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1일 토요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제자도에 관한 교훈 2

 

성 경: [14:31-35]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14: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싸우러 갈 때에 - 정확한 판단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의 비유가 연속하여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앞의 비유처럼 '너희 중에'라는 서두가 없는데,

이는 거기에 있던 무리 가운데 왕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더욱 정확한 판단이 요구된다.

 

헤아리지 - 만 명을 거느린 임금이

이 만명을 이끌고 공격해오는 적을 맞아 싸우게 되었을 때

승산이 있는지의 여부를 빨리 판단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조속히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집단적으로 몰사할 가능성이 많겠기 때문이다.

적군의 숫자가 아군에 비해 두 배나

많은 것으로 언급된 사실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는 일이 마치

중과부적(衆寡不敵)과도 같은 상황처럼 어려움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써만 감당 되어질 수 있다.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14: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화친을 청할지니라 - 이는 순수한 전쟁의 상황에서 적용되는 것이지

선과 악의 싸움 또는 영적인 싸움에서 적과 타협하라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비유의 초점은 화친을 하고 안하고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임하는 자의 냉철한 판단력에 맞춰져 있음에 유의하자.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 27절의 구체화이자

두 비유(28-30,31-32)의 결론으로서

본문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30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32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무리들은 예수를 따르며 그의 제자가 되려고 결정할 때,

'모든 소유'를 버려야하는 상황마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 후에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

 

결국 소유에 대한 집착은 제자가 되는 것,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18-20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본문에서 '버리다'(포타쎄타이)는 말은

사용되는 대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사람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는 작별 인사를 뜻하고

사물에 대하여 사용될 때는 '포기하다', '버리다'의 의미가 된다.

 

특히 '아포타쎄타이'는 현재형으로서 그 '포기'

지금 당장 결단해야 할 성질의 것임을 말해준다.

 

한편 본문에는 18:22의 부자 청년에게 주어진 명령과는 달리

포기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것은 본문의 말씀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 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무소유의 상태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의식을 버리는 것, 또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을

강조하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에게 위임(委任)된 것이라고 여기는

청지기 정신을 가지라는 말씀으로 이해된다(Liefeld).

 

 

[14: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 소금은 음식의 맛을 조절하는

양념으로 사용되었고

종교 의식상의 용도,

 

곧 소제(2:13)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번제(43:24)

 

(43:24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예물 위에 뿌리는데도 사용되었다.

 

또 성전에 피우는 향의 성분 속에도 소금이 들어갔으며

 

(30:35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 의학적 목적으로 소금을 뿌리기도 했고,

방부제로 쓰기도 했다.

 

(16;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이중 특히 소금의 역할로 중요한 것은 맛을 내는 일이다.

본문도 이점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런데 소금이 그 맛을 잃는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본래 이 말씀은 소금이 맛을 잃을 수 없듯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복음도 없어지거나 그 영향력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이 전승과정에서

제자들의 변절 가능성을 지적하는 말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G.Bertram).

 

(2) 가축의 똥을 연료로 땔 때 소금을 촉매제로 함께 섞어 사용했는데,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소금의 촉매력이 없어져 화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본다.

 

(3) 팔레스틴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사해(死海)의 소금물을 증발시켜서 만든다.

그런데 사해의 물에는 염화나트륨 외에도 여러가지 성분이 있기 때문에

수분을 증발시키면 거기에는 소금과 광로석 및 찌꺼기가 남게 된다.

이 때 소금이 먼서 결정되므로 그것들을 모으면 순수한 소금이 되지만,

쓴 맛을 내는 광로석을 소금으로 착각하여 채취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잘못 채취된 광로석의 표면에 묻어있던 염분이 용해되어 버리면

그것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는 것이다(J.Tinsley,Marshall).

 

이 세 가지의 해석 가운데 (3)의 해석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씀을 앞의 말씀과 관련지어 이해할 때,

이는 소금도 그 맛으로 소금됨을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과

자기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는 것으로

참다운 제자 됨을 확인받을 수 있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14: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 소금이 땅과 거름에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소금이 비료나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부정과 긍정의 견해로 갈리기 때문이다.

 

(1) 부정하는 견해 - 팔레스틴에서 소금을 거름으로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소금은 땅을 황폐하게 한다는 언급이 있을 뿐이다(Jeremias).

 

(2) 긍정하는 견해 - 현대 이집트에는 소금기 있는 흙을 비료로

사용한 증거가 있다(H.Gressmann).

 

소금은 잡초를 죽일 뿐만 아니라 땅 속 깊은 곳에서

사해의 소금이 가지고 있는 칼슘 성분을 용해시켜

토양을 개량시키고 아울러

인분의 부패를 억제하늘 작용을 한다(E.Deatrick).

 

이러한 양 견해에 대해서 어느 것이 옳은지를 판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사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즉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데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태는 누가의 본문보다 더 강하고 경멸적(輕蔑的)인 표현인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로 서술하고 있다.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매우 의미있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던 무리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충분히 해주셨다.

 

(25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이제 남은 것은 무리들이 예수의 말씀을 잘 이해하여 현명한 결단을 하는 일이다.

 

그 결단은 강요에 의한 것도 구걸에 의한 것도 아니요

다만 듣는 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주여,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복도 잘 누리게 하옵시고

주님께서 명하시는 사명들도 잘 감당하는 존재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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