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8일 수요일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모세의 미디안 광야 생활

: [ 2:16-22]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가로되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 2: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제사장 - 말은

살렘 멜기세덱

( 14:18 살렘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애굽의 제사장

( 47:22 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전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삯군 제사장 미가

( 18: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이스라엘 국가내의 공인된 제사장들(삼하15:27)에게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삼하15:27 왕이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아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으로 돌아가라)

'제사장'이란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신에게 제사를 집례하는 사제(司祭)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곳에 등장하는 미디안 제사장도 유일신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단지 그는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 권능자로 알려진 셈족의 하나님 ''(El) 숭배했던 자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영향하에 있었기에 그는 훗날 이스라엘의 출애굽 기사를 들은 여호와 신앙으로 쉽게 개종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미디안 제사장은 미구에 모세의 장인이 '르우엘'<18>이었다.

(18 그들이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2: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쫓는지라 - '괴롭히다', '몰아내다' 뜻이다. 사막의 거친 젊은 목동들이 우물가에서 차례를 기다리기는 커녕, 먼저 길어둔 마저 빼앗아 가려고 하는 상황을 짐작하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구나 19절로 미루어 목자들은 르우엘 딸들에게 음흉한 수작을 걸어오기까기 했던 같다.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다', '도와주다' 뜻이다. 홀홀단신 그것도 지친 몸으로 여러 상대를 향해 과감히 들고 일어난 것으로 미루어 모세는

(1) 약자의 핍박을 그냥 두고 지나치지 못하는 의로운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2) 애굽 궁중에서 무예를 익힌 그의 용력 또한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 2:18] 그들이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르우엘 - '하나님의 친구' 혹은 '전능자의 친구' 뜻의 이름이다. 여기서 '' 유일신 여호와를 지칭하는 말이라기 보다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 전능한 신으로 여겨져 왔던 셈족의 하나님 이름이다.

따라서 '르우엘' 유일신 여호와 신앙자라 보기는 힘들고, 단지 셈족속의 일반적인 전능자 하나님을 단일신(單一神)으로 믿었던 사람이라 있다.

한편 그는

'이드로'(3:1;18:1) 또는 '호밥'( 10:9; 4:11)이라고 불리워졌다.

그것은 아마 '르우엘' 그의 본명이었으며, '이드로' 그가 제사장이 후에 얻은 공식 존호(尊號) 듯하다. 그리고 '호밥'이란 이름은 모세의 장인이 아닌 처남의 이름이다. 이는 장인과 처남을 뜻하는 히브리어(호텐) 동일하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 10:29 모세가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 2:19] 그들이 가로되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였나이다

애굽 사람 -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으므로 용모나 기품에서 전형적인 애굽인의 체취를 풍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모세는 애굽 귀족의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르우엘의 딸들이 모세를 애굽 사람으로 판단한 것은 자연스럽다.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었나이다 - 르우엘의 딸들은 모세의 각별한 친절을 매우 소상히 묘사했다. 말을 들은 르우엘은 당연히 최상의 예우로 은혜를 갚고자 했을 것이다.



[ 2:20]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버리고- 쓸모없는 물건 혹은 가증스러운 것을 '내버린다' 또는 '배반한다', '도망하다' 의미로 자주 쓰인 말이다.

( 39:12 여인이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55:7 악인은 길을, 불의한 자는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는 자신들의 안전만을 위해 황급히 피신해 옴으로써 은혜 갚기를 가벼이 여긴 딸들에 대한 호된 책망과 아울러 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대접하라 - '먹다'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귀한 손님에게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고대 근동 지역의 오래된 풍습이었다.

( 18: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말대로 그리하라).

여기서 모세와 르우엘 간에 주고받은 선행의 자취는 오늘날 모든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며

(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2:13 성도들의 것을 공급하며 대접하기를 힘쓰라),

아울러 그것은 전혀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구제임에도 불구하고 필경 되돌려 받게되는 축하의 전형을 보여준다.

( 11:1 너는 식물을 위에 던지라 여러 후에 도로 찾으리라).



[ 2: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기뻐하매 - '족하게 여기다', '승낙하다' 의미이다. 애굽 왕궁에서 도피한 이후 모세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던 터라 르우엘의 환대에 대한 그의 태도는 사뭇 반가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르우엘의 집안에 머물면서 마치 지난날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고용된 일꾼으로 있었던 때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1) 르우엘은 딸을 구해준 믿음직스러운 모세에게 먼저 혼인을 청했으리라 짐작된다. (2) 그러자 모세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고려하여 별다른 심사숙고 없이 곧장 제안을 승락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생에 걸쳐 가장 중요한 대사 중의 하나인 혼인을 그토록 쉽사리 결정한 것은 다소 무모하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도 모세는 고달픈 방랑 생활에 시달린 나머지 현실에 안주하고픈 일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 이방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인 사건은 단순히 폐쇄적인 히브리주의에서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여호와 신앙주의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찍이 요셉도 애굽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인 적이 있었다.

( 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제사장 보디베라의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땅을 순찰하니라).

이것은 구약 시대로부터 여호와 신앙이 이방인들에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십보라 - ''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녀는 르우엘의 일곱딸 맏딸로 추정되며 모세의 아내가 되어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낳았다.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18:3-4 아들을 데렸으니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
4)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할례 사건으로 남편과 심각한 긴장 상태에 놓이기도 했으며

(4:24-26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때에 십보라가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르우엘에게로 돌아갈 정도로(18:2, 3, 4) 성격이 강한 여성이었던 같다.

(18:2-4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 보내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3) 아들을 데렸으니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
4)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 2: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게르솜- '이방인', '도피처' 뜻의 '게르' 어원이 알려지지 않은 '' 결합한 형태이다. 혹자(Kalish) 따르면 '' 지시대명사로서 '그곳' 뜻하는 말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칼리쉬에 따르면, '게르솜' '도피했던 그곳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모세는 아들 '게르솜' 이후 그곳에서 차자 '엘리에셀' 얻게 된다(18:4; 7:29).

한편 게르솜은 바벨론 포로 때까지 자손을 위한 제사장으로서 우상을 섬겼던 요나단 집안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 18:30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자손은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백성이 사로 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 (손님으로서) '거주하다', (낯선 장소에서) '움츠려들다' 의미의 동사 '구르'에서 유래하였다.

바로의 추적을 피해 가까스로 피난처에 정주하게 되었지만, 지냈던 부귀 권세 민족을 위한 포부 등에 견주어 작금에 처한 모세의 심경은 정처없고 고적한 나그네의 심경,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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