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자와의 분리
성 경: [고후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이,
(13절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믿지 않는 자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을까?
갑자기 서신의 주제가 바울과 고린도 교인과의 관계에서, 고린도 교인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의 관계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본절의 '믿지 않는 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바울의 적대자들을 가리킨다(Rensberger, Collange).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근거로서 본서의 주제는 불신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사도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2) 문자 그대로 불신자들을 가리킨다(Filson, Barrett).
(3) 믿음의 순수성을 해치는 세상과의 타협을 가리킨다(Hughes).
(1), (2), (3)의 견해가 모두 일면 타당성을 지니나, '아피스토이스'의 어의상, 그리고 전후 문맥상 (2)와 (3)의 견해가 더욱 타당하다.
한편 성도들의 순결을 요구하는 본문은,
신 22:10의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와
레 19:19의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하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라는 구약의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의 '멍에'는
믿음의 순수성을 저해하는 불신자와의 결혼,
(고전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우상숭배,
(고전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도덕적 타락,
(고전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11: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바울은 본절을 통해 신앙과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 성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다.
▶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
'불법'은 불신자와 적그리스도의 특징이다.
(롬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살후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반면에 '의'는 신자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특히 본문에서의 '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칭의의 차원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윤리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Martin, Collange).
▶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 바울은 신자들의 순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매우 극단적인 대조법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사귀며'에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사랑과 일치의 교제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빛과 어두움이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은 구원 얻는 자들과 멸망하는 자들(2:15)이 동반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는 예수께서 '세상의 빛'이 시며,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세상은 멸망으로 귀착할 어둠에 속하기 때문이다.
(마 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 '벨리아르'는 '무가치함', '악함'을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말은 매우 나쁜 뜻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개인에게 적용될 때는 불량하거나, 방탕하고, 거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고,
(삿 19:22 이제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보라, 그 도시의 사람들 곧 벨리알의 어떤 아들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집에 들어온 남자를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알리라, 하니;
삼상 10:27 그러나 벨리알의 자손들은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그를 멸시하며 그에게 예물을 가져오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는,
'악심을 품은 허위 선전'을 뜻하는
'벨리알의 말'-(신 15:9;시41:8;101:3),
'거짓 증언자'를 뜻하는 '벨리알의 증인'-(잠 19:28),
'음모를 꾸미는 자'를 의미하는 '벨리알의 충고자'-(나 1:11) 등으로 적용되었다.
이 말이 사해 사본에서는 '악마의 왕'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 이 말이 뜻하는 바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단'을 가리킨다고 본다.
▶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 '믿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을 가리킬 때 바울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14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서로 상충하지 않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근본적으로 병립할 수 없으며, 운명을 같이 할 수가 없다.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 -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14절)는 주제에 대한 논증이 본절에서 절정을 이루며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본문에서 '일치'는 '함께 찬성의 투표를 하여 승인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 우상이 함께 동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성도들의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바울이 언급한 바 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성전' - 구약 시대의 성전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온전히 임재하시는 '지성소'를 가리킨다.
성도들의 몸이 곧 하나님이 온전히 임재하시는 성전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우상이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어야 한다.
(고전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 바울은 자기가 진술한 것들에 대한 정당성을 더 강화시키기 위하여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본절에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레 26:11, 12이며
같은 내용을 가지는 구약의 구절들은 출 25:8; 29:43-46;삼하 7:14, 27;사 52:4,11;겔20:34 등이다.
이와 같은 구절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순결을 강조하는 것들이며 새로운 관계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사실상 바울은 이 약속이 그리스도가 거하도록 허락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취되었다고 보았다.
[고후 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 본문은 이사야가 그의 백성들에게 바벨론은 떠나 그곳의 이교주의와 단절하라고 권고한 사 52:11의 인용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기 위해서는 백성으로서의 순결성이 선행적으로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인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려면 음행, 토색, 우상숭배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다.
(고전 5:1-13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구절 앞에 '그러면'(카이)이 있다. 이는 앞의 조건이 충족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영접한다는 의미가 된다.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 본절은 바울이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하 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사 43: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렘 31:9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울이 삼하 7:14과 사 43:6을 나름대로 수정 인용함으로써 '남자'(휘우스, '아들')와 '여자'(뒤가테라스, '딸')를 명시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을 때 남자들과 여자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관계를 갖게 된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4:5-6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엡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전능하신 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오스 판토크라토르'는 삼하 7:8;렘 51:7등에 나오는 '야웨 쉐바오트'('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70인역(LXX)의 인용으로 바울 서신에서는 본절에서만 발견된다.
바울은 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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