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성 경: [눅 13:18-21]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눅 13: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 그러므로 - '그러므로'는 시간의 계속을 표시하는 접속사로
여기서 부터 시작되는 말씀이 앞부분과 연속성을 가진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앞에서의 치유 사건과
하나님의 나라 비유가 관련되어져 이해될 수 있다는 결과가 된다.
(1) 예수께서 한 여인의 병을 고쳐주었을 때 회당장과 같이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확대되어 갈 것이다.
(2) 하나님의 나라는 한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여
통치의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 개개인을 구원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 이 이중(二重)의
도입구는 사 40:18과 유형상 비슷하며,
(사 40: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막 4:30에 더 온전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막 4: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그 동안에 여러 번 언급이 있었고,
여러 교훈 및 치유 사건을 통해
그 나라의 성격이 부분적으로 암시되기는 했지만,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8:1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9: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여기서는 비유를 통해 그 성격이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눅 13: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 겨자씨 한 알 – 유대인들에게는
"겨자씨 만큼이나 작다"는 속담이 있는데,(Robertson)
이는 '겨자씨'가 아주 작은 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소재로 사용되었음을 가리킨다.
씨앗은 그렇게 작지만 그것이 자라면 무려 5m나 되는 큰 나무가 된다.
어떤 사본들은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커다란'(메가)라는 말을 첨가시킨 것도 있다.
본문에서도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이 겨자씨의 성장과 같다는 것은,
그 나라의 시작이 매우 작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눈여겨보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으나
그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예측을 초월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눅 13: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 이 비유는 내용상 마 13:33과 일치하지만,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본문의 의문문은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측면이 가르쳐지고 있다.
[눅 13: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 - '가루 서 말'에 대해서는
노아의 세 자손(Bengel),
사람의 몸, 혼, 영혼의 세 요소(Lange)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거기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숨겨겨 있다고 보기 보다는
그냥 일반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가루 서 말'은 대개 한 번 반죽할 때 사용하는 평균적인 양이라고 본다.
(창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누룩'(쥐메)은 빵을 굽기 위한 전 단계로 반죽을 부풀게 하는 효소이다.
누룩은 이와 같이 보이지 않는 파급 효과 때문에
흔히 악한 것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된다.
(12: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막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고전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영향력을 표현한 것이다.
겨자씨의 비유가 '외적인 성장'을 표현한 것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내재적인 능력의 확장'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경우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며,
특히 누룩의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영향력을 파급시키는 방식이
스스로를 거창하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산화(酸化)시켜 대의를 이루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부지불식간에 실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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