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3일 월요일

마음에 쓰여진 그리스도의 편지

  

새 언약의 일꾼


성 경: [고후 3:1-5]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고후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 본절의 `아니오'라는 답변을 기대하는 질문의 이면에는 바울에 대한 두 가지 비난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바울이 자신의 업적을 지나치게 되풀이하여 선전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이 천거서를 받지 못한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바울에 대한 이런 도전은 적대자들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가리켜 자기를 칭찬하는 일에 열을 올리며 천거서도 받지 못한 거짓 사도라고 비난함으로써 자기들의 거짓됨을 은폐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바울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떤 사람 -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이 선교사들로서 누가 보아도 현혹당하기 쉬운, 찬사로 가득찬 추천서를 소지(所持)하고 있었고, 바울과 아무런 상관없이 고린도에 와서 바울이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였던 자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 이들은 2:17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는 자들의 범주에 들 것이다.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혹자는 이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주의적인 교인들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일 것이라고 본다(Harris).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근본이라고 믿었던 자들로, 율법보다 믿음을 중요시했던 바울을 못마땅히 여겼을 것이다.

 

천거서 - 이것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일종의 소개장으로 어떤 사람의 직분과 권한에 대한 위임장 또는 신임장 역할을 하였다.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고전 16: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었으나 바울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바울이 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그의 사도직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위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26:12-18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여하튼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추천서를 가지지 못한 거짓 사도라고 악선전을 하고 다녔음에 틀림없다.

 

바울은 이 추천서 자체를 무시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도 필요에 따라서는 추천서를 이용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8:16-24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은 고로 더욱 간절하니라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16:1-2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고전 16: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10-11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칭찬과 승인과 위임보다 하나님의 승인이 훨씬 더 우위에 있고 또한 한통의 추천서보다는 사도 자신의 깨끗한 양심과 성도를 통해 나타나는 열매에 사도로서의 그의 진정성(眞正性)이 확인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바울은 어디서 추천서를 얻어다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여주거나, 그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고후 3: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 고전 9:2에서 이와 유사한 의미의 구절이 발견된다.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거기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무시한 자들에게 그들이 바로 자신의 전도사역의 열매임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사도권을 논증한 바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본절에서도 동일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앞절의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할 때,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가졌다고 자랑하는 추천서와 자신의 마음속에 고린도 교인들로 인해 새겨진 추천서를 대조시키고 있다.

 

이것은 몇가지 점에서 비교된다.

 

(1) 적대자들이 지니고 있는 추천서는 파피루스 종이에 쓰여진 것이나 바울의 것은 마음에 쓰여진 것이다.

 

(2) 적대자들의 추천서는 잉크로 쓰여진 것이나 바울의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것이다.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3) 적대자들이 가진 추천서는 종이에 쓰여진 것이므로 몇몇 제한된 사람에게만 보여질 수 있으나 바울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썼고 - 혹자는 이 구절에서 렘 31:33의 새 계약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가 암시되어 있다고 본다(Barrett).

 

이것은 다음 절(3)'돌비''육의 심비'의 대조와 연관시켜 볼 때 적절한 제시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천거서에 대한 논쟁을 `율법과 복음', '육과 영'이라는 신학적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니 - 본절은 적대자들의 천거서가 사람에게서 유래한 반면 바울의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바울의 사도직이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 의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가시적(可視的)인 증거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의 사역(事役)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으로 세움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의 '그리스도의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라는 점을 말해준다(R.Martin).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 -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먹으로 쓰인 천거서를 가지고 율법을 강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도리어 교회에 분열을 일으키지만,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추천서를 가지고 있고 복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하나님께서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수여한 옛 계명에 매여 있는 반면,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심령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 즉 새 계명을 새겨 넣은 것이다.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로써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제기된 추천장 문제는 바울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적대자들은 율법을 강요했으나 바울은 복음을 선포했다는 점과, 적대자들은 분열이라는 악한 열매를 맺었으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하는 생명의 열매를 맺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해진다.

 

 

[고후 3: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 본문은 바울이 결코 자화자찬하거나, 현상적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서 자신의 영광을 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 활동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구원하였으나 자신의 확신의 근거가 자신의 재능이나 성결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의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심령 속에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그것은 인간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주 대하여 말한 심정에서의 확신이요, 비판의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확신이다"고 하였다(F. G. Carver).

 

 

[고후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우리의 민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 바울은 자신의 확신이 자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자기를 통해 일어난 모든 능력의 원천(源泉)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자기 자랑을 일삼는다는 비난을 의식하여 자기의 겸손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기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한편 혹자는 본절이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랴'(2:11)는 구약의 구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Martin).

 

실로 하나님 존전에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인식하게 되며 그때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을 운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나,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15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

 

1:24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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