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리스도 신자의 생애

갈라디아서 2 20 :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저희도 아나이다.


이것은 바울에 의해 발해진 가장 특별한 말의 하나이다.
그리스도 신자의 생애가 무엇인지가 아주 간단하게
더구나 아주 철저하게 여기에 언명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의 생애를 축소하여 말한다면 이것이다.
이것 이외에 신자의 생애는 없는 것이다.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다].

신자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있어서 자기의 생애를 보는 것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생하고
함께 십자가에 박히고
함께 다시 살아나고
함께 영광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고난을 같이 하고 기쁨을 같이 하고
치욕을 같이 하고 영광을 같이 한다.

물론 환난만은 아니다. 환희도 있다.
하지만 환희 상응의 환난이 있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그와 함께 것을 믿는다](로마서6:8)

바울이 다른 곳에 말한 대로이다.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다] 것이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신자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일단 육에 죽어 다시 살아나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죽은 것이다.
그러나 죽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이다.

하나의 생명이 가버리고 다른 생명이 들어 것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대신하여 속에 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신자에 대신하여 생명을 영위하시는 이것이 그리스도 신자이다.

이상적으로는 그러하다. 실제적으로는 아직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미 죽은 자인데 그러나 아직 전혀 죽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육체에 있어서 살고 있다.
나는 아직 부활하지 못하고 영화하지 못하고
죄의 더럽힌바 육체에 있어서 살고 있다.

나는 아직 전혀 죽지 않고
그리스도는 아직 전혀 나를 점령치 않으셨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것인가?
실망해야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내게 지금 해야 일이 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사 위해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일이다.

나의 오늘의 생명은 신앙이다.
구원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완성의 도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완성을 대망하고 있는 오늘 나는 신앙으로서 사는 것이다.

[나는 이미 죽었다. 그리스도, 나를 대신하여 속에 살아 계신다].

그것은 신자의 생애인 것으로서 드디어 사실로 되어 나타나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하기까지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사 위해 자기를 버리신 그는
반드시 안에 있어서 나를 화하여 자기 것으로 하실 것을 믿고 사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말한 대로이다.

[사랑하는 자여 우리가 지금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다.
뒤에 어떨까?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나타나실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같을 (닮을 ) 안다](요한제13:2).

요한의 [안다], 바울의 [믿는다]이다.

지금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다.
손에 잡지 않았는데 아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한절에 신앙상의 3 사실이 담겨져 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판별할 수가 있다.

1.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다. 과거
2. 이미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 미래
3. 지금 육체에 있어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위해 자기를 버리신 .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에 의해 사는 것이다. 현재

()-()-()이다.

죽음이 먼저이다.
삶이 나중이다.
믿음이 길이다.

그리고 신자는 먼저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때에
(침례를 받은 때라고도 수가 있다),

자기에 죽고 이제 부활, 영광을 목표하여 나아가면서
신앙의 생애를 영위하는 것이다.

이상(理想)이라 하고 실제(實際)라고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자는 서로 상반하는 말이다.

이상이란 도저히 달할 없는 ,
실제란 죄인이 언제나 하는 ()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께 있어서는 이상은 실제이다.
그는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이것을 이루신다.

바울이 그를 일컬어

[ 있는 ]라고 것은 때문이다.

이상을 실현할 있는 ,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 마음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다](빌립보서1:6) 있음에 의해서도 안다.

그리고 신앙은 하나님의 이상 실현의 신앙이다.
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시고 죄의 사유 위해 사죄(赦罪)되어
한없는 생명의 은혜를 입게 하시기 위해
자기 몸을 버려 십자가의 죽음을 이루셨다.

나는 사랑과 사랑으로 인하여 받은 고난을 믿는다.
신앙이 구원의 완성을 대망하는 오늘의 생애이다.

그리고 신앙은 헛되지 않고 반드시 실현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신앙의 생애라고 하지만 실현의 생애에 다를 없고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생각하는 바에 지나는 평안이 있는 것이다.

실로 간단하고 철저한 생애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서 산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선한 것은 그에게 있고 있다.

내게 제거해야 있을 것인가? 그를 믿으면 제거된다.
내게 달해야 있을 것인가? 그를 믿으면 달해진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

종교, 도덕, 생애의 전부는 가지에 있다.

그러므로

[만약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헛된 일이라]이다.

그리스도는 죽으실 못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신앙에 의하지 않고서 구원되는 것이 된다.
하지만 불가능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가 구원되기 위해 필요불가결의 것이었던 것이다.

+내촌감삼의 주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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