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예수께서 침례요한을 높이심

 

성 경: [7:24-27]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7: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 이제 예수께서는 무리들을 향하여 요한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이는 주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강한 경고의 어조로 말씀하셨을 때 무리들이 듣고 요한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주께서는 구속사의 흐름에서 차지하는 요한의 중요한 위치를 분명히 주지시키기 위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요한을 증거 하셨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 침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 나타나 회개를 외칠 때 많은 무리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모였다.

 

(3:2-14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그러나 그들은 요한이 누구인지 모르고 또 그의 설교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모였다.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요한이 어떠한 인물이며 그가 왜 광야에서 회개의 침례를 전파했는지 가르쳐 주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이 질문과 바로 다음의 질문(25)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답변으로 이끄는 풍자성이 강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처럼 흔한 갈대를 보기위해 굳이 험한 광야로까지 나갈 필요는 없겠기 때문이다.

 

유대 광야에서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흔하고 하잘 것 없는 갈대처럼 요한이 약하고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당시 유대 땅에는 일신의 부귀와 안락을 위해 마치 바람 앞에 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 양심마저 팔아 넘겨버리는 배도자(背道者)들과 매국노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예수는 침례 요한이 사람들의 여론이나 세상의 유혹에 동요되지 않고 거룩한 소명에 충실한 사람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의 강직성은 헤롯과의 충돌 사건을 통해 뚜렷이 드러났다.

당시 헤롯의 악행은 묵시적으로 방관될 뿐 누구 한 사람 감히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이 범죄를 공공연하게 책망하다가 결국 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알라) - 화제를 새로운 초점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너희가 갈대를 보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면 너희가 보기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의미이다(R.C.H. Lenski).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 '부드러운 옷'이란 곱고 감촉이 부드러운 값비싼 옷을 가리킨다.

 

그러나 요한은 거칠고 값싼 약대 털옷을 입었음으로 이와는 강한 대조를 이룬다.

 

(1: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당시 대다수의 서민들은 로마의 식민지의 상황에서 수탈과 착취로 인해 거의 누더기에 가까운 옷을 입고 다녔음에 비해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은 그들의 지위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매우 값비싸고 화려한 옷들을 걸치고 다녔다.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 '사치하게 지내는'이란 원어상으로 '건강을 해치다', '쇠약해지다'는 의미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결국 건강을 해치기까지 흥청거린다.

이는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상황을 극명하게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서 고관대작들이 호의호식하면 할수록 백성들의 생활은 갈수록 핍절해 감을 암시한다.

 

그러나 요한은 황폐한 곳에서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으며 어려운 삶을 살았다.

만일 침례 요한이 권력자들에게 아부하고 그들의 귀에 달콤한 말만 골라 들려주었더라면 근사한 옷과 음식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왕궁의 회유 따위에 넘어가거나 무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의 치부까지도 과감히 책망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자요 또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선지자였기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었다.

 

왕궁에 있느니라 - 헤롯의 왕궁에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 왕의 총애를 받으며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지금 마캐루스(Machaerus) 요새에서 낡고 거친 외투를 입은 가련한 죄수로서 있다.

 

 

[7: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 예수께서는 요한의 위대함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무리들에게 두 가지 풍자적 질문을 자문자답 형식으로 던지셨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질문은 요한이 선지자 혹은 그보다 탁월한 자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서곡(序曲)으로 볼 수 있다.

선지자냐 - 이 말은 선지자를 본다는 것은 '보려고 나갔더냐'는 의미이며

'선지자를 그와 인격적인 접촉을 얻기 위하여,

즉 그의 말과 그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여 침례를 받으려고 한다'

의미이다. (R.C.H.Lenski).

 

한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대략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2)환난과 고난 중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소망과 격려를 주기 위함이다.

(3)하나님과 그의 창조에 대한 사실들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4)하나님의 백성들이 특별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취해야 될 행동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함이다.

(5)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나 예언자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6)장차 메시야를 통해 절정에 이를 위대한 구속 역사의 맥을 잇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관건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느냐는 것인데 요한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 원문대로 번역하면 '선지자 이상의 어떤 자'(페리쏘테론 프로페투)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이 그 어떤 선지자보다 탁월한 이유는

 

(1)그의 활동이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 예로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말 4:5에 예언된 '선지 엘리야'란 바로 침례 요한을 가리킨다.

 

(2)그의 사역의 위대성 때문이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야의 도래를 예언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직접 그 메시야를 보고 그를 증거하며 또한 회개의 침례를 통해 메시야의 첩경을 평탄케 한 위대한 선구자였다.

 

(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7: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기록된 바 - 예수께서는 말 3:1에 예언된 말씀을 침례 요한에게 적용시키셨다.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 주님께서 이 예언을 인용하실 때에 구약의 원문 그대로 하신 것이 아니고 그것을 해석하여 인용하셨음에 유의하자.

 

그것은 여기에 인용된 '네 앞에'(프로 프로소푸 수,)란 말이

히브리어 원어에는 '내 앞에'(레파나이)로 되어 있고

70인역에도 '내 앞에'(프로 프로소푸 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주님께서 이처럼 '내 앞에'란 말을 '네 앞에'로 바꾸어 사용하신 이유는 자신이 친히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자기 계시(self-revelation)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하나님 앞에''메시야 앞에'로 해석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메시야이신 자신이 일체(一體)인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네 길을 예비하리라 - 요한은 메시야의 직접적인 선구자로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야 할 사람이었다.

 

침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라고 선포함으로 메시야의 출현을 명백히 선포하였고,

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유일한 방법으로서의 회개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3:7-14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또한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에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

 

겸손히 말하면서 구속 역사의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졌다.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 말라기의 예언이 침례 요한과 메시야이신 자신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확언하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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