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1일 금요일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화해로 인한 기쁨

 

성 경: [고후 7:5-16]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고후 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겪은 일들을 회고하면서 앞절에서 언급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이유를 계속 설명하고 있다.

 

본절의 '육체'(사륵스)는 신학적인 의미가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Bruce).

 

바울은 12:7에서 '육체에 가시'를 언급했던 바, 여기서 자신의 신체적 연약함을 나타내고 있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 바울은 마게도냐에 도착한 후 그들이 신자든 불신자든간에 많은 적대자들로부터 줄곧 박해를 받는 역경에 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울은 심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것은 분쟁에 말린 고린도 교인들을 치유(治癒)하기 위해 디도를 파견했던 바,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대한 염려요,

부차적으로는 예정된 시점에 디도를 만나지 못함으로 야기 되었던 염려에서 비롯되었다(Plummer, Martin).

 

 

[고후 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 바울은 그가 디도를 통해서 전달한 편지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반응하는 상태의 여부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디도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있어 심적으로 크나큰 근심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Harris).

 

'비천한 자'는 본래 '지면상 낮은 위치'를 가리켯다.

 

(17: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의 아래 있었더라).

 

그런데 후대에 와서 '상태의 낮음'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이 말의 좀 더 깊은 신학적 의미는 세상에서 지위가 낮고 천한 자들로서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인간적인 것을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철저하게 당신만을 의지하는 자들을 위로하신다.

 

한편 본절의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1:3,4에서 강조된 바이며,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이는 사 49:13,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는 말씀을 상기케 한다.

 

본절과 사 49:13 말씀과의 연관성은 바울이 6:2에서 역시 같은 장()인 사 49:8을 인용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의미 심장하다.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 디도가 바울에게 돌아온 것이 바울에게 위로가 된 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디도가 돌아옴으로써 바울은 그의 조력(助力)을 받을 수가 있었다.

(2) 디도에게 준엄한 편지를 주어 고린도에 보낼 때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바울과 디도 두 사람 모두 불안해 했었다.

 

(13-15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 의외로 디도를 환대했기 때문에 디도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3) 디도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태도가 매우 고무적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애정, 그를 보고 싶어하고 그와 화목하기를 사모하는 마음, 그를 실망시켰던 행위들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금 그를 따르고자 하는 열심 등에 관한 소식은 바울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고후 7: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사모함 - 바울이 고린도에 소위 '가슴 아픈 방문'을 한 후 양자 사이는 심각하게 냉각되어 갔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때 서로가 더 어렵게 되는 상황이 야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문을 피해야 했었다.

 

(2: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몹시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애통함 -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슬픈 방문 때 보여준 그들의 행동, 즉 적대자들이 바울을 공격할 때 바울을 옹호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통회(痛悔)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울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Barrett).

열심 있는 것 - 고린도 교인들은 놀랍게도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바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열심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변화된 고린도 교인들의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졌을 때, 그가 느꼈을 위로와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에 대해서는 다음의 견해를 고려하면 능히 짐작이 된다.

 

즉 바울은 가슴 아픈 방문 이후 디도를 통해 준엄한 편지를 보내면서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장래가 그 편지의 권위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반응 여하에 달려있다고 보았다(Harris).

 

그리하여 그는 디도를 만나기까지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5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바울의 기쁨은 잃었던 고린도 교인들을 다시 찾은 기쁨에 더하여 자기의 사도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기쁨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6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후 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편지로 - 이 편지에 대해서 혹자는 '고린도 전서'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나(Farr-ar) '고린도 전서'를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편지를 소위 '눈물의 편지' 또는 '준엄한 편지'로 본다(Barrett, Harris, Robertson).

 

이 편지는 바울이 A.D.55년경 고린도 교회에 대한 '가슴 아픈 방문'을 끝내고 돌아온 후 A.D.56년 봄 디도 편으로 보낸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분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 바울이 '준엄한 편지'를 쓸 때 마음이 몹시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을 정죄하려 하거나 고통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3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도리어 그는 자식을 생각하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를 받고는 마음의 고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잠시나마 그 편지에 대해 후회를 하였었다.

아마 그는 너무나 강한 어조로 편지를 쓴 것에 대해 후회했을 것이다.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 다행스럽게도 고린도 교인들의 고통과 근심은 지속되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더 이상 '준엄한 편지'를 써 보낸 것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았다.

 

만일 편지를 보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었더라면 그때 바울은 그 편지를 쓴 것을 계속 후회하였을 것이다.

 

 

[고후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의 준엄한 편지는 잠시 동안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근심을,

바울에게는 후회를 가져다 주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바울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바, 근심에서 회개로 후회에서 기쁨으로의 반전(反轉)은 바울이 쓴 편지 자체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개입 때문이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렇게 여러분이 마음 아파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일이니 결국 여러분이 우리로 해서 손해 본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의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근심이 회개로 이어졌을 때 그것을 단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러기에 때로 하나님께서는 근심을 통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신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바울은 두 종류의 근심과 그 각각의 결과들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설명하면서 앞절 내용과 연결하여 계속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의 판단에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하여 자기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돌이키는 데까지 나아가는 근심이다.

 

그리하여 혹자는 이 근심을 죄에 대한 근심이요, 하나님의 은총을 저버린 행위에 대한 근심이라고 하여 '신령한 근심'이라고 정의하였다(M. Henry).

 

이에 비해 '세상 근심'은 분노하고 원한을 품으며 자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근심이다.

 

이 근심의 결과는 낙담하고 좌절에 빠져 자기 파괴적인 상황으로 발전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두 종류의 근심에 대한 성경의 전형적인 실례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에서와 다윗이다(Hughes).

 

그 이후에도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는 없었다.

 

(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자기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은 자기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였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

 

(51:1-19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둘째는, 가룟 유다와 베드로이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기 전에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끝까지 타락하였던 반면,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고린도 교인들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그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였으며 거짓 사도들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였다.

 

이렇게 바울의 사랑('준엄한 편지')에 응답한 그들은 결과적으로 '영적 사망'을 낳는 죄의 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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