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1일 화요일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청지기 비유

 

성 경: [16:1-5]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어떤 부자 - 현장에 관리를 둔 대지주(大地主)이거나 (Jeremias)

혹은 당시 갈릴리에 흔하였던 부자 지주(Grundmann)를 가리킨다고 본다.

 

아무튼 사람들이 그에게 빚진 정도를 보아 그는 큰 부자임에 틀림없다.

한편 부자가 누구를 상징하는가 하는 것에는 많은 의견이 있다.

 

알포드(Alford)에 의하면 '그 부자'는 이 세상의 아들을,

메이어(Meyer)는 맘몬(돈의 신),

올스하우젠(Olshausen)은 마귀를,

쉴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는 로마인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가 누구를 가리키든 간에,

본 비유의 초점은 위기의 때를 맞아

지혜롭게 재물을 융통한 청지기에 맞춰져 있다.

 

청지기 - 이 말은 맡은 재산을 관리하도록 위탁을 받은

'고용인'이나 '대리인'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말이다.

 

KJV에는 '간사' 혹은 '급사', '집사'의 뜻인 '스튜어드'(steward)로 번역한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일 수도 있으며,

 

(39:4-6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또는 자유인으로서 주인과 고용 계약을 맺은 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와 같이

그들은 맡은 일의 성격상 재산을 관리하는 동안

부정(不正)을 저지를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

 

한편 이 청지기가 누구를 상징하는가 하는 것도

그의 주인인 '어떤 부자'에 관한 의견과도 같이 다양하다.

 

알포드(Alford)에 의하면 청지기는 모든 제자들,

즉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한편 바리새인 혹은 가룟 유다, 심지어는 본디오 빌라도를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어떤 부자'와 마찬가지로 이 '청지기' 또한 개별적으로

특정 사람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다만 예수는 당시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본 비유와 같은

전체적 상황을 통해 당신의 제자들에게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교훈하고자 하셨을 것으로 짐작 된다.

 

허비한다 - 돈이나 재물 등을 마구 탕진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아마 청지기는 횡령 혹은 부실 경영을 통해 주인의 재산을 축내었으리라 보여 진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의하면 고대 근동사람들은

부기(簿記), 규정된 회계 감사 등을 몰랐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셈(account), 증서(statements) 등의 용어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에도 이미 장부(帳簿)등은 사용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이 말이 어찌 됨이냐 - 이는

 

(1) '이것이 무슨 말인가?'

(2) '왜 내가 이것을 듣게 되었는가?'등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물음은 단순히 주인이 듣게 된 내용의 사실성 여부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들은 내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사실로 여기고

'왜 그러한 잘못을 행 했는가' 라고 질책하는 말이기 때문에

(2)의 해석이 보다 정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 '보던 일'의 헬라어는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말씀', '이성', '사건' 등의 뜻도 있지만,

본 구절에서는 '계산'(account)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청지기는 주인의 모든 재산을 다 관리할 뿐만 아니라

재산 목록과 장부 및 각종 문서를 작성, 보관하는 일까지 책임 맡고 있는

관리인이라 할수 있다.

 

한편 '셈하다'의 뜻인 '아포디도미'는 단순히 계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결산해서) '넘겨주다', (증서를) '양도하다'(render,KJV)

의미까지도 내포된 말이다. 그러므로 본 구절 전체는

 

'네가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사무를 청산(淸算)하여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라'

의미가 된다.

 

 

[16: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땅을 파자니 - '파다'의 원어 '스카프토'는 일반적으로

정신노동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육체노동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서는 육체노동 중에서도 농사짓는 것을 의미한다.

빌어 먹자니 - '구걸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듯 삶의 위기의식을 느낀 청지기의 독백은

무엇을 해도 절망적이기만 한 급박한 상태를 나타낸다.

 

한편 그 청지기는 비록 부정을 저질렀지만

신속한 판단력과 빈틈없는 사고의 소유자였다.

 

즉 자신의 처지와 능력을 파악하고

즉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결단한 것이다.

결국 이 같은 결단은 곧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항상 우리가 잊지 말고 생각해야 할 바를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우리 인간은 자신의 삶에 주어진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거나 스스로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 있고 결단력 있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준다.

 

사실 신앙생활을 한 마디로 특징짓는다면

그것은 결단(決斷)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해고된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직분을 빼앗긴 후에 -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흥청망청 써 버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주인은 그를 해고하게 되고

그는 난처한 상황에서 살길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자신이 부여받은 힘과 지혜와 재물 등 모든 것들이

마치 자신의 것이며 자신의 능력에 의해 스스로 획득한 것인 양 여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에 불과하며

우리 인간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1:28-31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낭비라는 삶은

곧 이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교만한 소행인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청지기의식(stewardship)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빚진 자 - 여기서 주인과 빚진 자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의하면 빚진 자들은 아마도

토지수확의 일정량을 소작료로서 지불해야 될 소작인들이거나

또는 채무 증서를 쓰고 곡물을 받은 도매상인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데 청지기나 빚진 자들이 이미 전에 서명한 '증서'

위조(僞造)할 수 있었다고(6, 7)한다면,

아마도 이 빚진 자들은 청지기와만 계약을 맺은 것 같다.

 

(6-7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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