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7일 토요일

오늘부터 출애굽기를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대의
(오늘부터 출애굽기를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이를 일컬어 모세의 2)라고 한다.

창세기 이하의 5서를 (모세의 5)(모세 5) 하고, (출애굽기는) 둘째 번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컫는다.

출애굽기의 이름은 (칠십인역)에서 나온 것으로, 뜻은, 히브리서 11 22절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요셉이 임종하려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 떠날 것에 대하여 말하고-일역)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한글역) 그것이다.

애굽(이집트 Egypt) 당시의 세계적 세력이었다. 오늘의 미국 같은 것이었다. 물질문명의 중심이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대로, 세속적 정신을 대표하는 나라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인은 당시 애굽의 포로로 되어 있었다. 속박에서 그들은 어떻게 탈출했는가, 그것을 것이 책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출세속기이다. 탈속기(脫俗記)라고 해도 가하다.

선민이 어떻게 해서 현세의 기반(속박 a yoke)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유의 백성으로 되었던가그것을 것이 출애굽기이다. 선민의 탈세간기(탈세속기)이다. 구출록이다.

이렇게 , 글의 중요한 이유가 해득된다. 우리들 누구나가 출세간(출세속) 필요로 하지 않을 있으랴!

세상의 세력은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들은 속박 당한바 되어 신음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에 들려고 허우적거리면서 몸부림치는 자이다. 신자 각자에게 출애굽기가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 있음은 당연하다.

출애굽기는 40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은 선민 사로잡힘의 기록이다. 40장은, 여호와의 영광이 백성과 함께 있는 기사이다. 노예 백성으로 시작하여, 성결함을 입은 자유의 백성으로서 끝난다.

치욕으로서 시작하여, 영광으로서 끝난다. 노예에서 자유에 이르기까지의 도정(노정) 보여 주는 것이 ()이다. 그리고 노예는 애굽에서 행해지고, 해방은 시내 산에 있어서 행해졌다.

1장에서 15장까지가 애굽에 있어서의 사건의 기사이고, 16장에서 끝까지가 시내 반도에 있어서의 기록이다. 전자를 애굽 편이라 것이고 후자를 시내 편이라고 해야 것이다.

그리고 애굽 편은 해탈록(노난과 속박에서의 벗어남을 기록)이고, 시내 (Sinai) 훈련기이다. 노예민이 압제에서 구출되어, 자유민 되는 훈련을 받음, 그것이 출애굽기이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신 (성업)이었다. 점에 있어서, 출애굽기는 다른 독립사와 다르다. 백성 스스로가 싸워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매임 당한 () 풀어, 그들로 하여금 자유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전사(戰士)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이렇게 하여, 출애굽기는 창세기와 한가지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다. 위에 더욱, 가장 특이(현저) 은혜의 역사이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신명기 5:15-)라고 있는 그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써 백성을 구출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출은 이적으로써 행해졌다. 사람의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출애굽기를 보통 역사로서 해득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성업(성역)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적은 당연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택한 특별한 사람으로서 경이할 구출을 행하셨다.

사람은 모세였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인 동시에, 모세의 전기이다. 세계의 역사는 위인의 전기라고 칼라일 말이, 여기서도 증명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성의) 행하심에 있어서, 사람으로서 하신다. 이적은 자연적으로 행해지고, 하나님은 직접으로 인사(human business) 간섭하시지 않으시나, 사람을 통해 가지고서 관계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는 , 모세를 택하셨다. 그리고 선민의 역사가 은혜의 역사이듯, 모세의 일생이 은혜의 일생이었다. 모세의 출생 시대와 환경, 그의 성육, 교육, 수양, 훈련, 그것을 자세히 말해 주는 것이 ()이다. 국민의 역사에, 개인적 인류적 흥미 있음은 때문이다.

루터 전기, 크롬웰 전기에 마찬가지의 취미가 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목적을 가지시고 그가 특별히 선택한 사람의 일생을 인도하신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전기로서 보면, 비상한 흥미가 있다.

애굽 탈출에 따른 이적, 홍해의 횡단, 십계의 수여, 만나의 하사, 천막 예배(장막예배) 제정 ,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의 최대의 사건은 () 보여 주고 있는 바이다.

그리스도교는 구출의 종교인 것으로 기원은 출애굽기에 있어서이다. 구원은 구출인 것으로, 출애굽기는 모범이다.

신자는 모두 이스라엘인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같이,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다. 출애굽기를 해득하지 못하고서, 그리스도교를 수는 없다.

여호와는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강림하셨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상편이다. 3 7-8절이 그것을 표명해 주고 있다.

(3 7-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우고를 알고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족속,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여호와는 백성 중에 거하시려고 강림하셨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16 이하의 하편이다. 그리고 40장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신자 각자가 구원되는 것도, 인류 전체가 구원되는 것도, 순서에 따르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며(출애굽기 40:34)라는 것이 출애굽기의 종극이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시록 21:3-)라는 것이,

인류 구원의 최후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으신 인류를 악마의 손에서 탈환하여 다시 이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와 부자의 관계에 들어가신다. 이것이 구원이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지고서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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