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7일 화요일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동족에게 거부당하는 모세
[모세의 출생과 미디안 도피 생활]

: [ 2:11-15]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장성한 - 7:23 의하면 그때의 모세 나이는 40세였다.

( 7:23 나이 사십이 되매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나이 정도면 애굽의 왕자로서 제반 국정(國政) 참여할 위엄과 지략을 충분히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높아진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향후 40 미디안 망명 생활을 통해 무엇보다도 겸손과 순종의 훈련을 쌓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번은 - 모세는 장성한 이후 동족의 고통스러운 노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라 '한번' 경우는 평소의 생각을 행동화한 때로 있다.

나가서 - 이는 모세의 외출이 고통 당하는 동족의 근황을 살피기 위함이었음을 암시한다.

( 7:23 나이 사십이 되매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가 애굽의 모든 영예와 보화를 마다하고 동족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인도하심만을 믿고 본토와 친척을 떠났던 결단과 맥을 같이하는

(15:7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여호와로라),

이는 결코 도피나 실패가 아니라 용기와 동족애는 일찍이 유아기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전해들은 여호와 신앙과 히브리 역사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되어진 것이 분명하다.

(7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아이를 먹이게 하리이까).

고역 - '무거운 짐을 지다', '고통스럽게 짐을 나르다' 의미의 동사 '사발'에서 유래했다. 이는 일반적 의미로 혹독한 노역을 의미한다.

보더니 - 모세는 학대받는 동족들의 비운을 건너 구경하듯 하지 않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 왔음에 틀림없다.

어떤 애굽 사람 - '감독들' 듯하다.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애굽의 고고학적 자료들에 의하면, 종종 막대기를 팔에 노역 감시관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의 혹독했던 고역 상황을 생생히 전해준다.



[ 2: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 혈기에 기질과 더불어 본절은 모세가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또한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사람만을 의식하여 주위를 살폈을뿐 공의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때 모세의 시야는 좌우보다 , 하늘에 머물렀어야 옳았다.

애굽 사람을 죽여 - 이것은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은 갖추었으되, 그들을 돕는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는 단지 혈기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인간 모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께서 잡힐 당시 혈기에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칼로 사실을 상기시킨다.

(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종의 이름은 말고라).

모래에 감추니라 - 애굽의 지리적 특성으로 미루어, 시체를 몰래 파묻을 만한 두터운 모래더미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히브리인들의 노역 장소인 고센 동부 지역에는 모래가 많았다(Pulpit Commentary).



[ 2: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동포 - 형제, 남편, 애인, 친구, 동지, 이웃 매우 친밀한 관계를 나타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실로 좁은 자아의 울타리를 헐고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특히 당시 모세의 특별한 지위를 고려하건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 히브리 노예를 동족으로 인식하는 모세의 속에서 우리는 장래 출애굽의 영도자로 등장할 모세의 대아적 인품을 엿볼 있다.



[ 2: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주재 - 일국의 통치자나 고급 관료 등을 의미한다. 그러한 견지에서 후일 유다서 기자가 언급한대로 궁극적 의미에서의 주재는 홀로 하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한편 본절 전반부에 나타난 모세를 향한 그른 (악한 ) 악의에 비난은 개인적 울분에 사로잡힌 나머지 모세의 애정어린 설복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살인자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모세를 곤경에 빠뜨릴 의향마저 드러내었다.

이것은 이후에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자로서 그가 가장 우려했던 가지 요인이 되었다. 하여튼 동족에 대해서 인간적 접근을 시도했던 모세의 방법은 철저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따라서 그는 사건 수많은 연단 과정을 겪으면서 동족에 대한 구원은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공의로우신 방법에 의해서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울 있었다.

( 66:3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4:33 사도들이 권능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은혜를 얻어).

법관(쇼페트) - '재판하다', '심판하다' 뜻인 동사 '솨파트' 분사형이다. 이스라엘에 재판 제도가 정비되어 전문화된 재판관이 선임된 때는 남왕국 유다왕 여호사밧 치세 당시( B. C. 872-848)였으며, 이전에는 족장, 사사, 혹은 등이 재판 사무를 주관했다.

삼았느냐 - '지명하다' 뜻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지명하여 부른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말이다.

(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것이라).

두려워하여 - 여기서는 사역 동사로 쓰여 간담이 떨어질 정도로 '깜짝 놀라다' 뜻이다.

자신이 어제 살해한 애굽인을 감쪽같이 숨겨두었다고 생각했던 모세로서는 동족의 폭로성 말에 당혹한 나머지 급거 도주하지 않을 없었다.

( 7:29 모세가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이렇듯 하나님의 일이란 단순한 의협심이나 자력적 혈기 등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 2:15] 바로가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바로가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 전제 군주 제도하의 애굽에 있어서 왕이나 가족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었다. 따라서 비록 양자이긴 하나 애굽의 왕자로서의 신분을 가진 모세가 사람 하나를 죽인 것은 사실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모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당시 애굽 궁중의 정치 세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모세의 살인 사건 당시 애굽의 바로는 투트모세3(Thutmose III, B. C. 1504-1448)였는데, 그는 부친 투트모세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투트모세2세의 왕비인 핫셉슈트(Hatshepsut) 아들을 낳지 못하자 모세를 강에서 주워 자신의 양자로 입양 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투트모세2세가 일찍 죽자 모세를 입양시킨 투트모세1세의 무남독녀 핫셉슈트가 애굽의 실권을 장악했고 아울러 모세의 지위도 격상되었다.

그러자 핫셉슈트에 눌려 섭정기에 있었던 야심에 투트모세 3세는 자신의 확고한 왕권 구축을 위해서 최대의 정적(政敵) 모세를 제거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들리자 이것을 민족적 감정으로 비화시켜 정치 쟁점화 함으로써 모세를 제거코자 했고, 이에 모세는 어쩔 없이 도망치기 않을 없었던 것이다(Jack Finegan).

찾은지라 - 원래 (기도로)'간절히 탄원하다' 뜻이다. 이는 바로가 모세를 찾기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미디안 - 본래 미디안 사람들은 목축을 위주로 하는 유랑민으로서 여러 곳에 걸쳐 거주지를 이동하면서 사는 족속이다. 그러나 일부는 정착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주요 정착지는 엘란(Elan) () 동부지역, 아카바 지역이다. 따라서 대체로 미디안 땅이라 함은 아카바 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때로는 모압 경계선 북부,

 ( 22: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혹은 시내 반도 일부에까지 확장되기도 했다. 그런데 시내 반도 부근에 거주하는 미디안 족속들은 보다 셈족속의 전통과 풍습 종교에 영향을 받은 족속이다(Lange).

앉았더라 - '거주하다' 의미도 내포하는데, 물이 귀한 지역에서 동리는 자연히 우물이나 샘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모세는 황망히 쫓겨 다니다 어느 우물 근처에 이르러 거주를 삼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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