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不義)한 관리인의 비유
누가복음 16장 1-11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이 비유에 있어서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교의 재산관(財産觀)입니다.
즉 개인의 부(富)는 소유이면서 소유가 아니고,
이것을 자기의 금고에 집어넣고 자기의 장부에 기록한대도,
실은 한 때의 보관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기가 낳은 자식 같은 것입니다.
자기 것이지만,
실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의탁물(위탁물 trust)인 것입니다.
이 의미에 있어서 생각하면,
우리들은 모두 주인의 재산을 취급하는 관리인이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 있는 불의한 관리인(청지기)의 소위는,
교묘하게도 주인의 부를 이용하여
자기 유익를 위해 좋은 친구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비유를 말씀하신 뜻도,
결국 이 보관물의 이용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불의를 배우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솜씨를 배우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부(富)는 보관물이고, 또 일시의 것입니다.
아무리 백만의 부를 저축한 사람도 일단 죽음으로서
이 세상을 떠나는 찰나에는, 다만 그대로 버리고 갈 뿐입니다.
다시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또 가령 이것을 가지고서 간대도,
이 세상의 부는 저 세상의 부는 아닙니다.
아무 통용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
즉 이 세상에서 관리인의 직무가 해고되는 날이,
내일일지도 모르는 덧없는 것임을 생각하는 때에는,
부는 확실히 일시의 예탁물(預託物) 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재산관은,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 때의 것으로 경시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 덧없는 하찮은 것으로서
보다 큰 참된 보물을 사라고 가르칩니다.
다른 예를 취하여 말씀 드린다면,
바로 타국에 여행하려고 하기 전의 준비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뿐인 부를 바꾸어(환화하여),
저 세상의 통화로 해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을 상업상의 방자(放資)에도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기회를 보고서는 아낌없이 이 소자본을 방자하여,
다시 후의 대 이득을 준비하여 두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재산은 하찮은 것(소사)이지만도,
이것을 선용하면 큰 참된 부를 얻을 수 있는 도구인 것입니다.
불의한 관리인은 교묘히 (솜씨 좋게) 주인의 위탁물을 이용하여
많은 친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이에 따라,
친구를 만들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9절에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 친구를 얻으라.
이는 궁핍할 때, 그들이 너희를 영구한 천막으로 영접하기 위해서다’라고.
여기 ‘그들’이란 누구일까요?
한 고아라도 좋습니다. 빈부라도 좋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죽어 영구한 천국에 들어가는 때,
이들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영접하려 나와 주어,
서로 기뻐할 수가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먼저 지금부터 그 친구를 만들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네촌감삼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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