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7일 화요일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심

 

성 경: [14:1-6]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14: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 '지도자'에 대해서는

 

(1) 바리새파에 속한 지배자(Creed),

(2) 회당장(Marshall),

(3) 바리새인의 계층가운데 지도급 인물(NEB, NIV), 등의 견해가 있는데

세 번째 견해가 무난하다고 보여 진다.

 

아무튼 이 바리새인은 예수를 식사에 초대했고 예수께서는 그의 초대에 응했다.

여기에 묘사된 장면은 안식일의 회당의식이 끝난 후에 갖는 식사일 가능성이 높다.

 

안식일에는 회당의식이 끝난 후에 가장 큰 식사를 하였으며

랍비들은 빈부에 관계없이 안식일에 손님 접대하기를 가르쳤고

그것은 종교적 의무로까지 여겨졌다.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 여기서 '그들'은 그 곳에 있던 다른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며,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엿보고 있더라'는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신학적인 오류가 있는지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계속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행위로 미루어 보건대 바리새인이 예수를

식사에 초대한 동기가 불순한 것이었던 것 같다.

 

 

[14: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수종병 - 헬라어 '휘드로피코스'(고창병)''을 뜻하는

'휘도르'에서 온 후기 헬라어의 의학 용어로 이 곳에만 나오는 단어이다.

 

'수종병(水腫病, dropsy)은 신체의 세포조직이나 각종 강막(腔膜)

협장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상태를 가리키며,

대개 심장에 결함이 있거나 신장이 병들었을 때 발생한다고 한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얼굴이 부어오르며 팔과 다리도 크게 부어올라

살갗이 물러지는 증상을 띠게 된다.

당시의 랍비들은 이 병을 부도덕한 생활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 병자가 이 집에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서,

(2) 병 고침을 받기 위해,

(3)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그를 데려옴 등.

 

 

[1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 13:10-17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병 고쳐주기 전에 먼저 질문부터 하고 있다.

 

(13:10-17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예수께서 이렇게 먼저 질문하시는 것은 그들의 악의(惡意)를 아셨기 때문이다.

 

(1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여기서 '합당하냐'(여세스틴)는 직역하면 '그것이 율법적이냐'는 뜻으로

그들의 악한 의도를 예수께서 이미 간파(看破)하셨음을 말해준다.

 

앞에서도 두 차례에 걸친 안식일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안식일 논쟁이 수록된 것은 안식일 문제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6:1-1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 위에서 참조 13:10-17)

 

 

[14: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잠잠하거늘 -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율법 지식에 의거하여

당연히 합당하지 않다고 대답했어야 옳았다.

왜냐하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아닌 이상 안식일에 고치는 것은

랍비적 규례에 의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암시는 전혀 없기 때문에

생명의 위태함에 대한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예수께서

그들의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하든지 예수께서는 그 병자를

고쳐 주리라는 결의를 감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 예수께서는 침묵하고 있는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 병자를 고쳐주셨다.

 

예수의 이 행위는 바리새인들의 사문화(死文化)된 율법 이해를 뛰어넘어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

 

즉 고통 받는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동정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안식일 규범의 미신(迷信)성을 거부함으로써 인간을 모든 형태의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안식일 규범을 가르치신 것이다.

 

 

[14: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 예수께서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을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하신다.

 

안식일에 대한 미쉬나의 규정에는 온건한 것이 있고 엄격한 것이 있는데

온건한 규정은 구덩이에 빠진 짐승을 구해낼 수 있도록 하나

엄격한 규정은 다만 구덩이에 꼴만을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수 당시에는 온건한 규정이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바리새인 보다 훨씬 엄격했던 쿰란(Qumran)공동체에서는

구덩이에 빠진 사람만 구해낼 수 있고 짐승은 구해낼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따라서 당시 일반적으로 채택된 규정에 의하면

우물에 빠진 짐승을 건지는 것이 허용되었던 셈이다.

 

예수의 질문 속에 깔린 논리는, 곤경에 처한 짐승을 구하면서

고통 가운데 빠진 사람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는 것이다.

 

 

[14: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대답하지 못하니라 - 이 말은 4절의 단순한 침묵과는 달리,

 

(4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반대 논리로 맞서 대답할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그들은 예수에게 모종의 도전과 공격을 하려고 준비하였지만

 

(1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것들이 예수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사실 뿐이었다.

 

예수는 진리였으나,

그들은 비 진리였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은 왜곡된 판단력을 지닌

인간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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