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8일 금요일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3

 

성 경: [3:16-22]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3: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의 역사를 다룬

앞 내용들(1-15)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죄악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본다는 말이다.

 

 

재판하는 곳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여기서

''(레솨)이란 '라솨'(죄를 범하다, 사악하게 행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범죄', '사악함' 등의 뜻을 갖는다.

 

사회적 기강의 근원이 되며 신뢰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재판상의 정의가 무너져버린 사실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혹은 뇌물에 의해 재판정에서

불공정한 판결이 나게 되면 사회 불안이 야기된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이 있었다.

 

한편 혹자는 '재판하는 곳'이란 '정의를 실행하는 재판정'

'공의(체데크)를 행하는 곳'이란 신앙적인 의식이 행해지는

'경건한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Barton).

 

 

 

[3: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심판 때에

의인에게는 상급으로 악인에게는 징벌로 공의에 따라 보응 하심을 나타낸다.

 

혹자는 이와 관련하여 본절의 '심판하시리니'

 

(1) 의인에 대해서는 변호하시는 것을

 

(7:8 주께서 만백성을 심판하시리니, 오 주여, 내 의와 내 속에 있는 내 순전함에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26:1 (다윗의 시) 오 주여, 내가 나의 순전함 가운데 걸었사오니 나를 판단하소서. 내가 또한 주를 신뢰하였사오니 그런즉 미끄러지지 아니하리이다),

 

(2) 악인에 대해서는 심판하시는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Delitzsch).

 

요컨대, 본절은 죄악된 인생이 불의하고 허무하며 무상하나

여전히 살아계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온 만물들을

섭리, 통치하시는 바

 

(2-8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무너뜨릴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애곡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들을 버릴 때가 있고 돌들을 함께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금할 때가 있으며

6)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화평할 때가 있도다,

 

14-15 내가 알거니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영원하리라.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것에서 무엇을 뺄 수 없나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라.

15) 지금까지 있던 것이 지금 있으며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나간 것을 요구하시느니라)

 

그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시리라는 전도자의 믿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3: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내용상 16,17절과 연관된다(G.A. Barton).

 

'재판하는 곳''공의를 행하는 곳'에서 악이 행해지는 바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어 멸망 받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죽음에 처해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험하시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형 '바라르'

 

'밝게(깨끗이)하다'- (11:35 또 명철한 자들 가운데 몇이 넘어져서 그들을 단련하며 정결하게 하고 희게 하되 끝이 임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일이 여전히 정해진 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

 

'조사하다', '시험하다', '입증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생의 면면들을 드러내어 밝히시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혹자는 이를 키질하는 것과 연결시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하여 드러낸다는 뜻을 내포한다고 보기도 한다(Delitzsch).

 

 

 

[3: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 이는 상반절에 언급된 대로

사람이나 짐승이 한결같이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는 점에 기인되어 한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말에는 또한 16, 17절에 암시되어진 바 인간의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

 

18-21절에서 기자는 인생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처해 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음을 반복하여 언급한다.

 

특히 본절은 인체(人體)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이

짐승의 몸과 동일하게 흙의 성분임을 지적함으로써 그 허무함을 밝힌다.

 

한편, 이는 타락한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3:19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여기서 '한 곳'이란 사람이나 짐승이 죽어 묻히는 땅을 가리킨다.

(Lange, Delitzsch, Glenn).

 

(21절 누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느냐?;

 

6:6 참으로 그가 천 년을 두 번 살지라도 여전히 좋은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모든 사람이 한 곳으로 가지 아니하느냐?;

 

12:7 그때에 흙은 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며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로다)

 

그런데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 땅에서 죽은 사람은 모두 음부

즉 어두운 땅 밑 지하 세계에 가는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86;13 의가 그분 앞에 나아가며 그분의 발자취가 있는 길에 우리를 세우리로다)

 

전도자 자신도 여기에서 이 음부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Eaton).

 

(9:10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

 

 

 

[3: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기자는 사람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여기서는 사후(死後)의 차이점을 언급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짐승과는 달리 사람의 영혼은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짐승의 혼이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끊어져 없어진다는 의미이고

사람의 혼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사후의 인생의 영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소관 하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Eaton).

 

그리고 혼(루아흐)이라는 말이 본절에서 사람이나 짐승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지만,

우리는 이를 사람에게는 '영혼'으로,

그리고 짐승에게는 '호흡'(혹은 의식 기능) 정도로 적용시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2:7).

 

 

 

[3: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 - 13;2:22등을 연관시켜 볼 때

일하는 가운데, 그 일 속에서 좋은 결과를 얻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13 또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의 모든 수고로 인한 좋은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아노라;

 

2: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며 행한 자신의 모든 수고와 자기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으리요?)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

 

이는 문맥상 사람이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Lange, Delitzsch, Eaton).

 

그리고 본절의 전반적인 의미는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 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무관해지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를 얻고

그것을 누리는(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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