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길
성 경: [눅 13:22-25]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눅 13: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 "각 성 각 마을"이라는 표현은
누가에 의해 사용된 독특한 도입구로서,
(8: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어떤 특정한 지리적 정보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서술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라는 표현은
9:51의 예루살렘으로의 출발에 이어
예수의 행로의 최종 목적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재확인 시키는 것으로 예수의 사역에 있어서
예루살렘이 가지는 중요성을 암시한다.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눅 13: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 구원을 받는 자 - 시간과 장소에 대한 배경 설명 없이 하나의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질문의 요지는 '구원받을 사람'의 많고 적음에 관한 것으로
본문에 해당하는 문구 '호이 소조메노이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라는 미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종말론적 구원,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얻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냐 적으냐에 대한 물음은
당시의 유대교 내에서 많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소수의 극악한 죄인을 제외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얻을 수 있다는 견해가 엇갈렸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요 8:31-47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예수께서는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본 구절의 후반절에 구원받을 사람의 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가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얼마만큼의 수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로 부터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얼마나 하고 있는가에로
질문의 초점을 돌려놓고 있다.
이 좁은 문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드러나는 바가 없다.
그러나 '힘쓰라'는 단어가
'투기장'이나 '운동경기'에서 전력투구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결코 안락한 것이 아니라
매우 고된 노역을 경주해야 하는 길임을 말해준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하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내적, 외적 적들과의 영적인 싸움도 포함하는 것이며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자기 부인(自己否認)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9:23-25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한편 '구원을 얻을 자'가 미래적인데 비해 '힘쓰라'가 현재형인 것은
신앙의 현재적 삶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최종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구원은 미래적인 것이지만
그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적인 신앙의 삶이라는 것이다.
▶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 이 말씀은 구원의 문이
어려운 길이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정해진 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기한이 지난 뒤에는
들어가고자 하여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절과의 관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눅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 - 본문에서는 비유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되어있다.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의 본문에 비추어 볼 때 본문의 '집주인'은,
심판 주이신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며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좁은 문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 번 닫쳐진 문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주어진 기회를 지나치게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여
결단을 유보하거나
다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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