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6일 일요일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한 책망 2

 

성 경: [16:16-18]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율법과 선지자 - 율법은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모세 오경을,

그리고 선지자의 글은 모세 오경을 제외한 구약의 나머지 부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대명사이다.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요한의 때까지요 - 11:12 에는 '침례 요한 때부터로 되어있으므로

율법 시대와 복음 시대의 구분속에서

침례 요한이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논란이 있다.

 

(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요한에 대한 본 구절의 언급과 관련하여

콘첼만(Conzelmann)은 구속사적 시대 구분이 이 부분에서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결국 역사는

 

(1) 율법과 선지자들의 활동시기와

(2) 예수 자신의 활동시기

(3) 또한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의 성령 혹은 교회의 시기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는

예수의 핵심적인 메시지로서 당신의 가르침 속에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사상은 성서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9: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13: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

 

 

구약에는 '나라'라는 말 자체는 자주 언급되지 않으나

하나님 나라의 기본 개념

곧 여호와가 왕으로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린다는 개념이 저변에 깔려있다.

 

예컨대 하나님은 온 우주의 왕으로서,

 

(왕하 19:15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의 위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29: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33:13-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14)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특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묘사된 바 있다.

 

(48:2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뿐만 아니라 현실상의 모든 불의와 궁핍이 제기된

이상적인 미래의 왕국에 대한 비전도 제시되어 있다.

 

(146:10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24:23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34:12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이렇듯 구약 속에서 그림자처럼 암시되던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더불어 이 땅에 실제로 임하게 된 것이다.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 11:12 에는 '침노를 당하다'라고 하는

수동태로 되어 있는 것에 반해 본 구절에서의 '비아제타이'

'침입하다'의 중간태 형이다.

 

여기서는 능동태와 복음에 대해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적극성을 나타낸다.

여기서 사람마다 그리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다고 하는 표현은

만인에게 복음이 개방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누가의 관심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율법과 예언자들은 천국을 예언하는 일을 하였고,

침례 요한은 도래할 천국을 예비(豫備)하였으나

메시야이신 예수를 통해서 천국은 이미 도래했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그 천국을 붙잡을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으며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천국이 비록 종국적(終局) 완성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수 안에서 그와 더불어 하나의 강력한 현실로 세상에 들어왔고

따라서 사람들이 소유하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본 구절의 의미는 이미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가고,

그들 앞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이 계속 율법 준수를 고집하는데 대한 깨우침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한 획 - 5:18에 의하면 이는 '일점일획'(一點一劃)이라 표현되어 있다.

 

''은 히브리어에 있어서 한 문자를 다른 문자와 구분 지어 주는 역할을 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히브리어 문자 중 가장 작은 글자인

'요드'를 가리키며 헬라어의 '이오타'와 상응한다.

 

한편 '일획'이라 했을 때는 ';카프, 달렛, ;헷 따위 등의

비슷한 모양의 글자를 구별해주는 돌출 표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 구절은 율법의 절대성과 영원성을 강조하는 말로

구약성경의 붓 한번 살짝 움직인 정도의 아주 조그마한 내용조차도

모두 권위(權威)를 갖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이 말은 세상이 없어지기 전에는 결코 구약의 말씀이 변치 않으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비록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되어 복음의 시대가 임했지만

구약의 예언과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였다.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왜냐하면 복음은 율법의 완성에서 오는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결실이므로

복음과 율법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셨을 뿐 율법을 폐기하신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율법의 말씀을 바르게만 이해한다면 구원(救援)의 확실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렇듯 율법과 복음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며 상호 보완적 역할에 의해 영원히 존속될 것이다.

 

 

[16: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음행한 연고'라고 하는

단서를 붙인 마 5:32절보다 본문은 훨씬 더 엄격한 인상을 준다.

 

(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당시 이론에 관한 견해는 매우 다양했으나 그중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School Hillel Shammai)

진보적인 힐렐 학파(the Hillel School) 의 견해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전자는 이혼 조건을 부정(不貞)이나 율법 파기 등에 국한시킨 반면,

후자는 어떤 이유든 어느 한 쪽에서 이혼 의사를 밝힐 경우에는

이혼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특히 힐렐의 경우는 여자 음식 솜씨 여하에 따라 이혼도 가능함을 시사하였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부도덕한 결혼 생활을 반영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갑자기 '이혼 문제'를 제기한 것은

특별히 '이혼 문제'를 통해서 율법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무지를 지적하시고 율법의 영구성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6-8'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은

바로 율법의 진정한 정신을 잘 나타낸 말씀이다.

 

그러나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보내라'(24:1-4) 한 말씀은

다만 사람의 마음의 완악함을 인해서 허락한 것에 불과하다.

 

(24:1-4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2)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4)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이고

지금은 복음과 메시야의 시대지만

율법의 진정한 정신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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