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의 의의
성 경: [고후 4:1-6]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4:1]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 이러하므로 - 본절이 앞장에 이어짐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직분이 영광스러운 것이므로'라는 뜻이다.
(3:12-18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모세를 능가하는 직분을 부여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즉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 때문이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행 9:1-2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그런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복음을 증거하는 직분을 맡기신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직분이 정죄의 율법이 아니라 자유의 복음을 전파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이므로,
(3: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자기를 향한 모든 적대적인 비난과 시련에 대해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Bruce).
혹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을, '복음을 선포하는 직무를 태만히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한다(Barrett).
실제로 바울은 그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 전파의 직무를 이행 함에 있어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바치려는 각오로 매진(邁進)하였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후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 숨은 부끄러움의 일 - 본절은 바울과 적대자들 사이의 논쟁적 상황에서 바울이 변증한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본문의 뜻은 '드러내지 못할 창피스러운 일'이다.
어떤 이들이 모종의 행위를 숨어서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이 드러날 경우 수치가 돌아온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과 논쟁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자신은 그런 일을 버렸다고 선언한다.
'버리고' -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한편으로, 그와 논쟁하는 자들이 그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서 그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바울더러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은밀한 곳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적대자들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 '궤휼'은 '교활', '속임수'라는 뜻이며, 11:3에서는 사단이 하와를 미혹한 근본적 의도를 묘사하는 것으로 '간계'로 번역되었다.
(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은 적대자들에 의해서 악선전을 당한 일이 있었다.
(12: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바울은 본절에서 이런 악선전에 대하여 자신은 결코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 '혼잡케'는 '불순물을 섞다'는 뜻으로, 마치 약에 이물질을 섞어 약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순수한 복음에 필요 없는 것을 첨가시킴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혹자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가르치지 않음으로해서 복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Barrett).
본문은 이런 비난에 대한 바울의 답변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이 보기에 도리어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거짓 전도자들(2:17)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 바울이 여기서 '복음'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지 않고, 보편적인 개념인 '진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 가해졌던 또 다른 비난 즉,
'바울은 어떤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비교적(秘敎的)인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해명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가 본절에서 계속하여 하나님 앞과 모든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자신을 천거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의도를 지지해 준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을 천거하는 대상으로서 하나님 외에 '양심'을 든 것은 주목할 만하다.
A.D. 1세기경의 유대인 주석가 필로(Philo)가 '양심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정의한 것처럼, 인간의 양심은 비록 인간의 타락 이후로 무디어지고 때로는 왜곡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선한 양심은 여전히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다.
(롬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결국 바울이 양심에 호소하여 자신을 변증한 것은 인간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한 것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한편 바울이 '스스로 천거한다'는 말이 3:1 내용과 모순된다고 볼 수는 없다.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하여 자천한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만을 증거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Harris).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 여기에서도 바울이 모호한 말을 전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음이 시사된다. 즉 바울은 소수의 영적인 마음을 가진 선택된 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전한다고 비난받았던 것으로 보인다(Barrett).
바울은 그렇게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만일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면 그런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걷는 자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바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공개된 방식으로 설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수건이 씌워져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여기서 '가리운'은 복음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임을 시사한다(Bruce).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고 직분을 부여받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듯,
그리스도의 영광을 거부하고 멸망에 이르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다는 계시의 이중적 측면을 보여준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이 세상 신 - 이 이름은 사단에 대한 별칭이다(Harris).
이외에도 사단은 `이 세상의 임금'(요 12:31),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주관자요 악한 영'(엡 6:12)으로 불린다.
사단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로 천사였으나 지고하신 하나님과 동등해지려는 교만을 품었기 때문에,
(사 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고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었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그러나 사단은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다.
(눅 4:1-12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그런데도 사단이 계속해서 성도를 타락시키려고 애쓰며, 믿음이 없는 자들로 하여금 성도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활동을 펴는 것은, 하나님께서 종말까지 사단의 활동을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 '마음을 혼미케 한다'는 것은 '마음의 눈, 즉 영적인 눈을 멀게 한다'는 뜻이다.
사단은 사람들의 영안(靈眼)을 멀게 하여 영적인 어두움에 빠지게 하고 빛 되신 그리스도를 미워하게 만든다.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바울은 여기서 태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창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Bruce).
본절의 '형상'은 그대로 그린 초상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초상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원형이시며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과 성품을 지니신 분임을 말해준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함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顯示)인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후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 바울이 자신을 자랑한다거나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은혜로 직분이 주어졌다는 것과,
(1절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 직분의 사명이 그리스도 예수가 '주'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인간적인 지위나 특권을 포기하지 않고는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울은 몸소 종의 형체로 오셔서 종의 직분을 다하신 예수의 발자취를 따랐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한편 본문의 '주'(퀴리온)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신분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주라는 진술은 초대 교회로부터 전해오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이자 신앙고백이다.
▶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 바울은 자신이 행하는 사도직의 본질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이 가져다주는 것이 죽음인(3:7) 반면,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복음이 가져다주는 것은 자유라고 했다.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그런데 지금 바울은 율법의 정죄로 부터 벗어나 복음의 자유로 옮기워진 것의 또 다른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종이 되는 것이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빌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을 위하여도 종이 되는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소비하는 것이다.
(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본절에서 바울은 그와 같은 사실을 기쁘게 증거하고 있다.
이는 사 40-48장에 나와 있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보여주듯이 비록 고난을 받는다 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쁘게 여기는 것과 같다(Martin).
[고후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 어두운 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 바울은 자신의 구원받음과 사도직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온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신 하나님의 첫 번째 빛의 창조와,
(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인간의 영적 무지를 몰아내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에 구원의 빛을 비춘 두 번째 빛의 창조를 병행(竝行)시키고 있다.
첫 번째 창조의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면, 바울의 영혼에 비친 구원의 빛은,
(행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22: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그를 덮었던 영적 무지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갖게 하였다.
이 지식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복음에 대한 지식이다.
이 지식을 소유한 자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을 아는 자이고,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이다(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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