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포도원
(눅 20:9-19) 그 뒤에 그분께서 백성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그것을 세주고 먼 나라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철이 이르매 포도원의 열매를 자기에게 바치게 하려고 농부들에게 한 종을 보내었으나 농부들이 그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보내니라.
11) 그가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도 때리고 수치스럽게 대하며 빈손으로 보내매
12) 그가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그를 내쫓으니라.
13) 이에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혹시 그들이 그를 보면 그를 공경하리라, 하였으나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는 자기들끼리 따져 보며 이르되, 이 사람은 상속자니 오라, 우리가 그를 죽이고 그 상속 재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이에 그를 포도원 밖으로 내던지고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그들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16) 그가 와서 이 농부들을 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그들이 그것을 듣고 이르되, 결코 그리될 수 없나이다, 하거늘
17) 그분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바, 건축자들이 버린 돌 바로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한 이 말씀은 무엇이냐?
18) 누구든지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부서지겠고 누구에게든지 그 돌이 떨어지면 그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리라, 하시니라.
19)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분께서 자기들을 치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줄 깨닫고 바로 그 시각에 그분께 손을 대려 하였으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한글 KJV)
주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으로 주의 권위가 어떻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잘 알 수 있도록 증거를 밝혔는데도
그 권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권위를 자기 자신들의 권위로
몰수함으로써 문제 삼은 자들에게는 적절한 비유이었다.
이들이 포도원의 주인을 부인한 것은 포도원에 대한 자기들의 차용권(借用權)을
무효로 한 것이며 자기들의 모든 자격을 포기한 것이다.
Ⅰ. 이 비유에는 전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된 바에 조금 보태진 것이었다.
이 비유의 의도하는 바는
유대 백성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나중에는 자기들의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까지 핍박함으로써 하나님을 분내시게 하여
그들의 교회의 모든 특권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비유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1. 우리의 눈으로 보는 교회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포도원의 소작인과 농부와 같아서
포도원을 돌보고 또 그 포도원에 대한 소작료를 지불해야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종교를 설립하시고 질서를 설정하심으로써
포도원을 만드셔서 백성들에게 세(貰)로 주시고,
예배소 곧 포도원을 지키는 장막을 마련하게 하셨다.
(9절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소작인과 농부들은 해야 할 포도원 일,
곧 필요하고도 꾸준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러나 이 일은 유쾌하고 유익한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죄 때문에 땅을 경작하도록 정죄되어 있으므로
포도원에서 직분을 가진 그들은 순결한 중에 하던 아담의 일로 회복되어
정원을 매만지며 이것을 간수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포도원,
다시 말하면 교회는 낙원으로써 그리스도 곧 생명의 나무가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포도원의 주인께 바칠 포도 열매를 가지고 있다.
또 이들에게는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고 해야 할 봉사 사업이 있다.
이 세금과 일은 빌려 준 토지에 비례하여 내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지불해야 되며 해야 될 일을 감당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자들이 할 일은,
교회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당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소작료 수집원들로서
늦게 오는 농부들을 기억해 두며,
또는 자기들로부터 보고를 받으시기를 바라고 계신 주인이 계심을 기억하고,
주인에 대한 그들의 의지심의 고백을 받고
또한 주인에 대한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10절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구약의 선지자들은 유대교로 이 심부름을 하도록 보냄 받은 사람들,
자기들이 하나님께 책임진 의무와 순종을 그들에게 요구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3.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은 불행하게도 주인의 소작인들에게 학대받는 일이 가끔 있다.
소작인들은 주인께서 보낸 사자들을 때리고 능욕하여
사자들로 하여금 거저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하도록 불리움 받기에 합당치 않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의 몇 사람이
그들의 가장 훌륭한 봉사로써 가장 어려운 일을 하려 내려왔다.
4. 하나님께서는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을 위하여
포도원의 열매를 모으기 위하여 등용하셨던
선지자들이 하던 일과 같은 일을 수행하시도록 하셨다.
어떤 사람은 그 하나님의 아들이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선지자들은 종이라고 말했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당신께서 친히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는 중에 아들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이와 같은 영예를 주시면서 그들에게 보이셨으므로
주님께서 그들을 승리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만하다.
