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信人)의 무기
고린도후서 10장 3-4절 :
우리는 육에 있어서 살지만 육에 따라 싸우지 않는다.
4) 대저 우리들의 싸움의 무기는 육에 속한 것이 아니다. 성채를 파하는 하나님에 의한 능력이다(일본어성경)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개역한글)
세상에 얼핏 보기에 그리스도교의 교사만큼 도움 없는 자도 없다.
특히 독립 전도사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에게 정부의 원조가 없다.
교회의 동정이 없다. 사회의 존경이 없다. 그에게 금전이 없다.
위계가 없다. 세력이 없다. 권능이 없다.
이에 더하여 그는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평등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자유, 평화, 일치를 주장해야 한다.
그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이 그러면서도 주는 의무만 있고 받을 자격 없다.
세상에 다루기 쉬운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교사 같은 것은 없다.
그는 조소되어도 노하는 것을 용서받지 못한다.
매를 맞아도 반격할 수 없다.
무능, 무력, 무원. 만약 세상이 때려도, 걷어차도, 침 밷어도, 탈 없고 위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교사이다.
특히 독립 전도사이다.
그는 실로
세상에 폐물(오예) 또는 만들기 찌끼와 같다(고린도전서4:13참조).
능욕을 당할 때는 축복하고, 비난(박해) 받을 때는 참고, 비방당할 때는 권면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4:12-13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세상의 저속하고 비열한 자들은 꺼림 없이 그를 헐뜯고 욕하여 안가의 쾌락을 일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교사, 그 전도사, 그 복음사, 정부와 교회와 직분과 감독과 권리와 승려의 목전에는 아무런 가치 없는 그도 또 전연 무능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세인 동양, 육을 입고 살아간대도 세인과 달라, 육에 따라 싸우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도 또 싸움의 무기가 있어서 이것으로서 그는 적의 견루도 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회와 교회는 그를 멸시하여 아직 그의 능력을 모르는 것이다.
그가 만약 팔꿈치의 힘을 나타내 보이면 마음의 교만한 자를 흩어버리고 권세 있는 자를 위에서 떨어뜨릴 수가 있다.
(누가복음 1:51-52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하나님께 파송된 전도사는 세인이 생각하듯이 약하지는 않다.
그는 성체를 깨칠 만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능력이 있다.
자기에게는 없다. 하나님에 의해서이다.
그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나 같다.
실은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만큼 강한 자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무기는 무엇인가?
물론 칼(검)은 아니다.
또 칼로서 유지되는 정권은 아니다.
사법권은 아니다. 경찰권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권위로서 보호되는 감독, 승려, 신주 등의 소위 교권은 아니다.
정부도 교회도 참된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
실로,
우리들의 싸움의 무기는 육의 속한 것이 아니라 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쓰는 무기는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다. 기도이다.
밀실에서 냇가에서 들 한 가운데서 숲 그늘에서 홀로 하나님께 향하여 호소하는 마음의 기구이다.
이것으로서 그는 적을 넘어뜨리고 성채를 무너뜨리고 한 사람으로서 천인을 당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그들은 신앙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세력을 끄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데서 강해지고 전쟁에 있어서 용감하고 이방인의 진을 물리쳤다(히브리서11:34)고 있음은
이 능력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기도라고 하면 사람은 자비, 인내, 인애, 희락 등과 같은 여성적 미덕을 환기하기 위한 것으로 만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기도는 신인 유일의 무기이다. 그는 이것으로서 적에 대하는 것이다.
적루에 무너뜨리는 것이다. 악인과 위선자의 입을 막는 것이다.
이단의 힘을 물리치는 것이다.
신자는 기도를 남성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능력 있는 것이다.
예수는 칼을 뽑아 그 스승의 몸을 지키려 한 제자들에게 고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12군여의 천사를 내 아버지에게 청하여 받을 수 없다고 너희는 생각하느냐(마태복음26:53)
예수는 싸워 이길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싸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 그의 종에서도 이 권위가 없는 것 아니다.
다만 쉽게 이것을 사용치 않는 것이다.
세상에 실은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만큼 무서워해야 할 것은 없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일언으로 거짓 예언자 하나냐(7권 26역주)는 쓰러졌다.(예레미야28장 참조).
바울도 또한 부득한 경우에 있어서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멸하는 일 있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신자는 약한 자는 아니다. 강한 자이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우주의 권능을 쓰는 자이다.
그를 업신여기는 것은 커다란 위험을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쉽게 노하지 않는다.
또 자기 위해 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성냄은 무서워해야 할 것이다.
(시편 2:8-12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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