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31일 금요일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바로의 두 번째 타협안
[메뚜기와 흑암 재앙]
성 경:
[출 10:24-29]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기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들을 보내기를 즐겨 아니하고
28)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가로되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출 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 머물러 두고
- '두다',
'공탁하다'는 뜻으로서,
돌아오겠다는 담보로 가축을 두고 갈 것을 의미한다.
양과 소를 귀중한 재산으로 여겼던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위의 말은 맨몸으로 떠나라는 의미와 같다.
결국 바로는 아무런 생계 대책 없이 떠날 테면 떠나 보라는 식의 얄팍한 계산에 따라 출애굽을 허락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의 말은 여호와께 드릴 희생 제물마저 가져갈 수 없다는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목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출 10:25]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
제물도 없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라는 바로의 모순된 제안에,
모세는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 야훼께
드릴 제물과
번제물을 당신이
손수 마련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라고 반문함으로써,
바로의 간교한 술책을 일축해 버렸던 것이다.
[출 10:26]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기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 출애굽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처음부터 여호와를 섬기는 데 있었다.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7: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9: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즉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출애굽 운동의 요점이었다.
가시적인 예배나 모든 삶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데로 귀결된다.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
즉 영적 이스라엘의 최종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늘 명심하자.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거기 - 출애굽에 대해 첫 약속이 주어졌던 시내 산을 가리킨다.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 알지 못함이니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까지 하나님께로부터 제사 제도에 관한 지시(레 1-7장)를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규례대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다른 이방 종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기독교의 특징이다.
한편 나아가 본절의 내면적인 의미는 가축 한 마리도 애굽에 남겨둠이 없이 다 가져가야 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완곡한 어조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출 10:28]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 이는 일말의 겸손이나 회개라곤 전혀 찾을 길 없는 바로의 마지막 항거이자 추악한 몸부림이다.
그는 3중 명령(떠나가라, 삼가라, 보지 말라)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은 고집과 그에 따른 멸망을 자기 스스로 확증하고 말았다.
즉 바로는 자신의 강퍅함으로 말미암아 아홉 번 째 회개의 기회마저 상실하였던 것이다.
실로 보이는 현실적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인간에게 더욱 중요한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실성이 없는 자는 마침내 자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출 10:29]
모세가 가로되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 이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바로의 완악함에 대해 하나님의 전권 대사 모세가 그 권위로 바로에게 단호히 선포하는 결별 선언이다.
따라서 이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제 끝났습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바로의 면전에서 계속 머무르면서 마지막 재앙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하게 된다.
(11: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반면 이것은 바로에게 주어진 회개에의 마지막 처절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로 볼 때 악인이 멸망 받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도 아니다.
오직 자기 죄에 대한 억척스런 고집 바로 그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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