ 보더니 - 모세는 학대받는 동족들의 비운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지 않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늘 지켜보아 왔음에 틀림없다.
▶ 어떤 애굽
사람 - '감독들'인 듯하다.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애굽의 고고학적 자료들에 의하면,
종종 긴 막대기를 팔에 낀 노역 감시관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의 혹독했던 고역 상황을 생생히 전해준다.
[출 2: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 혈기에 찬 기질과 더불어 본절은 모세가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또한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사람만을 의식하여 주위를 살폈을뿐 공의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때 모세의 시야는 좌우보다 위,
곧 하늘에 머물렀어야 옳았다.
▶ 애굽 사람을
쳐 죽여
- 이것은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은 갖추었으되,
그들을 돕는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는 단지 혈기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인간 모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께서 잡힐 당시 혈기에 찬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칼로 친 사실을 상기시킨다.
(요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 모래에 감추니라
- 애굽의 지리적 특성으로 미루어,
시체를 몰래 파묻을 만한 두터운 모래더미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히브리인들의 노역 장소인 고센 땅 동부 지역에는 모래가 많았다(Pulpit
Commentary).
[출 2: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 동포 - 형제, 남편,
애인,
친구,
동지,
이웃 등 매우 친밀한 관계를 나타낼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실로 좁은 자아의 울타리를 헐고 타인의 아픔을 곧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특히 당시 모세의 특별한 지위를 고려하건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 히브리 노예를 동족으로 인식하는 모세의 말 속에서 우리는 장래 출애굽의 영도자로 등장할 모세의 대아적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출 2: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 주재 - 일국의 통치자나 고급 관료 등을 의미한다.
그러한 견지에서 후일 유다서 기자가 언급한대로 궁극적 의미에서의 주재는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한편 본절 전반부에 나타난 바 모세를 향한 그른 자(악한 자)의 악의에 찬 비난은 개인적 울분에 사로잡힌 나머지 모세의 애정어린 설복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살인자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모세를 곤경에 빠뜨릴 의향마저 드러내었다.
이것은 이후에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될 자로서 그가 가장 우려했던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하여튼 동족에 대해서 인간적 접근을 시도했던 모세의 방법은 철저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이 사건 후 수많은 연단 과정을 겪으면서 동족에 대한 구원은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공의로우신 방법에 의해서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시 66:3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 법관(쇼페트) - '재판하다',
'심판하다'의 뜻인 동사 '솨파트'의 분사형이다.
이스라엘에 재판 제도가 정비되어 전문화된 재판관이 선임된 때는 남왕국 유다왕 여호사밧 치세 당시(
B. C. 872-848)였으며, 그 이전에는 족장,
사사,
혹은 왕 등이 재판 사무를 주관했다.
▶ 삼았느냐 - '지명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지명하여 부른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 말이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두려워하여 - 여기서는 사역 동사로 쓰여 간담이 뚝 떨어질 정도로 '깜짝 놀라다'는 뜻이다.
자신이 어제 살해한 애굽인을 감쪽같이 숨겨두었다고 생각했던 모세로서는 동족의 이 폭로성 말에 당혹한 나머지 급거 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 7:29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이렇듯 하나님의 일이란 단순한 의협심이나 자력적 혈기 등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출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 전제 군주 제도하의 애굽에 있어서 왕이나 그 가족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었다.
따라서 비록 양자이긴 하나 애굽의 왕자로서의 신분을 가진 모세가 사람 하나를 죽인 것은 사실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모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당시 애굽 궁중의 정치 세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모세의 살인 사건 당시 애굽의 바로는 투트모세3세(Thutmose
III, B. C. 1504-1448)였는데, 그는 부친 투트모세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투트모세2세의 왕비인 핫셉슈트(Hatshepsut)는 아들을 낳지 못하자 모세를 강에서 주워 자신의 양자로 입양 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때 투트모세2세가 일찍 죽자 모세를 입양시킨 투트모세1세의 무남독녀 핫셉슈트가 애굽의 실권을 장악했고 아울러 모세의 지위도 격상되었다.
그러자 핫셉슈트에 눌려 섭정기에 있었던 야심에 찬 투트모세 3세는 자신의 확고한 왕권 구축을 위해서 최대의 정적(政敵)
모세를 제거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들리자 이것을 민족적 감정으로 비화시켜 정치 쟁점화 함으로써 모세를 제거코자 했고,
이에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도망치기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Jack
Finegan).
▶ 찾은지라 - 원래 (기도로)'간절히 탄원하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가 모세를 찾기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 미디안 땅
- 본래 미디안 사람들은 목축을 위주로 하는 유랑민으로서 여러 곳에 걸쳐 거주지를 이동하면서 사는 족속이다.
그러나 일부는 정착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그 주요 정착지는 엘란(Elan)
만(灣)
동부지역,
곧 아카바 만 지역이다.
따라서 대체로 미디안 땅이라 함은 아카바 만 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때로는 모압 경계선 북부,
(민 22: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혹은 시내 반도 일부에까지 확장되기도 했다.
그런데 시내 반도 부근에 거주하는 미디안 족속들은 보다 셈족속의 전통과 풍습 및 종교에 영향을 받은 족속이다(Lange).
▶ 앉았더라 - '거주하다'는 의미도 내포하는데,
물이 귀한 지역에서 동리는 자연히 우물이나 샘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모세는 황망히 쫓겨 다니다 어느 날 우물 근처에 이르러 거주를 삼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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