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생활의 규칙 2
성 경: [눅 6:33-38]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 이 구절은
앞절(32절)의 반복으로 원리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한다.
이 죄악된 세상에서는 심지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처세에 급급한 나머지 기껏해야
'주는 만큼 받는'(give and take)식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개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든다'는 우리나라 속담도 있듯이,
그러한 단계는 그리 수준 높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자연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삶의 방식을
초월해야 할 위치에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할 능력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눅 6: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빌리다'는 상업적인 거래에서 이윤을 목적하고 빌려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받기를 바라는'것은 대부(貸付)의 이자를 포함한
최종적인 총액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리대금업자처럼 이윤 목적으로 남에게 무엇인가를
빌려주는 자는 결국은 자신의 치부를 위한 것이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지 남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예수의 의도는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남에게 무엇을 주는 행위지만 그러나 그것을 되돌려 받기를
바라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의수히 받고자 하여 - 문자적으로는 '똑같이 돌려받기 위해'란 뜻이며
계산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빌려준 것을 다시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반드시 돌려받을 것을 전제하고 빌려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눅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 다시 27절의 원래적 명령으로
돌아가 원수 사랑의 계명을 반복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여기서 '원수'를 나타내는 헬라어 '에크드로스'는 '증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70인역)에서는 이 단어를 우상 숭배자들이나 계약 관계를
깨뜨린 자들에 대한 증오를 나타낼 때 사용했다.
신약에서는 주로 개인적인 적들을 나타내게 되었다.
어쨌든 여기서는 그들이 설사 계약 관계를
위반하였든 개인적인 해를 끼쳤든 간에 그들을 정죄하거나
재판한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사랑의 행위여야지
단순한 보복의 동기에서라면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사랑'을 나타내는 헬라어 '아가파오'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나타내지만
이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까지도 수반된다.
(마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아울러 이웃에 대한 사랑에는 원수에대한 사랑도 분명히 포함된다.
(마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따라서 이 '아가파오'의 사랑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을 요구하게 된다.
즉 자신의 불이익이나 고난과 어려움을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감당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이며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 바라지 말고 – KJV는
"아무 것도 다시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hopingfor nothing again)라고
번역한다.
즉 예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빌려주든 무조건적으로 줄 것이며
다시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다.
1:32에서 이미 예수님을 가리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칭한 바 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차원 높은 사랑을 할 때 얻는 상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이'라는 누가의 표현에 비해
마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이는 둘 다 절대적인 권위(authority)와 지존(majesty)의 개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눅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 마태는 '온전'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누가는 그 대신에 '자비'로 바꾸었다.
그 이유는 누가는 글을 읽을 자가 율법에 능한
유대인(바리새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듯하다.
하나님은 악한 자와 은혜를 모르는 원수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신다.
그것이 곧 '온전'일 것이다.
▶ 너희도 자비하라 - 이는 곧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이 말 속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다.
(1) 이 명령은 죄인인 인간의 절망을 시사한다.
인간이 아무리 선을 행하고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서
하나님처럼 온전해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이 시행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 고차적인 명령을 스스로 지키려고 하면 인간은 누구나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이 모든 계명을 완수하신 예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 그분의 인도와 간섭 그리고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3) 성도의 신분과 위치가 실로 고귀함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성도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며
그러한 교제를 위해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을 성도들에게도 나누어 주사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른바 '신성한 성품'에 참예케 하신다.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눅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27절의 원수 사랑에 대한 명령이 28-35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었듯이 36절의 자비의 정신은 이제
본 구절과 38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먼저,
'∽ 말라'는 부정 명령이 두 차례 언급되며 이어
'∽ 하라'는 적극적 명령이 또한 2회 나온다.
▶ 비판치 말라 - 이 말은 단순히 윤리적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바로 다음 구절의 "정죄하지 말라"는 말이 암시해 주듯이
종교적으로 사람을 판단하여 정죄하는 행위를 가리키고 있다.
이 말은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는 것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참과 거짓 그리고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강력히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만 편견을 가지고 무분별하고 성급하게 의견을 제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 정죄하지 말라 - 어떤 사람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예수의 가르침은 법정에서 재판을 하거나
선악을 구별하는 일 자체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재판관으로 앉아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금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선악의 분별을 가져야 하지만 심판이나 판결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고유 권한이다.
(롬 2:1-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고전 4:3-4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우리가 타인을 정죄하거나 심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자신도 동일한 죄를 범할 가능성을 얼마든지 내포하고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흉악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며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참되고 유일하신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한다.
(롬 12:18-19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주라 - 이 명령형은 다른 사람들의 곤궁을 구제하기 위하여
공급할 수 있는 모든 선물을 주라는 뜻이며
또한 받기를 바라기 이전에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이것은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이 동사(디도미)는 요 3:16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에도
사용되고 있음에 유의하자.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거니와,
(행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 이유는 서슴없이 베푼 모든 사람들에게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영광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
'후히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트론 칼론'은
'분량', '척도'(메트론)라는 말과 '좋은'(칼로스)이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좋은 분량으로 주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는 줄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준다는 의미이다.
즉 굵은 콩 사이로 작은 조나 깨를 섞듯이 조금도 빈틈없이
누르고 흔들어서 채울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채워서 준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그 이상으로 임한다.
▶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는가에 따라 그대로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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