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 째 흑암 재앙
성 경: [출 10:2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출 10: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만한 흑암이리라
▶ 흑암이 있게 하라 - 아홉 번 째 재앙은 흑암 재앙이었다. 이 재앙 역시 지금까지의 모든 재앙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현상을 통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즉 흑암 재앙은 그 지방의 계절풍으로서 캄신(Khamsin-일명 '사막의 바람'으로 몹시 뜨거운 남풍)이라고 불리우는 폭풍과 그리고 일식(日蝕)을 동반해 내려진 재앙인 듯하다.
이 폭풍은 보통 춘분을 전후해서 2-3일 동안 계속 부는 것이 관례인데 먼지와 가는 모래만이 온통 공중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마치 검은 휘장을 하늘에 깔아 놓은 것과 같다.(Lange),
따라서 태양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도무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만이 온 지면을 덮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지면의 형태가 완전히 바뀜으로써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
한편 거친 폭풍우와 칙칙한 습기로 인해 집안에 있는 불빛까지 꺼지게 되므로 사람들은 단지 깊은 골방에서 공포에 떨며 폭풍이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 뒤따라 올 죽음의 밤을 예견케 하는 전조적 재앙이었다.
동시에 이 흑암 재앙은 애굽이 자랑하는 모든 신과 사상과 철학을 송두리째 흑암 속에 묻어버림으로써, 여호와만이 홀로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심을 명백히 선포한 계시적 측면을 지니기도 한다.
분명 이 흑암 재앙은 3가지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초자연적인 이적 사건이다.
첫째,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애굽에 미쳤다는 점.
둘째,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는 곳에만 재앙이 미치지 않았다는 점.
세째, 유사이래 이만한 재앙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는 점 등이다.
▶ 더듬을 만한 흑암 - 직역하면 '충분히 느껴질만큼 두꺼운 흑암', '붙잡아 느낄만할 흑암'으로서 어두움의 상태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자연 현상적인 어두움을 뛰어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재앙으로 내리신 절대적인 어두움을 가리킨다. 동시에 이 표현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치 눈먼 소경처럼 더듬거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이는 영적인 어두움이 극에 달한 애굽인들의 심령 상태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출 10: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 캄캄한 흑암 - '어두움', '흑암'이란 뜻을 동시에 지닌다. 히브리어에서 동일한 두 단어 혹은 동의어를 결합시키면 그 의미를 아주 강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따라서 이 구절은 극히 어두운 상태를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KJV,
RSV, 공동 번역은 모두 '짙은 어두움'(thick darkness)으로 번역하였다.
▶ 삼일 동안 - 애굽 궁중에서는 매일 아침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북을 치고 노래 부르며 경배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교행위들을 이렇게 흉내 내었었다.
(32:1-6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이러한 행위는 곧 태양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한 신(神)임을 고백하는 것인 동시에 하루의 생활을 인도해 주실 것에 대한 기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제사를 소홀히 한다거나,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날(구름으로 인해)이 발생할 경우 그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태양신(Sun- god)은 그들 운명의 열쇠였다. 그러나 칠흑 같은 흑암이 3일 동안 애굽 전역에 계속 됨으로써, 그들이 최고의 주신(主神)으로 숭상했던 태양신 '라'(Ra)의 허구성이 여실히 파헤쳐졌으며, 반면에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 홀로 역사와 자연의 실질적인 주인이심이 확연히 드러났다.
[출 10:23]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 흑암이 극심했음을 말해 주는 시적 표현이다.
▶ 자기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 처소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샤브'는 '앉다', '거하다'를 뜻하는 '야샤브'에서 유래한 말로 곧 '자리', '거하는 곳'을 뜻한다. 그리고 '일어서다'로 번역된 '쿰'은 '일어서다', '서다'를 뜻한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이 구절의 뜻은 누워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기 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거나 활동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좋다.
따라서 어떤 번역은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으나'로 번역하였다.
▶ 광명 - '조명', '발광체', '해' 등의 뜻으로 고센 지역에는 어두움의 흔적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애굽의 흑암을 조소하듯이 찬란한 해가 온 누리에 비취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가 지적했듯이,
여기서
애굽의 흑암은 하나님의 진노를
(계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이스라엘의 광명은 그의 은총을 각기 상징한다.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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