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9일 토요일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불평등한 인생 모습

 

성 경: [4:1-6]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4: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모든 학대(虐待)를 보았도다 - '학대'에 해당하는 '아슈크'

'누르다', '사취하다'의 뜻인 '아솨크'의 수동태 분사로서

'압제', '억압'등을 의미한다(oppressions, KJV).

 

본절에서는 세도가들의 수탈과 압제를 가리키는 듯하나

압제와 피압제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한계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구약성경에는 피압제자에 대한 긍휼에 드러내는 구절이 많다.

예컨대,

왕이 백성들을 압제하는 경우 - (28:16 명철이 부족한 통치자는 또한 크게 학대하는 자이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자기 날들을 길게 하리라),

 

주인이 종을 학대하는 경우 - (24:14 가난하고 궁핍한 품꾼은 네 형제든지 네 땅의 성문 안에 거하는 나그네든지 너는 그를 학대하지 말며),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경우 - (22:16 자기 재물을 늘리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또 부자에게 주는 자는 반드시 궁핍하게 되리라;

 

4:1 사마리아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너희는 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짓밟으며 그들의 주인들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가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등에 대한 분개가 그것이다.

 

특히 나그네나 고아, 과부 등은 각별한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7:6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를 학대하지 아니하고 무죄한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너희에게 해로운 다른 신들을 따라 걷지 아니하면;

 

22:7 그들이 네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며 네 한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여 다루고 네 안에서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를 괴롭혔도다;

 

7:10 과부와 아버지 없는 자와 타국인과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며 너희 중 아무도 마음속에서 자기 형제를 치려고 악을 꾀하지 말라).

 

 

위로자가 없도다 - 이 말은 본절에서 두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도움받을 길 없는 딱한 처지를 한층 더 강조해 줌과 동시에

이들을 구원할 자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암시해 준다.

 

 

 

[4: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

 

이는 3:22과 대조되며

 

(3:22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일들을 기뻐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내가 깨달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누가 그를 데려다가 그의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여 주겠느냐?)

 

3:20, 21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으로서,

 

(3:20-21 어찌하여 그분께서 고통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혼이 괴로운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가?

21) 이러한 자들은 죽기를 갈망하나 죽음이 오지 아니하므로 땅을 파고 죽음을 구하기를 숨긴 보물을 구하는 것보다 더 하다가)

 

학대받는 자들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극도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은 3:22;9:4-10 등을 근거해 볼 때

전도자의 뿌리 깊은 염세주의적 성향을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렇게 언급한 것이다(G.A.Barton).

 

특히 본절에서 전도자가 학대받는 자들의 편에서 이와같이 말한 것은

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들이라,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않아 있으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로서 약한 자들을 동정하는

상태에 있음을 엿보게 한다.

한편 본절의 '복되다'에 해당하는 ''

' ...보다 위', ' ...보다 더'(more than, KJV)라는 비교급의 뜻을 갖는다.

 

 

 

[4: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

 

이는 욥이 극도의 고난으로 인하여 그의 출생일을 한탄한 말(3:1-16)을 연상케 한다.

 

본절 역시 2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인생의 허무함을 더욱 강도높게 묘사한 것이다.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

 

본절에서는 인간이 받는 시기, 질투로 인한 인생의 허무함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의 성취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수고와 재능에 대해 시기하기 쉽다.

 

그리고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을 하기보다는

지나친 경쟁 의식, 비교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상대방을 비난하고 모함하기 쉽다.

 

'교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쉐론''성공', '성취', '기술' 등을 의미한다.

 

주석가들 가운데서도 이를 '성공'을 뜻한다고 보는 자가 있는가 하면

'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자도 있다(Lange, G.A.Barton).

 

요컨대, 이 말은 사람이 훌륭한 기술로 인하여

성공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M.A.Eaton, Lange).

 

 

 

[4: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이는 앞절(4)

연장선상에서 이해함이 무방할 듯하다.

즉 다른 사람이 행하는 '수고'와 성공을 이루는 '교묘한 일'

시기, 질투할 뿐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우매자에 대한

언급이라는 말이다.

 

특히 '손을 거두고'란 일하기 싫어서 손놀리기를 멈추고

빈둥거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6:10;19:24;24:33 등과 유사하다(Lange, G.A.Barton, M.A.Eaton).

 

(6:10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자자, 하면;

 

19:24 게으른 자는 자기 손을 품에 감추고 그것을 다시 자기 입으로 가져가려 하지도 아니하느니라;

 

24:33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자자, 하면)

 

그리고 '살을 먹느니라'란 우매자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을 뜻한다.

 

(27:2 사악한 자들 곧 나의 원수, 나의 대적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걸려서 넘어졌도다;

 

49:26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살을 먹게 하며 달콤한 포도주에 취하는 것 같이 자기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주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능하신 이인 줄 알리라;

 

3:3 또 내 백성의 살을 먹고 그들에게서 가죽을 벗겨 내나니 그들이 냄비와 솥에 담을 고기처럼 저들의 뼈들을 꺾어 조각조각 자르는도다).

 

아마도 본절은 전도자가 당시 유행했던 잠언을 인용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4: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

 

이것도 5절처럼 당시 유행되던 잠언구를 인용한 것인 듯하다.

 

원문을 직역하면

'평온함이 가득한 한손이 수고로 가득한 두 손보다 낫다'(Better is a handfull of quietness than two hands full of toil, RSV)의 뜻이다.

 

여기서 앞의 ''은 그 기본어가 '카프'로서

약간 오목하되 거의 평평하게 펼친 손(바닥)을 뜻하며,

뒤의 ''은 그 기본어가 '호펜'으로서

가능한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하여 오므린 손, 주먹을 뜻한다(G.A.Barton).

 

이러한 원어상의 뜻은 상호 대조적인 의미를 잘 반영해 준다.

즉 전자의 의미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반면

후자의 의미는 물질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본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이는 앞절(5)과 연관되는 말로서 게으른 우매자가 스스로에 대하여 위로하는 말 또는 '수고''교묘한 일'을 통해 성공한 부지런한 이웃(4)에 대해 질투하는 말로 이해한다(Lange).

 

(2) 지나친 과욕이나(하반절) 지나친 게으름(5)을 배격하는 절제된 중용의 삶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살면서 너무 지나치게 많이 취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적당량을 취한 상태에서 인생의 묘미를 누리는 것이 최선의 상태임을 가리치는 말이다(M.A.Eaton).

 

(3) 이는 앞 뒤 문맥의 사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서 전도자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2)의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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