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사도권 변호
〔외모로 보는 판단〕
성 경: [고후 10:7-11]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고후 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 외모만 보는도다 - 본문은 바울의 의모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바울의 행위에 대한 적대자들의 근시안적 판단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외모'는 외형적인 것으로서,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천거서,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수사학적 언변,
(11: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권위에 찬 태도,
(11: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환상을 보는 것과 같은 신비적 체험 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Harris).
(12:1-7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외부적인 징표(徵表)들에 쉽게 현혹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그러한 외부적인 요소들에 현혹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빈디쉬(Windisch)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구체적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네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1) 단순히 그리스도인 됨을 의미할 수 있다.
(2) 역사적인 예수와의 특별한 관계를 가리킬 수 있다.
(3) 사도적 신분을 가리킬 수 있다.
(4) 천적(天的)인 그리스도와의 신비주의적이고 영지주의적인 관계를 가리킬 수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견해에 의해서 절의 요지를 파악하면,
바울의 적대자가 틀림없는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자부한다면, 우리도(물론 바울을 가리킨다) 그에 뒤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바울의 적대자가 자신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확신에 찬 선전을 했다면, 그것은 은연중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에 대해 적대자들이 논한 적이 없다.
따라서 첫 번째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연합에 대한 것도 아니기에 네 번째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특수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사도의 권위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고린도에 들어온 적대자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했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이야말로 권위있는 사도라는 것을 과시했으며, 그에 비해 바울은 권위있는 사도가 아니라고 말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암시를 주었을 것이다.
[고후 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
진정한 권위는 성도들을 망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양육(養育)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진정으로 주님께 받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적대자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자랑하자면 아무리 지나쳐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1:21-23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하나님의 진리만을 전하였고,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항상 공평하게 행하였으며,
(11:1-15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무엇보다도 고린도 교인들과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다.
(7:3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만약 누가 사도라고 자처하면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교회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자신의 권세를 내세운다면, 그 사람은 결코 사도가 아니다.
도리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후 10: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지 않게 함이니 - 본절은 앞절과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본문의 뜻은 바울이 편지로 고린도 교인들을 위협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자신에게 권위가 있다고 말한 것과 본절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8절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바울이 보낸 편지에 대해, 그가 편지를 쓸 때는 강하고 담대한 것 같으나 만나서 말할 때는 유약하기 짝이 없다는 비난이 있었다는 10절의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
아마 그 편지는 '가슴 아픈 방문' 후에 쓴 '준엄한 편지'였을 것이고 그것에 대해 적대자들은 바울이 면전(面前)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편지로 위협하려 한다고 악선전을 하였을 것이다. 이런 비난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바울은 미리 해명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에게는 사도로서의 권위가 있으나 편지를 통해 위협하는 것과 갈은 방식으로 그 권위가 행사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결코 그는 그런 식으로 권위를 행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권위는 성도를 세우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위해서는 행사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후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 바울이 위협용 편지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랐던 그 편지는 곧 '준엄한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편지를 쓸 때의 상황이 그랬던 만큼 그 내용이 매우 강한 어조로 쓰여졌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적대자들은 바울이 편지를 쓸 때나 그렇게 강하게 말할 뿐, 직접 만나보면 그의 외모가 약해 보일 뿐더러 말도 시원치 않다는 악선전을 하였다.
본문의 표현대로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바울의 풍채가 나약해 보였음을 말하는데 실제로 바울은 고질적이고 만성적 질병을 갖고 있었다.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 4:13-14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또한 초대 기독교 전승(傳承)에 따르면 바울은 병을 갖고 있는 것 외에도 외모가 그리 보기에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한 예로 2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바울과 데클라 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작은 키와 왜소한 체형, 'O'자형 다리와 양쪽 다 찌부러진 눈썹, 그리고 매부리 코를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이 얼마만큼의 사실성을 지녔는지 분명치 않으나 바울의 외양이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런 외부적인 것들이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는 없었겠으나, 그것이 바울의 세련되지 못한 행동과 사람들을 감동 시키기에는 부족한 말솜씨 등과 연결되어,
(11: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그의 사도적 권위를 훼손시키기 위한 악선전의 재료로 사용되기에는 충분했다.
[고후 10: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깎아 내리려고 악선전하는 자들은 바울이 결코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떨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언제나 온유하고 관대한 면에서,
(1절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편지로 쓴 말에 대해서는 만났을 때에도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6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13: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10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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