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목요일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심판을 예언함 2

 

(21:29-38)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한 비유를 말씀하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그것들이 싹을 내면 너희가 보고 이제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너희 스스로 아나니

31)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온 줄을 아느니라.

32)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것이 성취되리라.

33)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너희 마음이 과식과 술 취함과 이 세상 삶의 염려로 무겁게 되어 그 날이 알지 못하게 너희에게 임할까 염려하노니

35) 그 날이 온 지면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올무같이 임하리라.

36) 그러므로 너희가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 예수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서 올리브 산이라 하는 산에서 머무시니

38)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아침에 일찍 성전으로 그분께 나아가더라(KJV 한글)

 

 

예언의 말씀을 끝맺으시며,

 

. 그리스도도 제자들에게 때의 징조를 분간하라고 지시하신다.

 

즉 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 듯이 앞서 한 말씀들을 명심하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 때의 징조들을 분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29-31절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자연 세계에 원인의 체계가 세워져 있듯 섭리의 세계에도

사건들은 서로 연관지어져 일어나게 되어 있다.

한 민족이 그들의 불의로 가득 채워지고 있음을 볼 때

그들의 멸망이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박해하던 권세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음"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박해하던 권세가 물러가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알 수 있다.

 

봄기운이 태동하기 시작하면 계절이 바뀔 줄 당연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사건들의 연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성소에서 일어서심"을 보면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잠잠히 서서 그의 구원을" 보게 된다.

 

 

.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런 일들에 대해

 

"의심하거나 아직 먼 것으로 여기지 말고",

(왜냐하면 당시 그들은 이런 말씀에 대해 그다지 느낀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이며 "곧 일어날 것"으로 믿으라고 분부하신다.

 

유대 민족의 멸망은

 

1. "곧 일어날 것"이었다.

 

(32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지금 살아있는 자 중 그것을 볼 수 있는 자가 있으리라.

지금 이 말을 듣는 자 중에 그 일을 볼 자가 있으리라.

 

2. "확실한" 것이다.

 

판결은 번복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지출 사항"이었다.

발표는 벌써 되었다.

 

(33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천지는 없어질 것이 분명한 일이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내 말을 듣든 안 듣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 말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삼상 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안일과 방탕한 생활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방종은 다가오는 환난의 때에 그들을 안전하게 해 주지 못하고

환난이 닥치면 두려워 떨게 만들어 준다.

 

(34-35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리하여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멸망을 자초하지 말라".

"안일한" 상태에선 안전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조심하고 있어야 하지만 특히 조심할 때인 다음을 고찰해 보자.

 

1. 우리의 "위험".

 

죽음과 심판의 날이 우리가 "예기치" 못한 때에

전혀 "준비도 되 있지 않은 상태에 우리도 모르게 닥치게 되지나 않을까".

 

우리가 주님을 만나도록 부르심을 들을 때 우리의 가슴속에

언제나 가까이 있어야 할 것들이 오히려

우리의 생각밖에 "멀리" 있는 것이 폭로되지나 않을까,

 

그것이 "우리에게 덫으로 닥치지나 않을까".

왜냐하면 그것은 "땅 위에서 살면서 세상 것에만 마음을 쓰고",

 

하늘과 교통하지 않은 모든 인간에겐 이와 같은 경우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에겐 그것이 "덫이" 될 것이다.

 

(전도서 9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그날은 그들에겐 "공포"이며 "멸망"이 될 것이다.

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에 갇히고

보다 더 무서운 벌을 예비하러 어둠 속에 가두게 될 것이다.

 

2. 이런 위험에 직면한 우리의 "의무".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마음에 짐이 많아 너무 무거워져서 죽음과 심판을 준비해야 할 마땅한 입장에서

부당하고 방해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우리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1) 육의 욕망에 빠지고 정도 이상으로 감각의 만족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으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무절제한 음식과 술은 마음을 둔하게 하고

아울러 그로 말미암아 죄를 지게 될 뿐 아니라 육체의 무질서로 인하여

정신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을 우둔하게 만들고 책임을 소홀하게 하여

맡은 일에 무관심하고 질서 없는 행동을 야기한다.

양심을 둔하게 만들고 가장 "민감한" 사물에 대하여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2) 이 세상의 유익한 일을 무절제하게 구하는 것.

