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로 인한 기쁨 2
[고후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겪은 근심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임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증명해 보이고 있다.
구체적 증거들은 다음의 7가지로 정리된다.
▶ 간절하게 하며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된 것들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진지하게 의식하고 그것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심을 갖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 변명하게 하며 - 이에 대해서는 대개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에 대해 탄원(歎願)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분하게 하며 - 이것은 바울을 공격하여 그의 명예를 실추시킨 적대자들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이 의분을 느끼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과거에 고린도 교인들은 이들에게 동조하였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행위를 방임하였었다.
▶ 두렵게 하며 - 이것은 바울을 다시 볼 면목이 없는 것, 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
▶ 사모하게 하여 - 7절에서처럼, 복음을 심어준 바울을 진정한 사도로 받아들이며 예전처럼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것을 나타낸다.
▶ 열심있게 하며 - 이는 회개와 성결의 실천을 위한 열심 그리고 바울을 섬기려는 열심을 의미한다.
▶ 벌하게 하였는가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공격한 자들을 공의에 입각하며 처벌하였음을 말해준다.
▶ 깨끗함을 나타내었으니라 - 본문의 의미가 고린도 교인들의 본래적인 무죄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있던 잘못이 용서된 것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혹자는 본문의 '나타내었느니라'(쉬네스테사테)가 '입중하였느니라'를 뜻한다고 본다(Barrett).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의 무죄함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한 것(9, 10절)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실제로 범한 잘못을 회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잘못을 범할 때 무관심했던 것을 회개한 것이라고 한다.
칼빈(Calvin)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보여주는 바,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편한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만, 결코 그들 자신이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으며 이에 대해 그들은 분명하고도 진심에서 우러난 증거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어떤 학자들(Harris, Lowery)은 '고린도 교인들은 전에 실제적인 잘못을 했으나 지금은 회개하고 용서받았기 때문에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본절을 해석한다.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고린도를 향한 '가슴 아픈 방문'이었다. 그런데 그 방문이 가슴 아픈 방문이 되었던 것은, 적대자들이 바울을 공격할 때 고린도 교인들이 보여준 태도와 관련이 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동조했는지 아니면 방관자적 태도를 취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어떤 경우이든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바울에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보여준 행동에 대해 회개를 하였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 자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의 두 견해는 다 참조할 수 있으며 굳이 어느 하나로 선택할 필요는 없겠다.
[고후 7: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 - 여기서 논점이 되는 것은 바울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 가해자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불의를 행한 자와 그가 저지른 불의는 고전 5:1이하에 기록된 고린도 교회 내의 음행 사건, 즉 아비의 아내를 취한 패륜아 사건이었다고 보는 견해이다(Farrar).
(고전 5:1이하 그분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다가 마치시매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 하니)
이럴 경우 불의를 당한 자는 아들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비가 될 것이다.
문제는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외부에서 온 거짓 교사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내세우며,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바울의 권위를 무시하는 언동을 하고 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를 했을 때 생겼을 것이고, 그 때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기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그의 편을 들지도 않고 그 적대자들을 제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회개해야 하고 해명해야 했던 이유가 된다.
(9-11절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또한 바울이 적대자들로부터 무시당한 것은 곧 적대자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했던 그들의 행동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11절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준엄한 편지'를 보낸 목적이 드러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준엄한 편지'를 보냈던 것이고 혹시나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에 대하여 오해하거나 근심하지 않을까 걱정하였었다.
(8절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곧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쳤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이 '준엄한 편지'를 쓴 것은 불의한 자들이나 직접적 피해자인 바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성도들 간의 교제를 회복토록하기 위함이며, 아울러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열정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고후 7: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 바울이 편지보낼 때 목적했던 바 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이 여전히 존중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므로 바울은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 어떤 이유에서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디도가 바울이 건네준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로 향할 때 다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디도가 그렇게 유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고린도를 방문했을까'에 대해서는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인데, 과거에 고린도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했거나 아니면 바울이 당한 쓰라림을 자기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디도는 전혀 예상 밖의 환대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그의 마음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동역자인 디도의 이런 모습은 바울의 기쁨을 더욱 배가(倍加)시켰던 것이다.
[고후 7: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에 대한 신뢰를 굳게 가지고 있었고 비통한 심정으로 편지를 써 보내면서도,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디도에게 고린도 교인들은 믿을 만하고 사랑이 풍부하다고 자랑을 했다.
참다운 목회자로서 바울의 넓은 마음과 신실함이 탁월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디도가 환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바울은 자신의 확신을 배반하지 않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진실만을 말했다.
(1:17-20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그리고 지금은 디도에게 한 말이 진실임이 증명된 것이다.
[고후 7: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 바울 자신이 편지를 보낸 후 상당한 심적 조바심을 내었던 만큼, 디도 역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와 자기가 가져온 편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나타낸 반응은 바울과 디도의 염려가 기우(杞憂)였음을 보여주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디도를 영접하였고 더 나아가 순종하기까지 하였다.
'두려위 함', '떪' 그리고 '순종' 같은 단어들은 고린도 교인들이 여전히 바울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음을 말해주며 바울의 대리인인 디도에 대해서도 동일한 태도로 예우해 주었음을 말해준다.
▶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 '심정'에는 '애정', '사랑', '긍휼'의 뜻이 담겨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겸손하게 대접하고 그가 하는 말들에 대해 순종하였을 때, 그는 대단히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이 선하고 훌륭한 신앙인들이라고 한 바울의 말(14절)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것도 물론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디도의 마음속에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실망시킨 것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가 사라지고 대신 그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깊어진 것이다.
[고후 7: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 표현되는 바울의 신뢰와 기쁨은 자신이 애써 수고한 모든 사역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확인한 데서 느끼는 목회자로서의 신뢰와 기쁨이며,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현재 상태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이어진다.
바울은 이 모든 위로와 기쁨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자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실패하지 않는 목회자가 되게 한 중요한 이유였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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