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5일 토요일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구원을 호소하는 바로

: [ 9:27-35]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28) 여호와께 구하여 뇌성과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자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31)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33)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서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뇌성의 그친 것을 때에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니 그와 신하가 일반이라
35)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 9: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 말의 뜻은 '정말 이번에는 내가 잘못하였음을 인정하노라'이다(Kalisch).

그러나 바로의 고백은 진실된 회개가 아니라 죽음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충동적으로, 호소하듯 뇌까린 말이었다.

이는 재앙의 심각성에서 벗어나자 또다시 그의 마음속에 과거의 완악함이 되살아난 것으로 보아 있다. 여기서 보듯이 하나님과 바로의 관계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힘과 힘의 대립관계였다. 이런 관계에서는 진실한 회개가 나올 없다.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 고백 역시 진실한 고백이 아니라 순간적인 위험을 모면하기 의한 가증된 기만행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라는 히스기야 왕의 고백과

(대하 12:6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하나님 우리 주여 주는 의롭도소이다"라는 에스라의 고백은

( 9:1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앞에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신앙 고백이다.



[ 9: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자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 말은 하나님의 이적이 목적하는 (16) 나타낸 말로서, 우주를 만드시고 또한 그것을 통치하시는 자가 진정 누구인지를 분명히 선포한 말이다.

(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중에 거하는 자가 여호와의 것이로다;

17:24-26 우주와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혈통으로 만드사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강대국의 왕으로서 '통치자', '파라오'(Pharaoh)라는 호칭을 가지고 스스로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고 있는 바로에게, 그리하여 자신이 세계의 통치권자인 착각하고 있는 교만한 바로에게 모세의 메시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왕이 알리이다 - 바로는 이미 앞서 있었던 여러 재앙을 통해서, 세상의 통치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순종하지 않았다.

또한 바로를 포함한 그의 신하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경외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야고보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귀신들도 하나님을 알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그를 경외하지는 않았다.

( 2:19 네가 하나님은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이와같이 하나님을 단순히 아는 그치며 그분을 경외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오늘날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찾아 있다.



[ 9: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

바로는 왕의 위신조차 지키지 못하고 차례씩이나 식언(食言)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다. 이제 모세도 보다 결정적인 능력의 증거가 아니면 강퍅한 바로의 마음을 돌이킬 없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모세의 말은 이후에 다른 재앙이 계속될 것을 미리 경고한다.



[ 9:31]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 본절은 25절의 보충 설명격으로 우박 재앙의 시기를 암시해 주며, 이적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해 준다.

애굽에서 보리의 패는 시기와 삼의 꽃피는 시기는 대략 1-2 정도이다. 따라서 우박 재앙의 시기가 태양력으로 1 말에서 2 초순경임을 있다.

- 더운 지방에 사는 애굽인들이 즐겨 입는 옷의 재료이다(Herodotus). 따라서 애굽에서는 곳곳에 삼을 많이 재배하고 있었고 종류도 다양했다.



[ 9:32]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고로 - 밀과 나맥은 보리나 삼보다 후에 결실(3 말경)함으로 우박 재앙 때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가 끝까지 교만함으로써 결국 나중에 메뚜기 재앙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 이것은 회개를 모르는 패역한 자에게 하나님이 끝까지 징계하심을 보여 준다.

나맥 - 빵의 재료로 널리 사용되던 일종의 쌀보리(Rie) 가리킨다.



[ 9:33]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서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

모세가 손을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기 전까지 우박과 천둥과 번개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세는 중보자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담대히 벌판('성에서 나가서') 서서 구원을 호소함으로써 재앙이 종식되게 하였다. 하나님과 인간의 아름다운 동역 장면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 이전에는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상하나, 본서 기자의 시각에 '' 애굽에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록치 않다가, 모세의 중보 기도로 모든 것이 말끔히 가셨음을 강조하기 위해 여기서 비까지 기록한 것으로 이해할 있다.



[ 9: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뇌성의 그친 것을 때에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니 그와 신하가 일반이라

다시 범죄하여 - 바로는 하나님의 여러 이적과 재앙을 목도하는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고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재앙이 끝나면 더욱 완강해졌고, 계속해서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 이는 어쩔 없는 악인의 죄악 반복 곡선이다. 이를 멈추게 하는 것은 실로 그의 영영한 멸망 뿐이다.



[ 9:35]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 이미 3:19; 4:21; 7:4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바로가 강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3: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손에 이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7:4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터인즉 내가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재앙을 내리고 군대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