5. 그리스도의 사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친히 그들에게 가시면
주님도 거역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이미 시험한 바로써 하나님의 종들인
선지자들의 핍박자와 살인자들은 주님 자신의 핍박자이며 살인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 하였다.
소작인과 농부들이 주인의 종들을 죽였을 때에 다른 종들을 보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아들만 죽일 수 있다면 또 보낼 다른 아들은 없을 것이며 그러면 더 이상 소작료와 세금을 요구하여 성가시게 굴지 않을 것이다. 포도원을 완전히 우리의 소유로 만들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약속하기를 만일 그리스도만 처분해 버리면
자기들이 영원히 유대교의 주인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담한 걸음을 걸으면서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6. 그리스도를 원수들이 죽인 것은 유대인의 죄악의 극에 달한 것으로써
그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을 초래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시는 도리밖에 없었다.
농부들은 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고
끝내는 자기들의 젊은 주인까지도 죽였다.
주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와 멸망이 어느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Ⅱ. 이 비유의 말씀에는 다른 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말,
곧 사람들이 자기들을 멸망시키려는 주인의 경륜을 반대하였다는 말이 있다.
(16절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지이어다".
농부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의 대가가 멸망을 당하는 것밖에
다른 무엇을 바랄 수 있으랴마는 그런 선고를 들으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죄인들은 자기들이 종국에는 멸망당할 것을 내다보고
두려워하면서도 그냥 그 죄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어리석음과 완악이 있음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죄악을 범하고 나서
하나님께 그렇게 하지 말아 주시라고 하여 그 멸망을 피하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자기 자신들을 속이는 일을 했는가.
그러나 그들의 만류가 무슨 효과를 나타내겠는가?
하나님의 경륜대로 될지
자기들의 주장대로 될지는 자기들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멸망됨을
어리석게 반대한데 대하여 무엇이라고 대답하셨는가.
1. 주님은 "저희를 보셨다".
이것은 누가복음 기자만이 기록한 말이다.
(17절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주님께서는 그들을 동정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쳐다보시면서
자기들이 멸망의 길을 선택하고서 스스로 속이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주님은 저희들을 보셨다.
그들이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지는지
또는 그들의 표정에서 측은하게 여기는 표시가 나타나는지 보려고 그들을 쳐다보신 것이다.
2. 주님은 그들에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면 기록된 바가 무엇이뇨?
너희가 경멸히 여기고 반대하는 주님의 의기양양함을 막지 못할 때 너희가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으로 들려 올려지실 것이다.
주님에게는 위임받으신 모든 심판의 권세와 모든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주님은 교회의 모퉁이 돌이며 머리 돌이시다.
그러니까 주님의 원수들은 멸망될 수밖에 없다.
주님을 경멸히 여기고, 주님을 넘어지게 하고 또 주님을 반대한 자들도
"깨어지겠고" - 곧 멸망당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반대할 뿐 아니라 미워하고 핍박한 자들
곧 유대인과 같은 자들은 주님께서 그들과 마주쳐서
그들을 조각으로 부셔서 가루로 만들어 흩으실 것이다.
악의에 찬 박해자들은 무관심한 불신앙자들에 대한 정죄 보다도 훨씬 더 엄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 비유의 말씀에 의하여 격노하게 된 것이다.
(19절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주님은 사실 그렇게 하신 것이다.
떳떳치 못한 마음은 고발자가 필요치 않다.
그러나 주님의 원수들은 양심의 가책이 생기기보다도 자기들의 가슴에 품고 있으나,
잠자고 있는 사자를 일깨워 준 주님에 대하여 "즉시 잡고자" 하였다.
그들의 부패성은 자기 자신들의 양심적 가책을 반대하여 이를 물리쳐버렸다.
그들이 주님께 정면으로 대들지 못하고 앙심만 품고 있었던 것은,
조금이라도 하나님이나 그들의 눈앞에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단지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속자니 죽이자".
주목할 사실은 인간의 자손들의 마음이 악행을 하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
그들이 범하려 하고 있는 죄와 그 죄의 결과에 대하여
아무리 좋은 경계를 하더라도 감명을 받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과 입 맞추기보다도 그를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하여 그들은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관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우리가 그렇게 하겠다. 이제 그에게 달려들겠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죄의 처벌을 비난했지만 조금 있다가 그들은 도리어 범죄를 계획하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