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와의 응대(reception)
(출애굽기 5장)
모세와 아론은 서로 도와 애굽 왕 바로 앞에 섰다.
그들은 황야에서 온 야인,
바로는,
대국의 왕이었다.
양자 상대했지만,
물론 대왕은 곧 야인의 말에 귀를 기우릴 기미도 없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5:1-2)’
모세와 바로의 대항은,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
모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음에 대하여,
바로는 여호와의 존재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조화(助化)
같은 것 있을 리는 없다.
하나님 외에 아무 의지할 바 없는 모세와,
강국의 대권을 오로지 스스로만이 장악하고 있는 바로,
당랑(螗螂)이 도끼에 맞선다는(당랑지부(螳螂之斧)
것은,
이런 것이리라.
모세의 말을 듣고서,
바로는 더욱더 노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무거운 짐(a
heavy burden)을 더욱 무겁게 했다.
학대 위에 학대를 더욱 심하게 했다.
그는 백성의 관리에게 명하여 말했다.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5:9-)’
자유를 원하는 것 같은 일은,
그들에게 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강제 노동소에 수용시켜 잠시의 여가도 주지 않는다.
이 생각이나 다른 어떤 여유를 가질 수 없게 한다).
(그래서) ‘더욱 노동을
과중히 시켜
다른 생각할
틈을 없게
하라’이다.
그러면,
그들은 선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끔 되리라고.
이는 포학한 군주가 언제나 하는 말이다.
백성이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금을 무겁게 하고,
일(노동)을 더 시키면,
그들은 침묵할 것이라고.
바로는 말한다.
너희들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5:17).’
백성이 자유를 요구하면,
이는 게으른 까닭이라고 한다.
알기 어려운 것은 실로 왕자의 마음이다.
역사가는 말한다.
옛날의 애굽에,
모든 문물은 갖추어져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고.
실로 그러했다.
애굽뿐 아니라,
바벨론에 있어서,
앗시리아(앗수르)에 있어서,
인도에 있어서,
지나에 있어서,
그렇다.
동양 전체에 있어서,
모든 문물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개인의 자유만은 없었다.
동양제국에 있어서는 사람 같은 자는 황제든가,
왕이든가의 한 사람 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아니라 기계였다(고대 동양의 인간관).
왕명(王命)이고 보면,
복종해야만 하는 의지 없고,
자유 없는,
우마(牛馬)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자유는,
애굽에 있어서,
이스라엘로써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신정(新政)은 시작되고,
신정과 동시에,
율법은 제정되어 율법에 의해,
백성의 자유는 확증된 것이다.
실로 모세는 세계 최초의 입헌적 정치가이다.
그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인류는 비로소 자유의 출발의 장도에 오른 것이다.
모세가 그의 형 아론과 함께,
애굽왕 바로 앞에 서서,
백성의 석방을 요구할 때까지는,
인류는 이제껏 이 요구를 한 일은 없다.
그리고 모세의 이 요구를 비롯하여 그로부터 3,500년 후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이 요구가 끊긴 때는 없다.
(내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