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7일 목요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연보의 유익

 

성 경: [고후 9:6-15]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 - '연보''축복'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본절과 관련하여 더 분명해 진다.

 

본절은 잠 11:24, 25;19:17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으로 '뿌리는 것에 비례해서 거둔다'는 추수의 비유를 통해 적극적인 헌금의 필요성 및 이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을 강조하고 있다.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베푸는 사람은 그 만큼 많은 것으로 축복을 받지만, 적게 베푸는 사람은 그 아낀 것이 모아지지도 않을뿐더러 돌아오는 것도 적어 늘 가난할 뿐이다. 이것은 내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곧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므로 그렇게 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많은 상급을 받지만, 남에게 베푸는데 인색한 사람은 그 쌓아둔 것이 없으므로 받을 상이 없는 것이다.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12:33-34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 여기서는 연보의 액수가 많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충동적이거나 우연한 결정이 아니라 내적인 결심에 의해 즐거운 마음으로 연보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누가 자랑하거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또는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많이 바쳤다면 그것은 참다운 연보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주기 싫은 것을 아까워하면서 연보하거나, 대의명분이나 외부적 압력에 의해 연보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a cheerful giver)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 6절부터 시작된 동일한 주제가 점차 발전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본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주실 능력이 있는데 이는 착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의미는 간단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복 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복을 주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다.

이것은 많은 선행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는 필연적인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불행에 처한 형제들을 위하여 구제금을 내는 것은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선행은 그가 그토록 반대하는바 율법의 요구에 복종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율법주의에 대한 반대와 모순된다고 볼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바울에게 있어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단 율법주의와 다른 것은 선한 행위를 하되 의롭게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된 결과로 한다는 것이다.

 

셋째, '넉넉하여'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이는 헬라어 '아우타르케이안'은 스토아 철학의 견유학파에서 '자족', 또는 '충족'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자족' 또는 '충족'의 스토아적 개념은 인간 자신의 내재적 잠재력 안에서 완전히 만족하는 존재, 즉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만으로서 완전한, 독립적인 인격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스토아적인 '넉넉함'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바울이 말하는 기독교적 '넉넉함'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 은혜의 결과이다.

 

바울은 이 스토아적 단어를 사용하되 스토아적 개념이 아닌 기독교적 의미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TDNT).

 

 

[고후 9:9]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 본절은 시112:9(70인역 시 111:9)을 인용한 것으로 가난한 성도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의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신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112:9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의는 영원히 기억되어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된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런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즉시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디카이오쉬네)에 대해서는 마 6:1, 2에서 나타난 '' 개념과 동일하게 '자선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와(Lietzmann),

 

(6:1-2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법적 의미 즉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Barrett).

 

여기서는 바울의 교리적 '' 개념인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 - 바울은 본절에서 앞절과 같이 직접 인용 형식을 취하지도 않고 구약의 권위에 호소하지도 않지만 사 55:10과 호 10:12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다(Martin).

 

(55: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씨와 먹을 양식'은 본래부터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추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심을 것을 주시고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주신다.

 

 

[고후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인들을 부요하게 해주시는 것은 그들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 고린도 교인들이 후한 구제 연보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가 되고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는 유익이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 왜냐하면 구제 연보의 수혜자들이 그 연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있기까지에는 '우리로 말미암아' 즉 바울 일행의 매개 역할이 중요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구제 연보 사업의 최초 입안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그들이 끝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고후 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봉사 - 이 말의 의미는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를 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봉사'라는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공적인 섬김'을 의미하는데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렇게 볼 때 바울이 구제 연보 행위를 '봉사'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에 대한 선행의 의미를 넘어 예전적(禮典的)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행위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발적인 봉사 행위라는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하는 구제 연보가 가난한 성도들의 부족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그 도움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렸다는 표현에서 분명해진다.

 

이것은 성도들의 구제 연보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는바, 이에 대해 혹자는 '바울이 실천없는 신학을 전개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교회들로 하여금 신학적인 맥락으로부터 벗어난 자선 행위를 하도록 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Barrett).

 

 

[고후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 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의 직무를 잘 수행해 내는 것은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그들의 사랑이나 동정심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며 그것이 바로 참 믿음이다.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연보 행위는 그들이 가진바 복음 안에서의 믿음을 행동으로 고백한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보여준 것이다.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헌금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신들을 도움으로써 고린도 교인들과 형제애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이방 땅에도 복음을 통한 참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 생겨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진정한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과 덕행이 복음의 본토인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까지 인정을 받을 만큼 보편성을 갖게 되었음을 뜻한다.

 

 

[고후 9:14]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 고린도 교인들의 예루살렘 성도들에 대한 헌신적인 섬김은, 위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했고 자신들로서는 중보의 기도를 받을 수 있는 동지를 얻는 결과로 나타났다.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중보(仲保)기도를 한다는 것은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에 형제애가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와 같이 두 교회가 민족과 역사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는 연대 의식을 갖게 된 것은 기독교가 더 넓게 뻗어 나가는 역사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뜻한다.

이런 변화는 할례를 받아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을 만큼 유대인 성도와 헬라인 성도 사이에 있었던 좋지 않은 감정들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5:1-2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 '사모하느니라''그리워하다', '애정을 보여주다'의 뜻으로 바울이 그의 개종자들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였다.

 

(1: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살전 3: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본절에서는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고린도 교인들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을 묘사한다. 이처럼 예루살렘 교인들이 고린도 교인들과 교우 관계를 맺고 형제애를 나누기 원한다는 것은 단지 예루살렘 교인들이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과 교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한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이 기꺼이 구제 연보를 하는 것은 단순한 구제의 행위를 지나 하나님의 은혜를 성취(成就)하는 것이었다.

 

(8: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고린도 교인들이 베푼 은혜는 그들 스스로에게서 온전한 의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그 참된 의미가 발견된다.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또 도울 수 있는 물질적 여력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모든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은사'(카리스)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고린도 교인들의 풍성한 연보와 그것으로 말미암는 예루살렘 성도들과 고린도 성도들 간의 화해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14)를 의미한다(Calvin, Tasker).

 

(2)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을 의미한다(Martin, Bruce).

 

연보에 대하여 언급하는 전후 문맥상으로 볼 때 (1)의 견해가 적합한데 '은사'에 대한 바울의 용례나,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이 말 앞에 '말할 수 없는'이란 수식어가 있는 것을 보면(2)의 견해도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Harris)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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