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9일 화요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마지막 권고와 인사 2

: [ 6:16-18] 무릇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 6:16] 무릇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규례를 행하는 - ' 규례' 바울이 앞서 말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며
보다 적극적으로 성령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언약 복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이처럼 본절에서는 본서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

한편 '행하는' 헬라어 '스토이케수신' '행렬에 맞추어 나가다', '규칙을 굳게 지키다'라는 뜻을 가진 '스토이케오' 미래 직설법으로 5:25에서 성령으로 행하는 삶을 의미할 사용된 것처럼,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규례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된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 언약의 규례를 따르는 자들에게 베풀어진 축복은 본절에서 크게 가지로 나타난다.


(1) '하나님의 이스라엘'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자들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참된 이스라엘 족속이 있다.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4:28-29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때에 육체를 따라 자가 성령을 따라 자를 박해한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참된 이스라엘이란 민족적이며 전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복음을 믿어 순종케 자들로 구성된 ' 이스라엘' '약속의 자녀' 말한다.

( 9: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자라야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2)'평강' '긍휼' 은혜가 주어진다.
'평강'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 5:22 제시된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이다.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이는 신약에서 일반적으로 미래에 이루어질 축복과 행복을 뜻하는 말로 쓰여졌는데,

(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본절에서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함축한다.

한편 '긍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한번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는 변함없는 은혜'등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풀어진 은혜를 가리킨다.

특히 바울은 이와 같은 축복을 특정한 무리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무리들에게도 같은 축복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 6:17]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나를 괴롭게 말라 - 이는 '내면적인 고통이나 슬픔' 의미한다.

( 26: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바울이 당한 괴로움은 유대주의자들로부터의 직접적인 폭력이나 폭언이라기보다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에게 미혹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이다.

따라서 '괴롭게 말라' 이상 갈라디아 교회 속에서 이단자들에 의하여 미혹(迷惑)되는 자들이 없기를 바라는 호소의 성격이 강하다.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 '흔적' 소나 양에게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나타내거나 종이 특정한 주인의 소유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국'이나 '소인' 남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은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얻게 수많은 고난의 흔적을 의미한다. 그것은

(1) 수많은 육체적 고난으로 인하여 실제로 남겨진 박해의 상처들을 뜻하며

(고후 11:22-27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맞았으며
25)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고 파선하고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의 실천적 의미로서 수많은 고난에 동참하였음과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를 따랐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바울이 소유한 예수의 흔적은 예수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얻은 거룩한 증표로서

율법주의자들이 육체의 자랑을 위해스스로 행한 '육체의 모양'과는 족히 비교할 없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6:18] 형제들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

모든 형제들에게 거룩한 인사를 함으로 시작했던(1:2) 서신은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갈라디아 교회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구하는 기도로 끝을 맺는다.

'그리스도의 은혜'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모든 성령의 약속과 구원을 함축적인 의미로 표현한 것으로서

저들의 구원이 자의적(自意的)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번 확증한다.

특히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라고 표현한 것은 외형적인 모양을 추구하는 율법주의자들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의 내적인 존재 전체에 영향을 끼치길 기원하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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