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성 경: [고후 5:11-19]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 여기서 '주의 두려우심'은 절대자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공포가 아니라,
(창 35: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한 그리스도 즉 미래의 심판자로서의 주님에 대한,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경건한 두려움 곧 경외심을 가리킨다.
한편 '알므로'는 단순히 피상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영적 비밀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의미하는데 이는 바울이 가지고 있는 주님께 대한 경외심이 체험적으로 인식된 것임을 말해준다.
아마 여기에는 다메섹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결정적인 사건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 혹자는 본 구절과 관련하여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혹은 진실되지 못한 동기로 그들을 자기편에 끌어들인다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Barrett).
이런 추측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즉 본 구절에서 강조되는 바울의 진술은 위의 비난에 대한 답변으로서 바울 자신이 주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그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코 진실하지 않은 동기를 가지고 자신을 전해서는 안 되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했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확정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1-5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 바울이 자신의 진실됨과 순수함을 하나님 앞과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할 때, 그를 대적하는 자들은 또다시 그것을 가리켜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사전에 그런 문제의 소지(素地)를 없애고자 이 말을 하게 되었다. 이미 앞에서 천명한 바 있지만 바울은 자신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천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못밖고 있다.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하는 것 -
이는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외부적인 자랑거리를 내세우며 자기들을 과시하였으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에 대한 그들의 비난을 반박할 어떤 내용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거짓 사도들을 반박할 수 있는 논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과 거짓 선지자들을 비교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직접적으로 접했다는 것,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적인 추천을 받았다는 것,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환상을 보았다는 것 등을 자랑하지만,
(12:1-7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자랑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들은 무익한 자랑(12:1)을 하면서 대접을 받으려 하지만,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바울은 어떠한 외적인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했으며,
(3:1-6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대접을 받거나 군림(君臨)하기 위하여 자기의 업적을 자랑하지도 않고, 오히려 스스로 종임을 선언했다.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의 진정한 사도인 바울을 자랑거리로 삼아도 되며 그것으로 대적자들을 반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고후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 본 구절은 바울 자신이 결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본 구절에서 이 표현은 그 상태가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의 한 특수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무난하다.
바크만(Bachmann)은 이것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이거나 12:7에 나타난 '계시'를 말하기도 하고, 혹은 바울이 고린도에 가슴 아픈 방문을 했을 때 일어났던 '분노'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데로 변화된 것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여기서는 바울이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살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신 헌신적인 사랑이며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 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뜻한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한편 '강권하시는도다'는 '둘러싸고 밀어낸다', '붙든다'는 뜻으로 이는 바울의 헌신적인 행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이 표현은 롬 5:15, 16과 매우 유사하다.
(롬 5:15-16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 원리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이 그 원리에 따라 살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본 구절에서는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사상이 잘 부각되어 있다. 이 사상이 그의 사역의 원동력이며 또한 최종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여기서 '산 자들'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표현이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역시 동참한 자이다.
그의 부활에 동참한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자 이기에 '산 자'이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따라서 이 체험이 있는 성도는 마땅히 아담 이후 창조자를 거역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주인 행세하던 삶에 대해선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써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로써 바울은 자기중심적 삶을 사는 거짓 사도들과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며, 동시에 자신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섬기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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