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9일 일요일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크고 영원한 영광

 

성 경: [고후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 '그러므로'라는 표현은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앞에서 제시되었음을 암시한다.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언약을 전하는 고귀한 직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1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둘째,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리라는 소망 때문이다.

 

(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셋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혼을 윤택(潤澤)케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15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여기서 '겉 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를 가진 이 세대의 인간을 가리킨다.

 

이에 대조되는 '속사람'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영적 실존을 가리키는데,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3:9-10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장차 다가올 새로운 세대의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겉 사람'이 낡아져 가는 것은 이 세대의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생성 소멸의 원리이다.

 

그러나 '속사람'이 도리어 새로워지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식이 새로워지며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새로와짐'은 종말론적 재림의 때에 완성되는 것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이미 현재화되어 있다.

 

바울은 이것을 '날마다 새롭도다'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본문은 바울 자신에게도 적절하게 적용되는 바, 그의 육체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들과,

 

(1:7-9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4:8-11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세월의 흐름으로 하여 점점 쇠약해지지만 그의 영적 실존은 나날이 새로와지는 것이다.

 

 

[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본절에서는 두 가지 사항이 강조된다.

 

하나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환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받을 영광에 비하면 그 환난은 오히려 가볍다는 것이다.

 

이것은 '잠시''영원',

그리고 '경한 것''능한 것'의 극명(克明)한 대조로 잘 나타나고 있다.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당한 환난은 사실상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1:8에서 고백한대로 그가 당한 환난은 너무 심하여 살 소망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그럼에도 그는 이것을 '경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하늘에서 받을 영원하고도 영광스러운 축복에 대한 소망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여기서 '돌아보는''주목하다', '소망하다'의 뜻이다.

 

바울과 성도들이 소망하는 것은 이 세대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영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보이는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묘사하고 자신이 후자를 바란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물질과 영, 현실과 이상에 대한 이원론적(二元論的) 구별을 말하는 것으로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육체적인 것이 무의미하다면 그가 당한 육체적 고통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였다.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다만 바울이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며 결국 없어질 것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종말론적 구원의 날에 도래할 그 영원한 세계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미 보며, 미래의 종말론적인 것을 이미 현재적인 것으로 누리고 있다.

 

그것은 그가 믿음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런 바울의 모습은 유한한 육체를 입고 환난이 현존하는 이 세대에 살고 있지만, 이미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누리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존의 한 모범이며,

 

마찬가지로 어떤 성도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과 동일한 영적 실존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