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4일 토요일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하나님께 호소하는 모세

: [5:22-23]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백성을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5: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돌아와서 - 말은 '회상하다', '회개하다' 등의 의미도 내포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세가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이켜 회개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지워진 너무도 막중한 짐을 감당하기 어려워 잠시 낙망했다가 다시금 과거에 체험한 권능을 회상하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와 겸허하게 무릎을 꿇었다는 뜻이다.

어찌하여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 이는 자신을 선택하신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분노에 찬탄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없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경륜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한계를 탓하는 신앙인의 절규이자 간접적인 간구이다.

( 74:1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치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

89:46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칼리쉬(Kalisch) 표현을 빌자면, "전능자의 뜻을 알고자 분투 노력하는 경건한 영혼의 몸부림"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당신 앞에서 몸부림치는 영혼의 탄원을 들으시고 적절히 응답하신다.

( 1:13-17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15)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며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6)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17)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열국을 살륙함이 옳으니이까;

2:3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실상 모세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이미 주어진 상태였다.

( 3: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손에 이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 '산산 조각으로 깨뜨리다', '괴롭히다' 뜻인 동사 '라아' 사역형 수동태이다.

모세의 탄원은 하나님의 백성이 당신을 모르는 패역한 왕으로부터 압제롤 당해야만 하는 이유를 몰라 답답해하는 물음이다. 따라서 이러한 물음은 신정론(神政論) 결부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세상에 악의 존재, 심지어 의인이 악인으로부터 핍박당하는 것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배후에는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오묘한 경륜이 깃들어 있음을 있다.



[5:23]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백성을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여기서는 ()애굽을 암시하는 말이다.

모세는 출애굽은 커녕 속박만 더욱 가중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달라는
간절한 탄원을 이처럼 강한 부정어를 통해 역설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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