 

마음은 "생활의 염려"로 둔해진다.

전자가 쾌락을 추구하는 자에게 던져진 덫이라면,

이것은 일하려는 자, "부자가 되려는 자"에게 던져진 덫이다.

 

우리는 양손을 동시에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살펴 볼 뿐 아니라,

"어느 때라도" 우리 마음이 이처럼 둔해져 있지는 않은가 살펴보아야 한다.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영혼을 보살펴야 한다.

이 둘은 늘 지켜야 한다.

 

 

.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 마지막 날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으라고 권면한다.

 

(36절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여기서 유념하여야 할 것은,

 

1. 우리의 목적.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공포되면 우리는 그 심판의 벌에서 보호함을 받게 되고,

우리는 누구나 당할 재난을 겪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이 당한 재난을

우리는 당하지 않게 되고,

죽음의 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이며 지옥의 저주인

죽음의 화살을 피하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피하는 것" 뿐 아니라

"인자 앞에 서게 되도록 목적"을 삼아야 한다.

 

우리의 심판자이신 그의 앞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날에 자신 있게 설 뿐 아니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피할 때 이렇게 할 수 있으리라.)

 

"그 앞에 서고",

 

우리의 주인인 그를 모시고, 항상 그의 보좌 앞에 서서 그의 전에서 밤낮으로 그를 섬기며,

(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천사처럼 "그의 얼굴을 항상 뵈옵게" 되어야 한다.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그런 성도들은 앞의 2035절과 마찬가지로 "합당히"라고 기록되어 있다.

 

(2035절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하나님께선 그들 가운데 은혜로 선한 일을 이루심으로

이와 같은 행복을 "얻게 하시며" 그들을 향한 은혜의 선한 뜻으로 인하여

그런 행복에 "합당한" 자들로 만드셨다.

 

그러나 그로티우스(Grotius)가 말한 것같이

우리 자신의 무익함을 깨달을 때 우리가 합당함을 얻게 된다.

 

2. 이런 목적을 위한 우리의 "행위".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깨어있음과 기도는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

 

(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다가올 진노를 피하고 다가올 기쁨을 얻고자 하는 자는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언제나 해야 하며 생명이 끝날 때까지 쉬지 말고 해야 한다.

이유는,

 

(1)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 모든 책임을 다하며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대로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 너희 주님의 오심을 바라며 깨어 있으라. 그리하여 그를 맞이할 수 있는 합당한 준비를 갖추고 그를 맞이할 수 있는 합당한 준비를 갖추고 그를 환영하도록 하라."

 

(2) 하나님과의 교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라. 항상 이 의무를 잊지 말고 행하라. 이를 위하여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라. 기도에 충만하라. 어떤 경우에든 기도하라".

 

이 세상에서 기도의 생활을 한 자들은 다른 세상에서 찬양의 생활을 할 자격이 있는 합당한 자들이 될 것이다.

 

 

. 마지막 2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영광중에 입성하신 후

배반당하여 붙잡히신 밤까지 3, 4일 간을 어떻게 지내셨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1. 그는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그리스도는 안식일 뿐 아니라 평일에도 가르치셨다. 그는 지칠 줄 모르던 설교가였다.

그는 적대자들의 면전에서,

어떻게 하든 그를 해할 꼬투리를 잡으려고 노리는 무리들 가운데서 설교하셨다.

 

2. 밤에는 성읍에서 약 1마일 가량 떨어진 올리브 산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쉬셨다.

 

성안에도 그를 기꺼이 받아들여 쉬게 하려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을 것이나

그는 저녁엔 성읍의 소란을 피해서 밖으로 나가

자기 때가 가까웠으므로 조용한 준비를 할 시간을 갖고자 하였다.

 

3. 아침 일찍 그는 다시 성전으로 나와 거기서 그의 말을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에게 아침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은 설교하려고 나가시는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38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를 해하려고 아무리 방해를 놓아도

그들은 창문에 몰려든 비둘기 떼처럼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으로 모여들었다.

때로는 진지하고 솔직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좋은 설교를 듣고 얻은 맛과 향기가

재치있고, 학식있는 자, 권위를 세우는 자들의 주장보다

더 가치있고 귀한 것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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