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비유로 이르시되

 

(21:29-38)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21:29-31]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 24:32-34과 막 13:28-30에는

무화과 나무만 언급되고 모든 나무에 관한 기사는 빠져 있다.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무화과 나무를 마 21:9에서

예수께서 저주하여 말라 죽은 무화과로 해석하여 유대인으로,

모든 나무는 이방인으로 간주 하였다.

 

그래서 유대인은 저주를 받지만 마지막 날에는 회복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누가가 모든 나무를 삽입시켜 기록한 것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무화과 나무가 없는 이방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Jeremieas).

 

한편 팔레스틴에서는 겨울철에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으면 봄이 온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무화과의 잎사귀가 계절의 시작을 알려 주듯이

우주적인 징조(25,26)가 나타나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25-26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자연히 아나니 - 원어 브레폰테스 앞헤아우톤스스로 본다는 뜻이다.

 

즉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연해지고 싹이 돋으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여름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Lenski, Marshall).

 

한편 누가는 이러한 표현에다 이미라는 시기를 나타내는

부사 에데를 덧붙여서 이미 그 시기가 가까이에 당도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21:32-3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세대모든 일이 무엇을 가리키느냐는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종말에 나타날

우주적인 징조를 가리키는 데에 거의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Geldenhuys는 이를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세대에 대한 해석이다.

 

원어 게네아에 대해서

 

퀨멜(Kummel)은 동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 해석하여

예수 시대의 유대인으로 해석한다.

 

또 렝스토르프(Rengstorf)는 조상이 같은 민족으로 해석하여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또 클로스터만(Klostermann)은 누가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엘리스(Ellis)는 예수께서 재림할 즈음에 사는 마지막 세대로,

미카엘리스(Michaelis)는 단순히 행악하는 자로 이해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수가 어떤 세대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종말이 도래할 것을 확실히 말씀하셨다는

마샬(Marshall)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 같다.

 

한편 테일러(Taylor)는 원래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후대에 와서 여러 성경 기자와 또 학자들에 의해

예수의 재림으로 곡해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21:34-35]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 여기서

방탕함을 가리키는 원어 크라이팔레는 원래 술취한 상태”(Marshall)인데,

의학적으로는 술이 취해서 속이 메스꺼운 상태”(Norval Geldenhuys)를 가리킨다.

 

한편 알버트 반즈(Albert Bames)는 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라고 표현하고 있다.

 

렌스키(Lenski)는 이용어가 술이 취한 상태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며

특별한 의학적 용어는 아니라고 말한다.

 

마샬(Marshall)은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해도 별 무리가 없겠지만

여기서는 은유적으로 이해하여 세상의 염려로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심으로써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라고 말한다.

 

또한 여기서 마음이 둔하여 지다는 말의

원어 바레도신 휘몬 하이 카르디아이에서 바레오내리누르다는 뜻이다.

 

* 참조 (9:32 한글 개역 성경에는 곤하여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피곤이 내리누르는 상태를 가리킨다).

 

(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이를 마샬(Marshall)은 심리적으로 침체된 상태라고 한다.

즉 사람들이 세상 일에 연연함으로써 의기소침해져서

하늘의 징조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시각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렌스키(Lenski)도 이를 마음이 둔하여진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21:36-38]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인자 앞에 서도록 - 이 말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마샬(Marshall)이나 파라(Farrar), 엘리코트(Ellicott)는 인자를 심판자로 해석한다.

 

반면 알포드(Alford)는 죄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구세주로 해석한다.

 

그러나 분문에서 인자 앞에 선다는 말은

렌스키(Lenski)나 알버트 반즈(Albert Bames)의 견해대로

 

인자를 심판의 주로 보는 동시에

구원의 주로 인정하는 편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한편 퇴트(Todt)나 헤긴스(Heggins)는 이 구절을

예수의 말씀이라기보다는 누가의 창작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를 누가의 창작으로 볼 만한 뚜렷한 이유는 없다(Colpe).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 원어로는

아그뤼프네이테 데 엔 판티 카이로 데오메노이인데,

여기서 항상”, “언제나를 가리키는 엔 판티 카이로

깨어 있으라”(아그뤼프네이테)를 수식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며”(데오메노이)를 수식하는지 확실치 않다.

 

(Zahn)은 전자를 지지하고, 바클레이(Barclay)는 후자를 지지하나,

이스턴(Easton)은 양자를 다 수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느 편을 수식하든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

 

아무튼 누가는 기도에 대해 특별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참조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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