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불꽃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
[모세의 소명]

: [ 3:1-4] 모세가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3:1] 모세가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호렙에 이르매

이드로 양무리를 치더니- 이는 일회적인 의미가 아니라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가축들을 돌봤다는 의미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에 앞서 40년간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요셉을 애굽 총리로 등용하기전, 그를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의 신분으로 가사(家事)일을 돌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맥을 같이 한다.

광야 - (양떼들을) '정렬시키다' 뜻의 '다바르'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광야' 혹은 '사막'보다 '목초지' 옮기는 것이 좋다.

로젠뮬러(Rosenmuller) 의하면 이곳은 시내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나 매우 비옥한 골짜기들이 있어 목초지로서 안성마춤이라 한다.

인도하여 - 말은 이스라엘을 장차 애굽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모세의 사명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말이 80:1 에서는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 80:1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하나님의 호렙 - 성경 기록에 의하면 호렙산 종종 언약의 산으로서, 십계명을 부여받았던 시내산 혼용되고 있다. 성경은 산의 지리적 구별을 엄밀히 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견지에서 산의 관계에 대한 몇몇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산의 총칭은 호렙인데 특별히 정상 부분만을 일컬어 '시내' 한다.
(2) 산에 봉우리가 있어 하나는 호렙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이다.
(3) 산은 동일한 산으로서 가지 이름을 갖는다.

이처럼 견해를 종합해 보더라도 산의 관계를 엄밀히 구분하기란 어렵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 호렙(시내)산은 시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해발 2, 291m '예벧 무사'(jebel Musa, 모세의산) 해당한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곳을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고 명명한 것은 혹자의 주장처럼 이곳에 '이드르' 신전이 있었기 때문(pulpit commentary) 아니고, 이전부터 거룩한 곳으로서 그렇게 불려왔기 때문(Knobel) 아니다.

그것은 출애굽 직전 모세가 정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께서 산에 현현하사 언약의 증표로 율법을 수여했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신 현현의 장소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산으로 성별되어 영영히 기억되었던 것이다.



[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여호와의 사자 - '파견하다'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송된 '특사

(왕하 5: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씻으라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대하 36:15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성과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사자들을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천사'등을 의미한다.

( 148:2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지어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위 신현현(TheophanicAngel)으로서 삼위일체의 2위이신 성육신하시기 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Calvin, Pulpit Commentary).

떨기 나무 - 학명은 '아카시아 닐로티카' 시내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가시덤불'(thron bush) 가리킨다.

나무는 주위의 고상하고 당당한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앙상하고 아주 볼품없이 생긴 나무로서 노예로 전락하여 곤핍하고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현생활을 상징해 준다고 있다.

그런데 나무에 거룩,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것은 이스라엘 위에 머물러 있던 모든 고통의 멍에를 끊고 해방과 기쁨을 제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는 계시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임재 사건은 후일 중에 신음하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육화(肉化)(Incarnation)하셨던 예수의 임마누엘 사건을 예표한다.

( 1:21-2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모든 일의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불꽃- '창끝' 뜻하는 '레하바' '' 의미하는 '에쉬' 결합된 형태이다. 이는 모든 불의한 세력을 태워 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성을 상징한다.

( 10: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요 거룩한 자는 불꽃이라 하루 사이에 그의 형극과 질려가 소멸되며).

특히 불꽃이 떨기나무로부터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나타나시니라 - 말은 '주목하다', '제시하다'(보이다) 의미도 내포한다.

모세는 낙심 가운데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이제 때가 차매 그에게 위대한 비젼을 계시하시기 위해 초자연적 현상 가운데 모세의 시선을 '주목시키시면서' 나타나신 것이다.



[ 3: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돌이켜 가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수르' '다시 부르다' 의미도 지닌다.

모든 양떼들을 다시 돌이키게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유발시켰음을 암시한다. 아마 모세는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부터 어떤 초자연적 전능을 감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 문맥상 미완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보다 원문에 가깝게 해석하면 '떨기나무가 불타서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있는고' 된다.

한편 원문에서는 '떨기나무' 말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있는데, 그것은 당시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일어난 현상에 대해 얼마나 놀랐는지를 그러한 중복강조를 통해 표현했던 것이다.



[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 - '자존자' 또는 '영원한 ' 뜻하나 '예호와'(야웨)라는 이름과 '전능자' 또는 '위엄을 가지신 ' 뜻하는 '엘로힘' 동시에 사용되었다. 이는 모세에게 계시된 신이 절대 유일하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보려고 - '면밀히 관찰하다', '깊은 주의를 기울이다' 뜻이다. 그런데 말이 명사로 쓰이면 '맹금'(독수리) 뜻하는데 이는 예리한 관찰력에서 유래한 듯하다.

불러 - '명하다', '초대하다', '선포하다' 뜻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에 참여케 하시기 위해 일꾼을 불러 소명(召命) 부여하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상 3: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특히 속에는 일꾼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의 고귀한 특권이 암시되어 있다.

모세야 모세야 - 모세의 이름이 거듭 불려짐으로써 상황의 긴박성과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삼상 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초자연적 불꽃 가운데서 들리는 음성을 듣고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대답은 지극히 초라한 자신에 대한 고백과 겸양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비교 : (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삼상 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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