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6일 수요일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준비된 연보

[헌금의 바람직한 태도와 그 결과]

 

성 경: [고후 9:1-5]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 9:1]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성도를 섬기는 일 - 이는 8장에서부터 계속 다루어 온 문제로,

 

(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글라우디오 황제(A.D. 41-54) 때 몰아친 심한 기근으로 인해 생활이 몹시 궁핍해졌기에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한 구제 헌금 내는 일을 가리킨다.

 

바울은 새삼 이 일에 대하여 쓸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 절(2)에 제시된다.

 

 

[고후 9: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 구제 헌금을 모금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쓸 필요가 없는 까닭은, 그 일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자원했기 때문이다.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 아가야는 마게도냐의 남방에 있는 헬라 전토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바울 당시 아가야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고린도가 그 수도였다.

 

따라서 아가야와 고린도는 동일시될 수 없는 것이고 다만 고린도는 아가야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고린도 교회 역시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고린도 시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지명으로 겐그레아나 아덴을 들 수 있는데 이 도시들에도 교회가 있었다.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인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니).

 

한편 본문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은 바울이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구제금을 준비하였다고 자랑했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8장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헌신을 고무시키기 위해 마게도냐 교인들의 모범에 관해 말한 것처럼 본장에서는 과거에 마게도냐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을 소개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격동시켰느니라 - 이는 좋은 의미로 '건전한 경쟁의식을 조장(助長)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J. Hering).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금에 대한 사업을 먼저 시작한 것은 사실인 듯하며,

 

(8: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 소식이 마게도냐에 전해 졌을 때 그들에게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음도 사실인 듯하다.

 

(8:2-3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고린도 교인들의 모범을 보고 늦게 시작한 마게도냐인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8:2) 불구하고 이미 구제 연보를 마쳤던 반면,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먼저 시작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으며 이제는 도리어 마게도냐인들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아직 구제 연보를 끝내지 못한 사실을 마게도냐인들이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바울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3-5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 9: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 여기서 '이 형제들'8:18, 22에 언급된 두 형제만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디도까지 포함하는지, 분명치 않으나 전자라고 보는 견해(Lowery)보다 후자라고 보는 견해(Barrett, Harris)가 유력하다.

 

바울은 앞에서 디도와 나머지 두 형제를 구분하여 소개했었다.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그것은 아마 양자의 역할이나 위상(位相)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디도는 바울의 대리인 자격으로 간 것이고, 두 형제는 헌금 사업이 아무런 의혹을 일으키지 않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파견된 일종의 증인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양자는 구별된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이들 모두를 '형제들'로 표현한다. 이 호칭 속에서 디도 일행은 모두 고린도 교인들의 형제들로서 그들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구제금에 대한 열심을 격려하게 될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언급되는 '형제들'이 디도와 마게도냐 교회에서 선출된 두 형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은 8장과의 연결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다.

 

(8: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은 고로 더욱 간절하니라).

 

그렇지 않고 본장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이 형제들'이 누구를 지시하는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8장과 본장은 한 편지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임이 분명해진다(2절 주석참조).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 '이 일'이라 함은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자랑하였던 바, 고린도 교인들이 일 년 전부터 구제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가 한 자랑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형제들을 보낸다고 말한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모금 운동이 바울의 자랑에 비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고후 9:4]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시작과는 달리 구제금을 다 모으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이에 대해 바울은 두 가지로 걱정을 한다.

 

첫째는, 만약 바울이 마게도냐인들과 함께 고린도를 방문할 때까지도 구제금 사업이 지지부진(遲遲不進)한다면 마게도냐인들이 보기에 고린도 교인들은 형제된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주님께 대한 헌신이 없는 형편없는 성도들로 보일 것이다.

 

둘째는, 마게도냐 성도들에게 바울의 신뢰가 실추되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며, 더 나아가 고린도 교인들을 믿었던 바울 자신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런 일이 현실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고후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형제들로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미리 준비케 하도록 -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바울의 의지가 다시 드러난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 일행을 보내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고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연보 - 디도 일행이 해야 할 일은 단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이 과거에 한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일뿐이다.

 

그 이상 고린도 교인들이 심리적으로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구제 헌금에 관한 모든 결정은 고린도 교인들 스스로가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금에 대한 약속을 스스로 지켜 주리라 믿고 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본절의 내용을 볼 때,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금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를 미리 준비해 두지 않고 있다가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간 다음에 마지못해 연보를 한다면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보가 아닌 것이다.

 

본문의 '연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ελογία 율로기아'좋은 말', '찬양', '후한 선물', '축복'의 의미를 갖는다.

 

본문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의미는 '축복'으로서 '참연보'는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Bruce)는 것으로

 

'참 연보'는 의무에 의해서나, 체면 때문에, 또는 자랑이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에 대한 책임 의식과 신앙적 사랑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참 연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었으며, 이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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