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0일 일요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2

: [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원수에 대하여 선을 행함으로 가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

(1) 하나님의 완전성이 나타남

(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2)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심판장이 되는 참람한 죄를 면함

( 12: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3) 용서하는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옴.

(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원수를 갚는 자는 상대편의 악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나를 대적하는 악을 많이 만들어 놓는다.

요한 번연 진리 파수를 위해서는 강경하였으나, 진리의 적들이 그를 욕할 때에는 온유하게 참았다고 한다.

"분쟁" "원수를 맺는"일에서 나오는 법이다.

분쟁은 언제나 그것이 확대될 위험성이 있고 확대되면 수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쟁"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계한다.

25:8,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하였고,

17:14에는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하였고,

18:19 에는,

"노엽게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하였다.

"시기" 남이 자신보다 우위(優位)해진 것을 보고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은 마땅히 남이 자기보다 우수함을 때에 기뻐해야 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나보다 우수한 자를 나의 선생으로 때에 기쁨을 가지게 .
선생이 없는 사람은 인도자 없는 소경과 같다.

(2) 세상에는 일이 너무 많다.
그것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우수한 자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시기" 죄가 교회에 손해를 끼쳤다.

크리소스톰(Chrysostom) 교권자 데오빌로 감독의 시기로 인하여 억울하게 탈직을 딩하였으며, 마침내 사막에 망명하여 종신(終身)하였고,

유명한 사무엘 루더포드(Ruderforth) 사이드 셀프라는 교권자의 시기로 인하여 투옥되어 수난하였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의 시기로 인하여 잡히셔서 십자가에 박히셨다.

"분내" 대하여 성경에 여러가지 훈계가 있다.

12:2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라고 하였고,

16:32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하였고,

27:33에는,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둘보다 무거우니라" 하였고,

7:9에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하였고,

27:4에는,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라고 하였다.

사람이 선한 일을 많이 한다.
할지라도 "분노"하는 성질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하여 많은 손해를 당한다.

고대(古代) 유명한 학자 제럼(Jerome)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공적이 있으나,
"분노"하는 성질이 과도하여 어거스틴(Augustine)에게 보낸 편지에도 분노를 나타냈다.
그것은 그의 업적에 커다란 오점(汚點) 아닐 없다.

" 짓는것"이란
어원적(語原的)으로는 '임금노동자'(賃金勞動者) 의미한다(Greijdanus).

의미에서, 이것은 육체의 유익으로 매수되어 단결해서 진리를 항거(抗拒)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진리를 위하여 성령으로 하나되게 단결은 작든지 크든지, 집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그것은 당을 지음이 아니다.

다만 비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육체적 수단으로 서로 단결한 것은 작당(作黨) 행위이다.

고대의 2에베소회의는 당파를 짓는 악한 사람 디오스코루스(Dioscorus) 주회(主會) 회의인데, 회는 비상하게 경건한 플라비아누스(Flaviaus) 축출하였고, 이단자(異端者) 유두게를 포용하였다.

칼빈 말하기를 ," 회의는 성령이 주장하시기 않았다. 나는 그것이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 BK. 4. chap. 10).

교회사(敎會史) 나타난 대로 교황 그레고리(Gregory) 11세가 죽은(1378 A. D.)후에 교황권 쟁탈전으로 인하여 울반(Urban) 6세는 로마에서, 클레멘트 7세는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각각 교권을 가지고 30년을 분립하였으니, 이것은 순전히 권리를 위한 당쟁이다.

"분리함"이란 말은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화합성(和合性) 없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참됨과 거짓됨은 교회의 공동고백과 권징 실시 여부(與否)로써 판별되고,

교회의 성원인 개인 신사들의 사생활의 완전 여부는 별도의 문제이다.

만일 누가 교회의 개인 신사들의 결점으로 인하여 교회적 생활을 버리고 물러선다면, 그것은 혹시 "분리" 행위가 되기 쉽다.

그러나 만일 누가 교회의 부패를 경고하며 진리와 () 증거하다가 교권의 억압(抑壓)으로 축출을 당한다면

그는 "분리"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영광을 얻을 것뿐이다.

사무엘 루더포드(Samuel Ruderforth) 16세기의 영국인으로서 건전한 개혁교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신앙 위인이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경 작성위원 중의 사람이었다. 그는 일찌기 어느 교직자의 시기를 받아 수감(收監)되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가 옥중에서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말하기를,

" 땅의 목사들을 따르지 말라" 하였다(1637 7 14 아벧딘 옥에서).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가 "분리" 죄를 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양떼로 하여금 이리와 같은 거짓 스승들에게 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요,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뿐이다.

(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단"이란 말은 "채택함" 의미한다.

, 이것은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진리와 표준에 위배되는 의견을 채택함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를 보면, "이단"이란 칭호가 타파(打破) 대한 편견으로 사용되니 실례(實例)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옳은 편에서 그릇된 편을 향하여 부른 파명(派名) 동시에,
그릇된 편을 향하여서도 사용하였다.

공정한 의미에서 "이단" 역사적으로 고백해온 성경적 교리를 위반하고 다른 의견을 채택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잘못된 다른 의견을 채택하였다가도 조만간 그것을 버렸으면 그는 이단자가 아니다.



[ 5:21] 투기와 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투기 - 이것은 "시기" 악화된 것이다.
이것은 남이 소유한 것에 대하여 심술이 나서 그것을 빼앗으려고까지 생각하는 악심(惡心)이다.

술취함 - 구약 성경은 술에 취하는 것을 금한다.

( 23:29-35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그것이 마침내 같이 것이요 독사 같이 것이며
33)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5:18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을 약으로 사용함이 허락되었는데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그것을 빙자하여 술을 탐해 먹는다면, 그것은 속이는 죄까지 범함이다.

신자가 술에 취하는 것이 불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가지를 생각할 때에 있다.

(1) 신자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니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술에 취하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과 진리를 분별하는 일에 실수하게 된다.

( 10:9 너와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44:21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것이며),

(2) 술에 취하면 일반적 행동에도 실수하게 된다.

( 23:29-35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그것이 마침내 같이 것이요 독사 같이 것이며
33)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신자가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진리를 준행하지 못하는데,
술에 취하여서 어떻게 경건한 생활을 있으랴?

(3) 술에 취함은 건강을 해하는 것이다.

방탕함 - 이것은 음란 이외의 모든 무절제(無節制) 향락주의를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는 진리를 악용(惡用)하여 세상 향락을 방종스러이 취할 있다고 생가하면 안된다.

신자는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나 이제는 감심으로 율법을 지켜야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순종할 자유인이 것이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들을 감심으로 섬겨야 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향락을 자기 마음껏 취할 처지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극기(克己)하며 사랑의 수고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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