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파종
갈라디아서 6장 9절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는데 낙심(지침)말라. 그것은 만약
한결같이(계속)하면
우리가 때에
이르러 거두어
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어역))
도의(道義)학자는 우리에게 가르쳐 말한다.
선은 선이다.
세상이 이것을 알아주지 않는대도 사람이 이에 보답 않는 대도 선은 선이다.
그러므로 사람 된 자는 보상 여하에 눈 둘 것 없이 다만 진심으로 선을 행할 것이다.
[선을
행하는데 낙심(지치지)말라]
이 이상을 말할 필요는 없다.
이것 칸트의 소위 절대적 명령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에 아무 조건도 붙이는 일 없이 이에 복종할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선의 보수(報酬)를 요구하는 것이다.
좋은 보수를 가져오지 못하는 선을 선으로서 인정치 않는 것이다.
물론 그 보수란 금전적임을 요하지 않는다.
혹은 또 현세적일 것도 없다.
하지만 어떤 확실한 보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보수가 제공되지 않는 곳에 선은 실제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성히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가령 칸트 같은 현자라 해도 보수가 따르지 않는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노력을 요하는 것이다.
절대적 명령이다.
사랑의 권유는 아니다.
선을 단지 선으로 요구될 때 선행은 중하로서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선을 행해야 할 이유를 말한 것이다.
[그것은
만약 한결같이
계속하면(낙심 않고
하면),
우리가 때에
이르러 거두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고 그는 말했다.
이는 칸트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절대적 명령은 아니다.
신의 필연적결과를 말하여 선행을 쉽게 하게 하려는 것이다.
선은 보수(報酬)될 것이다.
반드시 보수될 것이다.
그러므로 선을 하는데 지치지 말라고 바울은 말한 것이다.
선은 보수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 물론 지금 곧은 아니다.
또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아니다.
[때가
이르러서]이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때는 물론 이 세상으로서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무한한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이 끝난 후에 보다 좋은 세상이 시작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는 그 세상에 희망을 두고서 사는 것이다.
그 세상은 이 세상과 달라 좀먹지 않고 녹슬지 않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서 도둑질 않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그의 재산을 쌓으려는 것이다.
[때가
이르면]이다.
[뒤에
어떠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나타날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 닮을
것을 안다](요한제1서3:2)고 있는 그때이다.
그때에 우리들이 행한 선은 모두 보답되는 것이다.
그때에 우리들이 행한 선은 모두 보답되는 것이다.
바울은 다시 분명히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서 선이든,
악이든, 각각 육신에
있어서 행한
바에 따라
그 보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5:10)라고.
우리들이 행하는 선은 보수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아니다.
[저
때]에 있어서 보수된다.
그러므로 금은 토지,
가옥,
훈장 등 이 세상의 것으로서는 아니다.
부활체로서 의의 관으로서 특히 우리들의 노고 따라
구원된 영혼으로서 우리들의 선행은 반드시 확실하게 보수된다.
내세 있고,
부활 있고,
영생 있음을 알고서
선행은 이 악한 세상에 있어서도 허공을 치는 것 같이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희망을 가지고서 파종한다.
[그것은
만약 낙심(지치지) 않으면 때에
이르러 거두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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