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여인을 고치심
성 경: [눅 13:10-17]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눅 13: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 안식일이라는 시점을 명시하고 있는 것은
여기서 전개 되는 사건이 안식일과 관계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안식일'(Sabbath, NIV)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마지막 날에 안식하신 것과,
(창 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십계명(출 20:8)의 명령에 근거한 것으로
매우 엄격히 지켜지는 율법 조항이었다.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본문에서 언급된 '한 회당'(one of the synagogues,NIV)이
구체적으로 위치한 지역에 대해서는 '베뢰아'일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Hendriksen,Lenski).
[눅 13: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원문에는 '보라'는 의미의 명령형 어구가(이두) 본 구절 첫 머리에
기록되어 있어 독자들의 관심을 한 곳에 집중시킨다.
집중되는 관심의 대상은 십 팔 년 동안 병중에 고통을 당해 온 한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허리가 '굽어져' 혼자 일어서거나 머리를 들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 병은 현대 의학적 용어로 말하면 척추교착염과 유사하다(Marshall).
누가는 이 여인의 병이 귀신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십팔 년이라는 세월의 병고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는 최악의 상태를 말해준다.
[눅 13:12]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 이 여인이 이미 회당 안에 들어와 있었는지
아니면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들어왔는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많다.
다른 경우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의 요청이 있기 전에
자의적으로 병을 고쳐주시고 있다.
예수께서 그녀의 병을 즉각 고쳐주신 것은,
그녀의 믿음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녀의 비참함에 대한 연민 때문일 수도 있는데,
본문 상 그녀의 믿음이나 신앙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병을 고쳐주는 것으로 보아
전적인 예수의 자유의사에 의한 은총이라 할 수 있다.
[눅 13: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 안수(按手)하시니 - 아마 이 행동은 앞 구절의 "여자여 네가 네병에서 놓였다"는
선언과 동시적으로 취해졌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언급된 '안수'에 대해서는
그 원인이 구약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창 48:13-14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17-19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일반적으로 안수가 갖는 의미는,
수여자(授與者)가 가진 그 무엇을 피수여자에게 전가(轉嫁)하는 것이다.
한편 안수는 여러 가지 효과를 위하여 사용되는데
그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1) 구약의 제사법에 나타나는 것으로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짐승에 손을 얹음으로써 자신이 범한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는
상징적 행위로 행해졌다.
(레 1: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2) 신성 모독자를 돌로 칠 때 나타난다.
이것은 신성 모독의 말을 들은 증인들이
자신들에게 임한 부정과 더러워진 인격,
나아가 장차 당할 심판 등을 신성 모독자에게 돌리는 의미가 있다.
(레 24:14-16 저주한 사람을 진 밖에 끌어 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16)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3) 병을 고치는 행위로 안수를 한다.
이것은 예수나 사도들이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 병자에게 전이시킴으로써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다.
(눅 4:40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행 28: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4) 성령을 받게 하는 데 행해진다.
사도들은 성령이 임하지 않은 곳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수함으로써
그들도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었음을 증거해 보였다.
(행 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5) 직분을 위임할 때 안수한다.
이것은 안수하는 자가 자신의 권위, 직분, 능력을 피안수자에게
전가시켜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사역을 담당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행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 곧 펴고 - '펴고'(아노르도데)는 '회복하다' '재건하다'의 뜻으로,
여인이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뜻한다.
(행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히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 영광을 돌리는지라 - 예수께 병 고침을 받은 여인이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
일회적으로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병을 고쳐주신 분은 예수인데
찬양은 하나님께 돌려지고 있다.
이는 예수의 병 고침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눅 13: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 드디어 안식일에
병 고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회당장(synagogue ruler,NIV)이 분을 낸 표면적인 이유는
예수께서 병을 고침으로써 안식일에 노동을 금한 율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분노 이면에는 회당의 최고 수반(首班)으로서
회당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사를 주도적으로 관장하는 그의 권위가
완전히 소외된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열등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자그마치 십 팔 년 동안이나 고통스러운 병을 앓던 여인이
치유된 일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율법을 범했다고 비판하는 그의 태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율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폐기자의 모습인 것이다.
한편 회당장이 말하는 대상이 '여인'이 아니라 '무리'로 되어있는 것은
여기서 병 고침을 받은 여인 말고도 병 고침 받기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많았다는 추축을 가능하게 한다.
[눅 13: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 이 말씀의 배경에는
짐을 싣지 않는 한 안식일에도 짐승들을 밖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미쉬나의 규정이 있고,
안식일의 여행 제한을 어기니 않는 범위 내에서
가축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는 특별조치가 있었다.
또한 쿰란 종파에서는 안식일에 가축에게 풀을 뜯어 먹임에 있어서
2000규빗, 그러니까 약 910m이상을 끌고 가지 못하게 하는
제한 규정이 지켜졌었다.(Marshall).
이와 같이 당시 관례상 동물들에 대해서는 안식일에 관한 율법이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게 지켜졌지만,
오히려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의 융통성(融通性)도 허락되지 않았다.
[눅 13:16]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
15절과 16절에서는,
짐승과 아브라함의 딸,
물 먹이는 것과 병 고치는 것,
수 시간의 매임과 18년 동안의 매임,
마구에서 푸는 것과 사단에게서 푸는 것이 치밀하게 대비되면서
적대자들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드는 예리한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짐승도 목이 마르면 물을 먹이는 법이거늘
하물며 18년 동안이나 고통 속에 살아온 여인을 치유하는 일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지연될 수 없었다.
특히 "합당치 아니하냐"(에데이)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을 가진 '데이'의 미완료 과거형으로,
여인의 병을 고친 것이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일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꼭 해야 할 당위성을 가진 일이었음을 말해준다.
[눅 13: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
이 부끄러움에 대한 표현은 사 45:16의
" ∽ 성을 내며 너에게 달려드는 자들은 모두 어이없이 창피를 당하리라"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럴 경우 누가는 메시야적 대망이 예수에게서 성취되고 있음을
말하려 했었다고 볼 수 있다(Marshall),
한편 반대자들을 제외한 모든 무리들은 예수의 통쾌한 승리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아마 이들도 회당장 이하 맹목적 율법주의자들의 위선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지금 그들의 위선이 폭로되고 예수의 탁월한 가르침이 베풀어 졌을 때
매우 흡족한 기쁨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본문은 진리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들과
기뻐하는 자들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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