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농부의 비유 2
성 경: [눅 20:14-18]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눅 20: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 의논하여 - 이 표현은 (디알로기조마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말하되'(레고)보다 훨씬 정밀한 묘사이다.
즉 그들이 서로 모여 자신들의 이익을 어떻게 하든 수호하기 위해 골똘히 대책을 숙의(熟議)하였다는 뜻이다.
이 같은 누가의 독특한 묘사는 결국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서로 결탁하여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어떻게 꾸몄는지를 잘 나타내는 것이다.
▶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 농부들이 의논한 결과는
아예 상속자를 죽여 버림으로써 포도원의 소유권을 영구히 차지하자는 것이었다.
농부들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의 소유권이
자기들에게 넘어온다고 믿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농부들은 아들이 자기들에게로 온 것은
주인이 아들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었다고 믿었거나(E.Bammel)
아니면 아들이 올 때 본래의 주인이 죽었기 때문에 아들이 그 소유권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오는 것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부들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주인이 죽은 것도 아니고 상속자 아들을 죽였다고
그 소유권이 자기들에게로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핍박자들을 이용하였던 사단은
예수를 죽임으로써 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보장받으려 하였으나,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는
다시 살아나사 사단의 무리들을 물리치셨다.
또한 본문은 농부들의 죄악 된 탐욕을 여실히 보여준다.
9절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주인과 농부의 관계는 소유주와 소작인의 관계이다.
이것은 서로 간의 계약으로서 농부들이 일정한 세액을 납부하기를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이 계약을 파기하고 소유권을 부당하게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계약을 인간이 먼저 파기했으며,
청지기적 신분을 망각한 인간의 탐욕이 온갖 범죄의 원인임을 말해준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어쨌든 이 비유는 농부로 비유된
당시의 종교. 정치 지도자들,
또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세상을 추구하려 한 죄악을 폭로한다.
[눅 20: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 이 구절은 비유의 클라이막스(climax)라고
할 수 있는데 마가의 표현에 의하면 아들을 죽인 다음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포도원 밖으로 끌고가 죽인 것으로 묘사한다.
이 구절은 아들이 포도원 안이 아닌 밖에서 죽었다고 묘사함으로써
예수가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가 처형당한 사실을 암시한다.
포도원은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 백성 및 그들에게 약속된 모든 축복으로부터
차단시키고자 하는 음흉한 계획을 추진해 나갔으며,
예수는 이 모든 궤계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히 13:12)받으셨던 것이다.
▶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 이 구절은 청중들로부터
이 비유의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도성 질문이다.
즉 결론이 어떻게 날지 자명해진 시점에서 질문을 함으로써
청중 모두가 일치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하며
곧 이어 내릴 결론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마태는 청중들이 결론을 직접 말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 21: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눅 20: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 여기서 주인이 내린
두 가지 조치가 언급되는데,
이는 농부들이 저질러온 죄악에 대한
심판의 징벌로서 그들을 진멸시키겠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이는
첫 째,
농부들이 상징하는 산헤드린의 대표들에 대한
전면적인 응징(應懲)을 선언하는 말이 된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거부하고 공격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심판 선언이기도 하다.
두 번 째,
다른 사람에게 포도밭을 맡기겠다는 가언을 하고 있는데
포도밭을 이스라엘이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같은 사실이 실제로 A.D.70년에
로마군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같은 사실이 실제로 A.D.70년에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됨으로써 성취된 바 있다.
나아가 이 비유를 신앙의 문제로 연결지어 해석할 경우
예루살렘이라는 제한된 장소와 시간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며 하나님의 아들을 끝내 배척하는 자는
인간적인 파멸뿐만 아니라 악의 세력에 노예가 될 것이라는 경고로도 이해된다.
(요 1:1-1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 그와 같이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원을 표현하는 누가만의 묘사이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메 게노이토'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부정적 소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독특한 표현으로서 바울이 즐겨 사용했다.
(롬 3: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즉 청중들이 안타깝고 간절한 바램으로 요청하는 말이다.
[눅 20: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 시 118:22을 인용한 문구인데
16절에서 언급된 결론과 청중들의 반응에 대한 추가적 대답이다.
(시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즉 성경의 본문을 인용함으로써 비유가 주는 교훈을 더욱 명료하게 한다.
이 비유 역시 상징적 의미로서
건축자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경고와
좋은 돌은 한 때 버려졌을지라도 다시 발견되어
머릿돌로 쓰여지게 된다는 필연성에 대한 강조이다.
따라서 여기서 건축자는 앞에서 언급했던 비유에서
주인의 종과 아들을 배척하고 죽인 농부들을 상징하며,
사실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지도자들과
불신앙적인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된 것은 예수를 상징하는 말로서,
그들에 의해서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머릿돌,
인류의 머릿돌이 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눅 20: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 심판과 돌을 연관지어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격언구 형식의 이 구절은
사 8:14,15과 단 2:34,44,45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 8:14-15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단 2: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44-45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
이 표현은 항아리 따위의 물건이 돌 위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듯이
사람도 산산이 부서져 파멸에 이른다는 말이다.
문맥상으로 여기서 돌 위에 떨어져 부서지는 형국에 처해질 사람은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깨어지겠고'는 예수와 그 복음에 대적하는 자들의 말로(末路)가
어떠할 것인지를 잘 나타낸다.
▶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 이 표현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반대 형식으로 묘사된 심판 계시이다.
즉 사람이 돌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람에게 돌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앞의 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것이다.
이 같은 표현은 형체를 찾아 볼 수 없도록 완전한 파멸을 강조하는 말로서,
앞의 묘사에 비해 심판의 철저함과 적극성이 강조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은
악인들이 자기모순 속에서 스스로 멸망하는 심판을 나타내며,
여기서 언급된 내용은
마지막 날 예수께서 친히 불신의 세력을 철저히 파멸시키실 것을 뜻한다.
이 같은 비유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자신들에게 임한 핍박과 고난을
예수의 고난과 동일시하면서
인내케 하며 또한 종말의 때의
통쾌한 승리를 약속하는 복음으로 이해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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