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6일 일요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초태생의 성별

출애굽기 13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되었던 집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4) 아빕월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네게 주시려고 조상들에게 맹세하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달에 예식을 지켜
6)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칠일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7)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너희 곳에 있게 하지 말며 지경 안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도 말게 하며
8) 너는 날에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
9) 이것으로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 연년이 기한에 이르러 규례를 지킬지니라
11) 여호와께서 너와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중 모든 장자된 자는 대속할지니라
14) 장래에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대속하나니
16) 이것으로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20)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유월절 있고, 그리하여 무교절이 있다.

이에 이을 다음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로서 우리들을 멸망에서 구원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어린양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거룩(성결)하게 있기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이런 일을 하셨으며, 우리들도 무엇인가 감사하지 않으면 된다.

무엔가 하나님께 보답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회생(산제사)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것이니라.

애굽의 초태생은, 사람의 초태생에서 부터 짐승의 초태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초태생은 여호와께서 이를 속량하신 까닭에, 모든 처음 , 특히 남자 기타의 가축의 새끼를 모두 여호와께 드리고, 애굽에서 구출된 은혜의 표적으로서 영원토록 규정을 지킬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한 가지 일이, 출애굽기 13장에 끈덕지게 계속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구약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을 구원하심의 준비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해석하는 데는,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하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구속하시고, 다음에 우리 각자가, 자기를 거룩히 하는 (능력) 주시고, 그런 후에 희생(산제사)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그가 먼저 요구하신 것은 초태생이다.

초태생의 헌상(presentation),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자식을 가진 자는 이것을 안다. 사람의 가장 귀중한 것은 자식이라는 것을.

오로지 인류만이 아니다. 동물도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자식 중에도 처음으로 자식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사람은 자식을 주는 외에는 무엇이든 수가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있는 것이다.

초태생이라는 말로, 사람의 가장 것을 대표하게 수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태생을 바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가장 좋은 것을 요구하신다. 이유는

이것은 너희 것이 아니라, 것이라는데 있는 것이다.

실로 사람이 만약 참으로 하나님께 속함 받은 이유를 안다면, 자기 전부를 헌상하지 않으려 해도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감사로써 초태생을 드리는 때에는, 다만 초태생을 드린 것만은 아니다. 자기 자신도 드린 것이다.

그리고 태생을 헌상하기를 오랫동안 계속해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여호와께서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라,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그들은 자기의 총령을 비롯하여, 우양의 초태생, 밀의 첫이삭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이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감각으로 양육되어 왔다.

우리들의 그것, 우리들의 모두가 하나님에의 바칠 것이라고 믿어, 그리스도의 때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것이다.

너희들이 너희의 장자를 바치듯, 나도 독자를 너희에게 주리라 음성을 들은 것이다.

그때의 이스라엘인의 심정(마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는데, 오랜 준비가 되어 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신성은 철학상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양육된 희생정신으로써,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주셨다 소식을 해석하여, 그들은 작약(dancing for joy)하며, 기뻐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수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상상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에게 초태생 헌상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얼마만큼의 사랑으로써 우리들을 사랑하셨는가?

그것을 알려하면, 먼저 자기의 초태생을 드려보아야 것이다.

일찍이, 내게 어떤 불교신자가 와서, 묻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어떤 것이냐 했다. 나는 대답했다.

그대가 이것을 알려거든 그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누구에겐가 주어보도록 하라. 더욱이 이것을 그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주어보도록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얼마쯤 있으리라.

이스라엘은 맛을 알았던 것이다. 오랫동안, 초태생을 성별하여, 이것을 드리는 마음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한복음 3:16 참조)라는 말씀을 듣고서, 그들은 이것을 믿지 아니치 못했다.

그리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만물)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로마서 8:32참조) 하고 외치지 않을 없었다.

실로 이렇게 외칠 있는 자는 있을진저.

이스라엘인으로 하여금, 신앙을 품게 것은 이론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년의 실행이었다. 먼저 자신 초태생을 드린 실험이었다.

처음 것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려는 생각은, 바로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표이고, 실증이다.

일전에도 어떤 젊은 부인으로 일찍이 가시와기의 집회 출석해 있던 이가, 향리로 돌아가, 그곳의 고등 여학교 교사가 되어, 처음으로 봉급을 받았다. 그녀는, 이것을 기뻐하여 어떻게 써야 할까를 생각했다. 그때, 그녀의 가슴에 떠오른 것은, 가시와기의 집회였다. 그래 열매를 먼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쓰고 싶다면서 보내왔다.

송금을 받은 우리들의 기쁨은 제쳐놓고, 이것은 그녀가 금후 어떻게 모든 것을 취급할 것인지의 전조로서, 그녀 자신을 위해서는, 매우 기쁘게 여기지 않을 없다.

이에 반하여 모든 처음 좋은 것은 세상 위해 바치고, 그리고 나머지 쓸모가 없는 것만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같은 일은, 아주 저주받은 생각이다.

이는 신앙의 타락이다.

미국의 그리스도교의 타락의 근본은 이에 있다. 그들은 자식을 신학교에 보내려는 , 가장 열악한 자를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의 열악자가 선정되어, 외국전도에 임하는 것이다.

수일한 자는 이를 법률 실업에 바치고, 열악한 자는, 이를 하나님께 바친다. 이는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이다.

교회에 있어서의 헌금의 상황을 일별해도 같은 일이 엿보인다.

귀중한 보석이라든가, 모든 미술을 다하여, 장식한 부인이, 주머니에서 1 동화를 손끝으로 집어내어 집금대접 위에 놓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필경 자기의 멸망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영적으로 보아, 미국의 위험이란, 마치 화산 위에 앉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들도 역시 자칫하면 가장 좋은 것을 자기 또는 세상을 위해 쓰고, 나쁜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 한다.

그리고 결과는 자기 또는 가정의 타락이다. 모든 가장 좋은 , 모든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오랜 생애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아버지 , 어머니 이에게 특히 주의를 촉구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선량한 신자가 된다든가, 또는 선량한 교사로 되는 것은, 사람 사람의 노력으로만은 아니다. 부모, 또는 조부모의 힘에 기대하는 바가 많다는 것이다.

실로 어머니의 태내에 있는 동안에 양친이 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자녀로 하여금, 가장 완전에 가까운 신자되게 하는 비결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일본) 있어서, 전도에 종사한 미국인 모씨는 내게 이야기하여 말했다.

내가 일본에 전도하기에 이른 동기는 내게 있는 아니다.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이미 어머니는 아들을 주께 바칩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나서 그것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 외국 전도의 결심은 내게 생겼.

이렇듯 자식이 아직 태내에 있는 때부터 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다만 부모의 신앙을 표시할 아니라, 자녀 위해서도 무상의 행복이다.

오늘날 일본에 있어서도 신자 부모의 유아로서, 비상한 신앙을 일으키고, 자기의 일생을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 바치려는 거룩한 결심을 실례를 때때로 보는 것이다.

이는 부모의 기도가, 자녀 위에 실현한 것이다.

초태생의 헌상은, 자식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란으로 처벌되는 아니다. 그렇지만, 보다 나쁜 재난이 후에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랄까, 자연의 법칙이랄까, 어쨌든 사실이다.

원한다. 우리들은 일생을 통하여, 우리들의 초태생을 성별하여, 그리하여 감사의 헌제를 계속할 있기를. (내촌감삼의 글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